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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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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방중?’ 낯뜨거운 한국언론(上)8시간 오보릴레이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1-05-21 (토) 14:17:22

“북한 김일성이 암살됐다는 소문이 15일 나돌아 동경외교가를 한동안 긴장시켰다…. 이 소문의 내용은 중공국가 주석 이선념이 지난달초 평양을 방문하기전에 북한군 일부에서 김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암살기도 가담자들은 중공으로 도주했으며 북한이 중공측에 대해 이들을 돌려줄 것을 요구해 오던중 이 사건에 가담했던 나머지 일파들이 결국 김을 암살했다는 것으로 돼 있다.”

1986년 11월 16일 조선일보 동경특파원이 보낸 기사가 1면 4단으로 처리됐습니다. 이 기사이후 한국언론은 역사에 남을 오보 행진을 펼쳤습니다. 특히 김일성 피격설을 최초 보도한 조선일보는 휴간일인 17일 호외(號外)를 발행하며 ‘주말의 동경급전…본지 세계적 특종’이라며 자화자찬(自畵自讚)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른 언론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김일성 사망’을 기정사실화했구요.

그러나 18일 김일성이 몽고 주석 영접을 위해 평양공항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멀쩡한 사람을 죽었다고 나발을 불어댄 한국 언론은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버렸습니다. 이쯤되면 독자들에게 응당 사과하는 사고(社告)라도 나와야 정상이지만 우리 언론은 ‘국민 불신을 조장하는 북의 전략’이라는 어거지 주장을 늘어놓았을뿐입니다.

당시 오보소동은 안보상업주의가 판을 친 5공정권 치하에서 ‘카더라 통신’을 바탕으로 기사 아닌 소설을 써버린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自畵像)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5월 20일 우리 언론은 또다시 오보 퍼레이드를 펼쳤습니다.


    

연합뉴스는 20일 오전 9시11분부터 북한 2인자 김정은의 단독 방중(訪中)이라는 깜짝 놀랄 뉴스를 쉴새없이 속보를 쏟아내며 독자들의 눈과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은 약 8시간만에 김정일의 방중이 확인되면서 어이없는 오보로 귀결됐습니다.


이번 오보사태는 우리 언론이 ‘경마보도식’ 저널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보사태의 전말(顚末)을 꼼꼼이 들여다 보겠습니다.

  

오보의 서막은 5월 20일 오전 9시11분. 연합뉴스가 <긴급> 北김정은, 투먼통해 방중이라는 제목보도로 시작됐습니다. 5분후 베이징 특파원발로 김정은 방중소식이 인터넷에 출현했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2분후엔 베이징과 선양특파원발 기사로 김정은 방중이 ‘확인됐다’고 도장을 콱 찍었습니다. 웹페이지의 연합TV 동영상도 함께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1보이후 7분만에 확인까지 마치는 놀라운 스피드를 보인 것입니다.

연합뉴스의 기사는 모든 신문 방송 온라인매체의 웹에 실시간으로 게재됐고 이후 속보들이 눈부시게 이어졌습니다. 9시38분 서울/베이징/선양 기자들의 묶음 보도에 이어 9시48분엔 ‘외신긴급타전’ 제하로 AFP와 로이터가 “연합뉴스를 인용해 김정은의 방중을 보도했다”고 송고했습니다. 10시24분엔 지지통신과 NHK 등 일본언론이 역시 연합뉴스를 인용해 신속보도했다고 소개했고 28분엔 북경과 선양의 특파원 4명이름으로 ‘김정은 방중확인 단독방문인듯’이라며 방중을 재확인했습니다.

  

7분뒤에는 ‘정부 김정은 방중주시..후계자 과시의도’라며 우리 정부의 반응과 분석도 나옵니다. 같은 시간 민영통신사 뉴시스는 연합뉴스의 1보가 나온지 7분뒤인 9시18분 ‘北김정은 방중’을 짧게 보도했고 9시42분에 김정은 방중 2보를 띄웠습니다. 그러나 3보는 12시57분에야 나올만큼 월등한 기자숫자와 정보력을 갖고 있는 연합뉴스에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습니다.

 

 

김정은 방중 속보는 가히 연합뉴스의 독무대였습니다. 본사인력은 그만두고라도 해외특파원만 세계 39개 도시 47명(통신원 9명 포함)을 보유한 국가기간통신사에 감히 누가 범접(犯接)한다 말입니까.

‘中언론 北김정은 방중침묵’이라는 홍콩특파원발 기사에 이어 10시47분 ‘北김정은 탄 열차가 무단장으로 향했다’며 중계방송식 보도를 하면서 ‘김정은이 조부인 김일성 주석의 혁명유적지 순례가 예상된다’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11시5분부터는 <김정은 방중>이라는 꺽쇠로 감싼 소제목으로 독자의 시선을 고정시키며 분석 해설기사가 등장합니다. 서울외교가의 시각을 동원해 김정은의 방중이 6자회담 재개에 변수가 될 것이라는 기사와 11분에 ‘남북관계에 영향미치나’, 16분 ‘당국자 후계자 과시의도’가 차례로 올랐습니다.

11시 18분엔 종합2보로 ‘北김정은 방중..투먼도착후 무단장향해’가, 24분엔 김정은이 ‘아버지 경로따라 외교무대 데뷔’, 27분 ‘차기지도자 행보본격화’(1), 55분 ‘국제사회에 후계자 굳히기’라는 기사가 이어집니다.

정오엔 워싱턴특파원을 통해 ‘미-차분한 분위기속 주시’라는 미국쪽 반응이 송고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12시7분부터 44분까지는 김정은 방중 기사만 5개 연속 올라갑니다. 김정은이 ‘5월초부터 잠행(潛行) 철저한 준비’했다는 기사를 시작으로 14분 ‘차기지도자 행보본격화’(2) 17분 ‘야심많은 20대 후계자, 26분 ‘동선(動線), 아버지와 어떻게 다른가’, 44분엔 일본대학의 한국인교수 2명 등 북한전문가 3인이 분석하는 김정은 방북의 의미가 동경발로 게재됐습니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속보릴레이는 14시1분 <연합시론>으로 재점화됩니다.

<연합시론> 김정은 방중이 미칠 한반도 정세변화 주시해야 2011/05/20 14:01 송고

(서울=연합뉴스) 북한의 2인자인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0일 새벽 투먼(圖們)을 통해 중국을 방문했다. 김 부위원장의 방중은 작년 9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올라 사실상 후계를 확정지은 뒤 8개월 만이다. 그의 이번 방중은 중국으로부터 3대 권력세습을 '추인'받으면서 동시에 국제 사회에 후계자임을 과시하는 절차로 분석된다. 이번 단독 방중을 통해 홀로서기를 하면서 차기 지도자로서 위상 강화에 본격 나선 것이다. 김 부위원장의 방중은 이미 예견돼왔다. 중국은 그동안 여러 차례 김 부위원장의 방중을 요청해왔고, 올해 들어 북한의 후계 승계를 공식 인정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중국은 실제 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이 지난해 10월,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같은 해 12월 초, 멍젠주(孟建柱)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이 지난 2월 13∼15일 방북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부위원장의 방중을 요청했다.

김정은 부위원장의 이번 방중의 주된 목적은 정치.외교적인 목적이외에 북.중 경협 가속화와 조부인 김일성 주석의 혁명 유적지 순례를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작년 8월 6차 방중때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중경협에 합의한 후 양측 경협이 최근들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김 부위원장의 방북은 양국 정상이 합의한 것을 추후 챙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가 이번에 투먼을 통해 방중했고 투먼에 인접한 훈춘(琿春)시와 북한 원정리-라진을 잇는 도로 보수 공사 착공식이 오는 30일 착공식이 열린다는 점은 그의 방중 목적을 시사해준다. 중국 지린성의 야심적인 개발프로젝트인 '창ㆍ지ㆍ투(長吉圖)계획'과 북한 라진항 개발 연계는 북.중 3대 경협중의 하나이다. 김 부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는 이날 새벽 투먼을 넘어 무단장(牧丹江)으로 향했다. 이는 김정은이 작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중했을 당시 귀로였던 창춘-하얼빈(哈爾濱)-무단장을 역순으로 찾아 김일성 주석의 혁명 유적지 순례를 할 것임을 시사해준다.


김정은 부위원장은 이번 방중 기간 중국 차기 후계자로 내정된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을 만나 양국간 전통적인 우호 친선관계를 다지고 차기 지도자간에 상견례를 할 것으로 관측된다. 양측간 경협 강화 문제도 당연히 의제에 오를 것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권력 승계를 인정하는 것은 북한 체제의 안정이 자국 안보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판단때문이다. 이런 판단은 작년 북한의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동맹 체제가 강화된데 따른 대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의 1,2차 핵실험 때만해도 북한에 분노하던 중국이 작년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일방적으로 감싸안으며 거의 '혈맹'수준의 관계를 과시했다. 김정은의 방중으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입김이 강화되면서 양국간 안보와 경협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그의 방중과 향후 북중 관계의 진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14시23분엔 하얼삔 발로 ‘투먼지역 삼엄한 경비’라는 생생한 현장기사가 떴습니다. 25분엔 ‘한반도 정세에 제한적 영향’, 34분엔 평양조선중앙통신이 중국의 텐진을 소개했다는 보도가 이어집니다. 15시18분엔 김정은이 중국의 새로운 실력자 ‘시진핑과 회동하나..면담 유력’이라는 북경발 기사가 포스팅됐습니다. 이어 27분 ‘주목받는 북중경협’, 51분 日언론 김정은방중 후계체제 굳히기(종합) 등 관련기사들의 융단폭격이 가해졌습니다.

 

16시18분 ‘중국전문가 엇갈린 시각’은 또다른 의미에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3인의 중국인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김정은의 방중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만약 왔다면”하며 분석을 한 점입니다. ‘엇갈린 시각’이라는 제목이 김정은의 방중을 놓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 전문가들을 공교롭게 빗댄것처럼 보입니다.

  

16시28분엔 ‘수행단 면면에도 시선’이라는 가십성 보도가 나갔고 40분엔 ‘열차방문 이유는’이라는 해설기사가 이어졌습니다. 이 기사의 배경은 김정은이 왜 기차를 타고 중국을 방문했느냐는 의문을 해결해야 했기때문입니다. 비행공포증이 있다는 김정일이 특별열차를 이용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김정은이 굳이 기차여행을 선택한 이유를 그럴듯하게 분석했습니다.

 

16시47분 김정은이 머물고 있다는 홀리데이 인 호텔 소개가 나왔고 57분엔 ‘北김정은 단독방문 투먼-무단장 행보’에 이르기까지 장장 7시간 24분간 35개의 관련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같은 시간 불과 7개 기사만 올리는데 그친 뉴시스 통신과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오보퍼레이드는 오후 늦게부터 정부 사이드에서 김정은의 방중이 아닌 것 같다며 주의를 환기하면서 층격적인 반전(反轉)에 들어갑니다. 이미 뉴시스통신은 17시50분 1보로 정부 “北 김정일 방중..김정은 동행안해”라는 기사를 송고한 뒤였습니다.

 

1시간40분가량 침묵을 지킨 연합은 18시35분 소식통, “김정일 위원장 방중” 기사를 송고했고 20시20분엔 ‘김정일 방중..김정은 동행여부 확인안돼” 를 올렸습니다.  

사족(蛇足)을 붙이자면 김정은의 DB가 충분치 않아 연합뉴스와 뉴시스 공히 같은 사진을 계속 중복 게재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연출됐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시간대별로 돌이켜본 오보 릴레이 사태입니다. 연합이 이처럼 장시간 ‘착각보도’를 하게 된데는 정부 관계자가 “김정은이 방중한 것 같다”고 말한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문을 듣고 했든 정부관계자 말을 듣고 했든 확인의 책임은 언론이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후에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추측(推測)과 예단(豫斷)으로 홍수처럼 기사들을 쏟아내고 외신들까지 인용보도, 전 세계에 오보 도미노를 일으키게 한 것은 우리 언론의 신뢰도를 훼손시킨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언론사 역시 오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1보는 놓쳤다해도 2보부터는 정확하게 보도를 해야 하는데 연합의 기관총 사격에 덩달아 따발총을 쏘아대며 오보폭격에 동참한 꼴이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저를 부끄럽게 한 것은 오보사태보다 우리 언론들이 오보이후 취한 낯뜨거운 행동양식입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까지 어느 언론도 오보에 대한 사과나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뿐더러 되레 정부의 정보력을 탓하고 있기때문입니다.

<下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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