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엔 저마다 상징물이 있습니다. 파리 에펠탑. 런던 뉴욕 자유의 여신상 세계적인 대도시의 랜드마크들이 갖는 공통점은
하나같이 크고 웅장(雄壯)하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서울의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복원된 남대문? 남산에 솟은 타워? 딱히 이거다 할만한게
없습니다.
그럼 삼국시대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2000년 고도(古都) 경주는 어떠한가요? 첨성대? 불국사? 왕릉? 무수히 많은
문화재들이 있지만 웅장하다고 할 것이 없어 역시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주엔 13세기까지 600년 이상을 고고한 자태를 드러냈던 신라의 상징이 있었습니다. 바로 황룡사 구층목탑입니다. 높이가
80미터에 달했다니 요즘으로 치면 아파트 30층 건물이요, 1233년 몽골군에 의해 불타버릴 때까지 한반도에서 가장 높았던 건축물이었을
것입니다.
목탑이 소실되고 지금은 탑의 받침돌(심초석)만 남아있는데 크기가 동서로 약 4.35m, 남북이 3m, 두께 1.2m에
무게는 30t 이라고 하니 구층목탑의 규모가 얼마나 클지는 충분이 상상이 갑니다.
황룡사 목탑이 9층인 연유는 주변의 나라들을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제1층은 왜(일본), 2층은 중국(당나라), 3층은
오월(오나라와 월나라), 제4층은 탁라(탐라국), 제5층은 응유(백제를 낮춰서 부른 말), 제6층은 말갈, 제7층은 거란, 제8층은 여진,
제9층은 예맥(고구려)을 의미합니다.
www.ko.wikipedia.org
이 탑을 건축하면 주변국들이 저절로 신라를 섬길 것이라 하여 553년(진흥왕 14)에 늪지 2만5000평을 메워 공사를
시작해 645년(선덕여왕 15)에 완성하였다고 하는데 과연 삼국중 가장 힘이 없었던 신라가 훗날 통일을 하였으니 목탑의 영험 덕이었다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비록 황룡사 구층목탑은 소실됐지만 간접적이나마 어느 정도의 규모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경주엑스포공원에
있는 경주타워입니다. 2007년 준공된 경주타워는 높이 82m의 유리타워로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으로 디자인한 것입니다.
경주를 오랜만에 방문했기 때문에 경주타워 또한 당연히 처음이었습니다. 경주 방문은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가 주최한
재외동포기자대회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인데 마침 올해 9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경주-이스탄불 세계문화엑스포를 홍보하는 자리가
제공됐습니다.
이번 엑스포는 지중해와 중국의 서안을 연결했던 고대 실크로드가 경주까지 확장되었음을 학술적으로 확인하고, 경북도가 주요
해외 도시들에 신라문화와 한류를 전파하고 통상을 강화하기 위한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된 행사입니다.
지금 터키 이스탄불에서 행사가 한창인데 개막 9일만에 누적관객 200만명을 돌파했고 당초 목표인 250만명을 훌쩍 넘어
350만명을 달성하리라는 기대감이 일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신국의 땅, 신라’를 비롯해 한터키 전통패션쇼와 예술합동교류전, 세계민속공연축제
등 9개 분야 25개 문화프로그램에 ‘K팝 공연’까지 열리니 터키 국민들은 물론, 터키를 찾은 세계 관광객들을 통해 경주와 한국의 문화역사가 잘
전달될 것으로 믿습니다.
경주엑스포공원은 신라의 왕경숲을 재현한 곳으로 엑스포문화센터와 첨성대영상관 ‘시간의 정원’ 등 시설물과 공원이 조성돼
있습니다.
처음 본 경주타워는 황룡사 구층목탑의 형상을 빈 자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뭐랄까, 있는듯 없는듯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실된 구층목탑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것도 같고 만약 남아 있었더라면 이곳은 세계 최고의 유적지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더군요.
경주타워 앞 너른 선덕광장엔 공연극장이 들어있는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경주와 이스탄불을 잇는 각종 사진과 역사
자료들이 전시되어 두 도시의 지리적 간극을 좁히고 있었습니다.
이날 밤 공연도 볼 수 있었는데 관객은 적었지만 배우들은 최선을 다하는 열연을 해주었습니다.
끝나고 나서는 배우 전원이 밖에 나와 포토존에서 사진촬영 서비스도 해주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주타워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고 그 아래 신라역사문화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선 경주의 전경을 사방으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 그림이 보이네요. 경주엑스포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멀리 ‘시간의 정원’이
보입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황룡사 구층목탑은 왜 복원(復元)을 못하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초석이 있는 자리는 그대로
보존할 가치가 있으니 별도의 장소에 황룡사 구층목탑을 실물크기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언필칭 경주가 2천년 역사가 넘는 도시인데 놀이시설이나 새로운 건물보다는 역사의 향기가 우러나는 건축물을 지어야 할게
아닌가요.
웹서핑을 하다가 고건축전문가인 김홍식 명지대건축학과 교수가 2007년 내일신문에 황룡사 구층목탑을 복원하자고 제안한
기고문을 보았습니다.
김홍식 교수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전통 목구조로 복원하자고 주장하는데요. 단지 복원의 목적만이 아니라 중요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한옥 기술까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고건축과 관련하여 전통기술의 명맥이 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거대한 건축물을 복원한다면 관련 기술까지 복원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이나 기타 몇몇의 유명 건축물을 복원하여 전통기술을 전승 발전시키자는 김홍식교수의 제안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전 국토 천지 사방에 활룡사 구층목탑보다 큰 아파트빌딩을 수도 없이 지으면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적 건축물은 왜
복원해볼 생각을 못하는지 아리송합니다.
<5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