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럴줄 알았다. 축구장에서 피켓 들고 바다 횡단하고 전 세계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바보 맹구의 쑈로 볼것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게 대응해야 한다. 정치인들이여 당신들은 무엇하는가?”
세계최대의 검색엔진 구글이 최근 구글 맵에서 독도의 한국주소를 삭제(削除)했다는 기사에 올린 한 네티즌의 탄식입니다.

종전까지 구글을 통해 ‘Dokdo’를 검색하면 독도의 지도와 함께 한국 주소(울릉군 울릉읍 독도이사부길 63)가 표시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독도의 지도만 표시될뿐 한국주소는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섬명칭도 영어로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s)로 표기되고 있습니다.

혹시나 싶어 구글맵에 ‘Dokdo’를 입력하였더니 엉뚱하게 미국 뉴저지 팰리세이즈팍의 한인타운에 있는 횟집이 나오더군요. 그나마 네티즌의 품평이 좋지 않아 실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우리의 독도를 구글맵에서 찾기 위해선 ‘암초(Liancourt Rocks)’라는 한심한 입력어를 넣어야 합니다. 그것도 ‘일본해(Sea of Japan)’이라고 표시된 지도에 말입니다. 이제 독도는 구글맵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구글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각 시정을 요구했습니다. 글쎄요. 구글의 서비스를 받고 안받고는 자유이지만 이를 시정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무엇보다 오늘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겸허한 반성을 해야하기때문입니다.
‘독도가 우리땅’임은 우리 민족에게 ‘지구는 둥글다’라는 것과 같은 진리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지구는 둥글다고 자꾸 주장합니까. 왜국(倭國)의 자손들이 “다케시마는 저들땅”이라고 정기적으로 발작한다고 왜 우리가 부르르 떨며 남의 나라 신문에 거금을 들여 광고를 내고, 남의 나라 야구장에서 피켓을 들며, 급기야 올림픽 축구장에서 선수가 웃통벗고 ‘독도는 우리땅’을 들고 질주하냐 이겁니다.
지난 수년간 독도에 대한 잘못된 접근법으로 인해 세계인들은 독도가 한국땅임을 인지한게 아니라 일본과 영토다툼을 하는, 나아가 한국이 불법점유한지도 모르는 분쟁지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막말로 독도를 일본에게 뺏기기라도 했습니까? 멀쩡히 우리가 지배하는 땅을 놓고 ‘독도는 우리땅’이라며 돈들여 광고하고 세계 각처에서 줄기차게 떠들어대는 바람에 독도가 오늘날 ‘암초(Liancourt Rocks)’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요.
일본으로선 손안대고 코푼 격입니다. 얼마나 한심한 노릇입니까. 뻘짓의 ‘종결자’는 우리 대통령이었습니다. 지난 8월 광복절을 앞두고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독도를 방문함으로써 전 세계에 ‘독도=분쟁지역’임을 광고해주었습니다. 일본은 짐짓 격앙된 반응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환호작약(歡呼雀躍)했을 것입니다. 저들로선 잃어야 본전인 싸움이니까요.
구글은 이번 조치에 대해 “영토 분쟁지역에 대한 내부 정책에 맞춰 일부 지역에 대한 표기를 업데이트한 데 따른 것으로 해당 정부(일본)의 요청과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우리 대통령까지 나서 독도의 분쟁지역화에 기여(?)했으니 구글이 독도표기를 철저히 ‘객관적으로’ 전환한 것은 당연합니다. 도끼로 제 발등찍어놓고 왜 엉뚱한 사람 탓을 합니까.

▲ 도요토미 히데요시 www.ja.wikipedia.org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떠들 시간에 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조차 조선땅으로 인정한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하라고 목청껏 외쳤어야 합니다. 일본과 중국(청나라)이 멋대로 농단한 간도의 영토회복을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이제 제발 해외에선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말도 꺼내지 맙시다. 우리가 그럴수록 독도는 분쟁지역이 됩니다. 그것이 일본이 노리는 전략입니다.
오늘 한 포탈사이트에는 문패 옆에 하루종일 ‘10월 25일 독도의 날’이라는 그래픽이 있었습니다. 독도의 날이 선포된 계기는 2000년 독도수호대가 대한제국당시 울릉도의 관할구역에 독도를 포함시킨 고종황제칙령 제41호의 제정일인 1900년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기념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도수호대는 2004년 12월 10일엔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달라는 청원서를 국회에 접수, 천만인서명운동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독도의 날 추진에 자극을 받았을까요. 2005년 1월 일본 시마네현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로 지정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저들의 날은 일본제국이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시마네 현 부속도서로 편입 고시한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하자 마산시(현 창원시) 의회가 바로 대응에 나섰습니다. 2005년 3월 18일 ‘대마도의 날’ 조례를 제정한 것입니다. 시의회는 이날 109회 임시회를 열고 ‘대마도의 날 조례’안을 긴급 상정해 30명의 의원 가운데 출석의원(29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했습니다.
이날 제정된 조례는 조선 초기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를 출발한 6월 19일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마산시의회는 당초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폐기 촉구 결의안을 논의하다 공격적으로 하자는 분위기가 이어지며 ‘대마도의 날’ 조례 제정을 추진하게 됐다는 후문입니다.

마산시의회가 대마도의 날 제정으로 공세적으로 전환한 것은 백번 천번 잘한 일입니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다름아닌 우리 정부입니다. 당시 외교통상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불필요한 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자제를 부탁했다니 대체 외통부는 어느나라 정부기관인지 한심할 따름입니다. 가만이나 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노무현정부나 이명박정부나 ‘도낀개낀(도찐개찐)’ 입니다.
지금이라도 독도전략은 ‘조용한 외교’로 전환해야 합니다. 종전처럼 뒷짐 지고 구경만 하는 ‘조용한 외교’가 아니라 세계 각국의 교과서와 지도책, 출판사, 도서관 등의 오류(誤謬)를 시정하는 로비와 반크와 같은 민간단체에 최대의 지원을 하는, 진짜 조용한 외교 말입니다.
6월 19일 대마도의 날에는 본국은 물론, 지구촌의 한민족 모두가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행사를 가져야 합니다. 일본이 독도를 트집잡을수록 독도 대신 대마도로 대응하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일본이 멋대로 팔아넘긴 간도의 주권 회복을 위해 2005년 간도되찾기운동본부가 2005년 선포한 9월 4일 ‘간도의 날’도 온 국민이 기려야 할 것입니다. 1909년 9월 4일 일본과 청나라가 소위 간도협약이라는 국제사기극을 벌인 사실을 세계에 널리 알림으로써 언젠가는 우리가 찾아야 할 소중한 영토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 아래는 2008년 7월 15일 민영통신사 뉴시스에 특파원칼럼으로 올린 글입니다.
독도 대신 대마도를 논하라
[뉴시스] 2008년 07월 15일(화) 뉴욕=노창현특파원
영어로 ‘아일릿(Islet)’이라는 단어가 있다. 섬은 섬이지만 아주 ‘작은 섬’, 혹은 ‘섬 비슷한 것’을 말할 때 쓰는 단어다. 요 며칠 사이 외신들이‘아일릿’이라는 단어를 많이 올렸다. 바로 ‘독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 가수 정광태가 불러 너무도 유명해진 ‘독도는 우리땅’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우리 민족의 섬, 우리 영토의 막내둥이 독도는, 그러나 외신기자의 눈에는 한낱 ‘섬 비슷한 것’이요, ‘한국에선 독도, 일본에선 다께시마’로 소개하는 영토분쟁 지역으로 취급받고 있다.
독도가 이슈가 될 때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의 대응방식때문이다. 톡 까놓고 얘기하자.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건 일본도 잘 알고 있다. 무수한 역사자료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만일 독도가 일본땅이었다면 그들은 절대로 소극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영토를 잃고도 교과서 표기조차 상대국의 눈치를 본다는 게 말이 되는가. 벼룩도 낯짝이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명분쌓기 시나리오에 들어갔다.
독도를 영유권분쟁지역으로 만드는 것이다. 일본으로선 어차피 남의 땅이니 자꾸 들쑤셔 국제이슈로 부각시키면 대성공이다. 시간을 두고 분쟁지역이라는 자료를 축적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 미국의 주요언론과 통신사들 모두가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부르는 판에 일본해에 떠 있는 작은 섬이 당연히 일본 것이 아니겠느냐는 믿음을 제3자에 심어주는 것이다.
일본의 전략에 넘어가선 안 된다. 독도를 자기네땅으로 우긴다고 부르르 떨고 흥분할 필요가 없다. 아닌 말로 울릉도를 일본땅으로 주장한다면 날강도나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코웃음밖에 더 치겠는가.
그들이 쳐놓은 덫을 묵살하고 공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지혜가 필요하다. 신성한 우리의 땅을 지분대는 광인의 희롱을 물리치려면 우리의 소중한 독도로 응대해선 안된다. 우리에게는 대마도가 있다. 가수 정광태는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대마도는 잃어버린 우리의 땅이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불과 50km 떨어진, 맑은날 육안으로도 보이고 대마도 주민들은 “새벽에 귀기울이면 부산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할 만큼 가깝다. 반면 일본 홋카이도에선 그 세배인 150km나 떨어져 있다.
일본말 상당수가 고대 한국말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특히 대마도 방언에는 한국말의 자취가 진하게 남아 있다. 이남교의 ‘재미있는 일본말의 뿌리’를 보면 대마도에서 ‘초그만‘이란 말은 ‘키가 작은 사람’을 말하고 ‘높퍼’는 ‘키가 큰 사람;, ‘양반’은 그냥 양반(兩班), ‘바츨’은 ‘밭을 매는 줄’로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다고 한다.
대마도의 일본말인 ‘쓰시마(對馬)’도 ‘두 섬’이란 말의 ‘두시마’에서 ‘쓰시마’로 변한 것이라는 것이 다름 아닌 대마도 주민들의 증언이다. 고대 한반도의 도래인들이 거센 현해탄의 파도와 싸우며 쓰시마의 항구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 품안처럼 물이 잔잔한 항구의 이름을 ‘어머니’항으로 불렀는데 이 말이 한자어로 ‘엄원(嚴原)’이 되었고 이를 일본어로 읽어 ‘이즈하라(嚴原)’항구가 됐다는 것이다.
단지 말의 뿌리로만 추정하는 게 아니다. 저 유명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엔 대마도가 분명히 조선땅으로 기록돼 있다. 성종때의 황희 정승은 “대마도는 예로부터 우리땅으로 고려말기에 국가기강이 허물어져 도적의 침입을 막지 못해 왜구가 웅거하게 됐다”고 말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대마도가 경상도 계림땅에 예속됐다”고 했으며 영조때 실학자 안정복은 “대마도는 우리의 부속도서로 신라, 고려이래로 우리의 속도(속한 섬)로 대해 왔다”고 했다.
또 정조때 편찬한 ‘증보동국문헌비고’에는 “대마도가 지금 비록 일본의 폭력으로 강제 편제되었으나 본래는 우리나라에 속했던 까닭에 섬안의 언어와 의복이 조선과 똑같았다. 대마도민 자체가 스스로를 일본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12세기말 일본의 승려가 지은 ‘산가요약기(山家要略記)’에 “대마도는 고려가 말을 방목해 기른 곳이다.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심지어 풍신수길이 조선 침략을 위해 만든 지도인 ‘팔도전도’에는 독도는 물론, 대마도도 조선땅으로 표기해 ‘공격대상’으로 삼았다니 응당 찾아야 할 우리 땅이 아닌가.
어찌 할 것인가. 방법은 간단하다. 일본의 수법을 그대로 취하면 된다. 틈만 나면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국제기구에 제소해, 분쟁지역화 하는 것이다. 없는 것도 지어내는 일본인데 조선시대까지 관리를 파견한 한반도의 부속도서 대마도가 우리의 땅이라는 얘기를 왜 못 하는가.
이미 일본땅인데 너무 억지는 아닐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대마도가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선포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있다. 바로 이승만이다.
지난 3일 일본 NHK방송은 1948년과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이 두차례에 걸쳐 대마도가 한국령이라고 주장을 펼쳤지만 일본 정부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 일본 정부는 커다란 위기감을 가졌으며 “만일 유엔이 승인하면 (대마도가) 일본 영토에서 제외된다"며 대응책을 모색한 외무성 극비문서의 존재가 밝혀져 눈길을 끌었다.
만일 전후 한국 정부가 좀더 국제이슈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일본이 지금의 한국 정부처럼 냄비소리 요란한 대응을 했더라면 대마도는 이미 오래전 우리 땅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독도를 일본이 떠들 때마다 더 큰소리로 외치자.
“우리의 땅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하라"고.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05:54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