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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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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강변의 특별한 졸업식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1-06-22 (수) 03:06:02

 

학기가 끝나갑니다. 한국은 여름방학이 되려면 아직 한달이 남아 있지만 미국에선 이번 주를 끝으로 모든 학교들의 학기가 종료(終了)됩니다.

이미 대학의 경우는 5월에 학기가 마무리됐고 이달 들어 미전역의 초중고 공립학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방학에 들어갑니다.

 

 

지난 18일 토요일, 유월의 저녁 햇살이 아름답게 반사되는 허드슨 강변 공원에선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넓은 잔디밭 한 켠에 마련된 단상에는 교장과 교육감 등 학교 관계자들이 자리했고 단상(壇上)을 중심으로 양 옆엔 흰색과 푸른색의 가운을 걸친 남녀 졸업생이 100여명이 수백명의 가족 친지들과 마주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뉴욕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의 답스페리(Dobbs Ferry)입니다 답스페리는 아름다운 허드슨 강변을 끼고 있는데 위로는 어빙톤(Irvington), 아래로 헤이스팅스(Hastings-on-Hudson)와 함께 ‘워터 타운’으로 불립니다.

 

 

답스페리는 맨해튼 중심에서 20마일정도 북쪽에 위치해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일산과 비슷한 지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구는 1만명도 안되는 작은 곳이지만요.

뉴욕시와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막상 한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허드슨 강변에 치우쳐 주변 87번 고속도로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기때문입니다. (바로 옆 Saw Mill 파크웨이에만 답스페리 안내판이 있습니다.)

 

답스페리에서 로맨틱한 통근열차를 타고 30~40분이면 뉴욕 중심가인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 도착합니다. 맨해튼의 접근성은 뛰어나지만 코리아타운이 있는 뉴욕 플러싱과 뉴저지 포트리, 팰팍 간 이동은 자가용이 아니면 불편해 한인들은 고작 10여가구만 살고 있습니다.

 

그런 답스페리가 최근 몇 년간 한인사회에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 이유중 하나는 이곳 고등학교에 특별한 교장선생님이 계시기때문입니다. 바로 이기동(미국명 Keith Yi) 선생님입니다.

  

70년대 유명한 코미디언 이기동 씨와 동명이인(同名異人)이라 유명한건 아니구요.^^ 6년전 뉴욕주 공립고등학교 최초의 아시안 교장으로 부임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입니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공립학교 교장에 오른 분들이 더러 계시지만 답스페리 하이스쿨에 아시안 교장이 부임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지역인 이곳은 교육열이 대단히 높고 백인과 유태계 교장들이 줄곧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비단 답스페리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많은 재산세를 내는 웨스트체스터 카운티를 포함한 보수적인 업스테이트 뉴욕의 공립고 교장에 한국인이 아시아계 1호로 온 것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교장이 부임했을 때만 해도 9학년부터 12학년의 전체 학생중 한국인 학생은 다섯명 정도였고 지금도 열명을 넘지 않습니다. 백인이 전체 학생의 85% 이상인 이곳에서 한국인 교장이 있었으니 한인학생들에게 얼마나 뿌듯한 일이었겠습니까.

 

교직에 종사하는 한인들이 많은 편이지만 교장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한인 교사들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일단 교장은 교육행정가이기때문에 별도의 석사 학위가 필요할뿐더러 어렵게 공부를 마쳐도 주류사회의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뚫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가 누구도 뚫을 수 없었던 ‘유리천장’을 넘기까지는 그야말로 끈질긴 노력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이기동 교장은 열한살 때 서부 워싱턴주 시애틀로 이민온 1.5세입니다. 지금은 한인들이 수만명이지만 그가 이민온 70년대 초만 해도 단 두가구의 한인가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민자녀들을 위한 ESL(영어 학습 프로그램) 클래스가 없을때여서 1~2년간 고생을 많이 했다고 이 교장은 회상합니다.

  

“학교에는 외국 학생을 위한 ESL 클래스가 없어서 무조건 수업을 들어야 했어요. 그냥 미국 학교에 저를 끼워 맞춘거죠.” 영어는 곧 유창해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국어가 문제였지요. 주변에 한국인이 없었기때문에 한국을 거의 잊었고 고교를 졸업할 무렵엔 자신을 미국인으로 생각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워싱턴대학 생물학과에 합격했을때만 해도 의사가 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여름 한국을 방문한 것이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시내로 들어가는 시간이 제게는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저와 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거에요. 그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은 처음 본거죠. 머리를 망치로 맞은듯 아하 여기가 정말 나의 모국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된 그는 초등학교 때 헤어진 옛 친구들과 다시 교류하면서 미국 친구들과는 차원이 다른 한국인들의 깊은 우정에 감동했고 의사가 아니라 교육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1.5세와 2세들의 교육을 위해 누구보다 그 어려움을 아는 자신이 가교(架橋) 역할을 맡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대학 졸업 후 롱아일랜드 대학에서 특수교육학 석사를 받고 1986년 뉴욕 베이사이드의 명문 카도조 고등학교 생물교사로 부임했습니다.

카도조 고교는 현재 한인 학생들이 수백 명에 이르지만 당시만 해도 수십명 수준이었습니다. 최초의 정규과목 한인 교사였던 그는 ‘Korean Club’을 만들어 한인 학생들을 규합(糾合)하고 한글 저널도 발간하는가 하면 청소년 세미나도 주최했습니다. 버스를 직접 렌트해 한인 학생들을 데리고 따로 수학여행을 다녔는가하면 미국 학교에 한국식 스승의 날을 최초로 전파한 것도 바로 그였습니다.

 

이 같은 활동을 눈여겨 본 카도조고 담당 로겐 교육감은 그에게 교육 행정가가 되라고 권유, 그는 NYU(뉴욕대)에서 두 번째 석사 학위를 받고 롱아일랜드 윌리엄 브라이언트 고교에 한인 1호 교감(사이언스 담당)으로 임명됩니다.

스프링밸리 고교를 거쳐 존 글렌 고교에서 정식 교감의 기쁨을 맛본 그는 업스테이트 뉴욕의 요크타운에 있는 워터 패나스 고교로 옮기는 등 전형적인 미국타운의 학교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오랜 교감 생활을 하면서 교장직의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안 되더라고요. 아시안의 한계라고 할까요. 답스페리고에서 교장을 뽑는다는 공고가 2005년 4월 뉴욕타임스에 나왔는데 여기서 안 되면 한인타운에 있는 학교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답스페리고의 교장직 선발은 역대 가장 치열한 경쟁이었습니다. 1, 2차 면접을 통해 최종 2명 안에 들은 그는 3차 면접에서 경쟁자인 백인 후보와 우열(優劣)을 가리지 못해 유례없는 4차 면접까지 가야 했습니다. 마지막 테스트는 학생들과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하고 학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으로 최종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장의 자질도 뛰어났지만 아시안 후보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은 답스페리 교육위원회의 심사 과정도 박수를 받을만한 것이었습니다. 최종 면접은 이 교장의 일방적인 승리였습니다. 카도조고 시절부터 학생들을 리드하는 그만의 노하우가 있었던 덕분입니다.

 

교육계 투신 20년 만에 답스페리에서 아시안 1호 교장의 영광을 안은 그의 임용이 미 동부 한인 이민사에서도 평가할만한 것은 교육이 갖는 특수성과 중요성 때문입니다. 전체의 5%도 안 되는 유태계가 미국을 쥐락펴락하는 비결 중의 하나는 교육계와 공무원직에 특히 많이 진출한 요인도 있습니다.

교육은 미래 세대의 기초를 일구고 일선 공무원들은 국가행정의 실핏줄 아니겠습니까. 미 동북부의 공립학교에선 유태인 명절이 곧 학교 휴일입니다. 유태계 교사들이 많아서 학교를 열어봐야 수업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유태계 교사들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유태계와 이스라엘에 대한 호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한인교장의 존재는 이 지역 교육계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 상승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09년 10월9일 한글날을 맞아 답스페리고가 뉴욕의 공립학교로는 처음 ‘한글날(Hangul Day)’를 선포하고 한글 이벤트를 벌인 것도 이기동 교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미국 학교에 한국 문화의 알림이 역할외에도 답스페리에서 6년 간 일군 성과는 눈부십니다. 교장 부임 1년 만에 매년 뉴스위크가 미 전역의 3만2천여 개 공립고교를 상대로 점수를 매기는 우수고교 랭킹에서 답스페리는 당당 49위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습니다. 이후 5년 연속 100위 권에 랭크된 답스페리는 스마트보드라는 첨단수업기기를 이 일대 최초로 도입하고 ‘과학탐구 프로그램’과 교육리서치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공립 명문교로 자리잡았지요.

 

한국인으로서 무엇보다 그가 자랑스러운 것은 학생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을 두는 참 교육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30분이면 정문 앞에서 학생들을 맞이하는 유일한 교장이었습니다. 교장실은 마치 학생들의 쉼터처럼 언제 어느 때라도 자유롭게 출입합니다.

 
그의 집무실에 ‘절대 포기하지 말라(Don't ever give up)’는 제목과 함께 붙어 있는 그림은 - 두루미가 개구리를 반 쯤 삼킨 수간 개구리가 발을 쫙 벌리며 학의 목을 조이는- 학생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이 교장의 교육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졸업식은 이 교장에게 아주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25년의 미국 교직 인생을 정리하고 올 가을 한국으로 들어가기때문입니다. 그는 9월 26일 제주 서귀포에서 개교하는 영국의 명문사립교 노스 런던 스쿨(NLCS)에 부임할 예정입니다. 노스 런던 스쿨은 1850년 개교한 영국 최고 사립교중 하나로 유치원부터 초중고 과정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서귀포 대정읍 일대에 조성한 제주영어교육도시에 들어서는 최초의 외국계 학교로 이 교장은 노스 런던 스쿨의 전체 교감 겸 중학교 교장을 맡게 됩니다.

 

해마다 그러했듯 이 교장의 졸업식 축하연설은 감동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그는 이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는 헬렌켈러의 경구(驚句)와 함께 “졸업생 여러분은 가족의 품을 떠나지만 용기를 갖고 도전하는 삶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격려했습니다.

 


골프애호가인 그는 졸업 축하연설에 꼭 골프의 한 대목을 넣는데 이번엔 US오픈에서 12개의 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22세의 로리 맥킬로이의 사례를 들어 졸업생들의 투혼을 독려(督勵)하는 모습이었습니다.(맥킬로이는 졸업식이 열린 날까지 3라운드를 마친 상태였지요.)

 

 

이 교장은 “저 자신 역시 올해를 끝으로 정든 답스페리를 떠나 모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하다 감정이 복받친듯 말을 잇지 못해 주위를 숙연케 했습니다.

 

이 교장이 축사를 마치자 제프 보자노 교육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단상의 인사들과 졸업생, 학부모들은 기립박수로 존경을 표했습니다.

 

 

 

데브라 캐플란 답스페리 교육감은 축사를 마친 이 교장에게 감사장을 증정(贈呈)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올 가을 명문 NYU(뉴욕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는 한인학생 쥴리 김을 비롯한 졸업생들이 차례로 연단에 올라 이 교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 교장과 포옹(抱擁)하며 작별을 아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몇 명 되지 않는 한인 재학생들은 섭섭한 기색이 역력했지요. “한국 아이들이 별로 없는 미국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이 한국 분이어서 정말 자랑스러웠다. 좀 더 계셨으면 좋았는데 슬프다”면서요.

 

  

사실 이 교장 주변에선 한국 부임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그가 현재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환경에 굳이 도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지요.

앞으로 4년만 교직생활을 지속하면 평생 100%의 연금이 보장되는데 이걸 포기하는 것도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당분간 부인 유수연 씨와도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아들 강수 군(18)은 올 가을 코넬대에 진학하지만 딸 선아 양(16)은 11학년으로 전학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교장은 언젠가 한국에서 학생들을 위해 자신이 쌓은 교육정보와 노하우를 전해주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소 손해가 있다한들 모국에서 일 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답스페리의 한인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교장이 더 많은 한국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고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축하하고 격려를 할 것입니다. 모쪼록 이 교장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이기동 교장은 한국에 가서도 뉴스로 독자들을 위해 칼럼니스트로 계속 글을 보내줄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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