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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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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을 사랑한 스파이 로버트김, 그리고 김종훈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3-02-21 (목) 02:29:20

 

‘모국을 사랑한 스파이’ 로버트 김을 기억하시나요. 1996년 9월 24일 워싱턴DC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김(한국명 金采坤)이 주미 한국대사관의 해군 무관인 백동일(白東一 해사 27기) 대령에게 미국 군사기밀을 제공한 혐의(간첩죄)로 FBI(연방수사국)에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로버트김은 ONI(Office of Naval Intelligence)로 불리는 미국 해군성 정보국에서 컴퓨터 전문 문관으로 19년째 근무하고 있는 유일한 아시아계 미국인이었습니다. ONI는 첩보 수집부대였던 미국 해군 정보사령부(NIC)의 후신으로 세계 각처에서 수집한 첩보(諜報)를 취합, 분석하는 곳입니다.

 

백동일 대령이 로버트김을 처음 만난것은 1995년 11월 28일 한미해군정보교류 회의를 할때 미국측이 통역겸 회의진행자로 추천할 때였습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1차북핵위기로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다소 불편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북한의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이 먹힌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최대동맹국이자 북핵의 직접적인 위협당사자인 한국이 따돌림(?)을 받는 상황에서 백동일 대령과 같은 최고급 정보장교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이날 행사를 마치고 백대령은 로버트김에게 “열심히 도와주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제네바합의는 북핵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한 것이 아닙니다. 북핵으로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은 한국인데 미국은 제네바합의를 지키기 위해 한국의 불안을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첩보수집 능력에 한계가 있는 한국으로서는 북한군과 관련된 첩보를 제대로 입수하지 못하고 있으니 기밀이 아닌 사항은 김선생님께서 도와주십시요.”

 

로버트김은 “한국군의 대북첩보 수집 여건이 그렇게 열악하냐?” 고 놀라워하며 “도울 수 있는 한 도와주겠다” 고 대답했습니다. 이 만남이후 로버트김은 비밀로 지정되지 않은 것 중에서 한국군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자료가 있으면 우편으로 보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는 북한 주민과 북한군의 동요 여부, 국제사회가 보내준 식량이 북한군에게 유입되었는지의 여부, 휴전선 부근의 북한군 배치 실태, 북한이 해외로 수출하거나 수입하는 무기 현황 등 한국으로선 중요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기밀로 분류되지 않은 자료들조차 최대의 동맹국에 쉽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듬해 9월 18일 강릉에서 북한의 잠수정이 침투하는 초대형안보사건이 터졌습니다. 제네바합의를 어긴 북한의 도발(挑發)이었지만 미국은 “모든 당사자들(남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하지 말라”며 촉구해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남북한을 동급으로 놓고 도발을 자제하라는 미국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는 미국이 사전에 잠수정의 침투를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 알려주지 않았다는 의구심이 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사건 발생 엿새후인 9월 24일 워싱턴 DC의 포트 마이어 미국 육군 장교클럽에서 우리 정부가 주최하는 국군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백동일 대령은 이 자리에 로버트김을 초청했습니다. 행사가 시작될 무렵 양복 차림의 낯선 젊은이 3명이 찾아와 로버트김을 찾았습니다. FBI 였습니다. 그들은 백대령이 보는 앞에서 ‘국가기밀 유출혐의로 체포한다’며 로버트김을 연행했습니다.

 

FBI로부터 로버트김을 송치 받은 미국 연방검찰은 김씨를 간첩죄 혐의 등으로 기소했고 이 사건은 곧 한미 간의 외교 마찰을 불러왔습니다. 한국 정부는 “김씨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에 정보를 제공했는데 왜 간첩죄에 해당하느냐” 고 항의했으나 미국은 콧방귀만 뀔 뿐이었습니다.

 

1997년 7월 12일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연방지방법원의 브링크마 판사는 로버트김에게 “피고는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해 맹세한 충성 서약을 배반했다”며, 징역 9년에 주거 및 활동을 제한하는 보호감찰 3년형을 선고했습니다.

 

로버트 김은 약 9년의 감옥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쌓아올린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로버트김을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그를 위한 활동을 한 것은 후원회를 결성한 민간이었지요. 최우수무관으로 두차례나 선정되며 장성 진급이 유력시 된 백동일 대령 역시 미국의 요구로 귀국조치 됐고 계속된 미국의 압력으로 결국 제독(提督)의 꿈을 접고 군복을 벗어야 했습니다.

 

대한민국 무관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했기에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백동일 대령은 “로버트 김의 행동은 모국을 너무나도 사랑했기때문이다. 미국의 우방을 위한 일이 국익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감옥생활을 한다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며 가슴아파 했습니다.

 

로버트김의 행위가 사심이 없다는 것은 정보를 제공하는 동안 단 한번도 댓가로 금품을 수수한 적이 없는데서도 잘 드러납니다. 백동일 대령은 “로버트김에게 식사라도 한번 대접하고 싶었지만 번번히 거절했다”면서 “한국군 관계자를 소개시켜주기 위해 골프모임과 저녁식사를 한 것이 내가 해준 전부”라고 훗날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나 도산 안창호 선생이 추앙받는 것은 조국을 위해 몸바친 애국적인 행적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김선생은 모국에 대한 순수한 애국심 하나로 나를 돕다가 불의의 피해를 당했다. 로버트김 선생을 애국자 반열(班列)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신용불량자만 되어도 정상생활을 할 수 없는 곳이 미국인데 간첩으로 낙인찍혀 10년가까이 형을 산 사람은 하물며 어떻겠습니까. 오랜 수감생활로 그는 건강까지 해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김은 언젠가 한국에 돌아와 청소년들을 위한 애국심을 고취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드러냈습니다.

 

오늘 로버트김의 이야기를 소개한 이유가 있습니다. 박근혜정부가 핵심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후보로 재미동포 출신의 성공한 벤처기업가 김종훈씨를 낙점(落點)했기때문입니다.

 

알려진대로 그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15세에 미국으로 이민, 명문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고 기술경영학과 석사학위를 1년 빨리 마쳤으며 공학박사 학위는 메릴랜드대에서 3년만에 따냈다고 합니다.

 

1992년 자신의 딸 이름을 딴 벤처회사 ‘유리시스템즈’를 세운 뒤 1998년 ATM이라는 군사통신장치를 개발해 세계적인 통신장비 업체 ‘루슨트 테크놀로지’에 10억달러에 매각, 미국 400대 부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당시 38세였습니다.

 

2001년 메릴랜드대학 교수가 되었고 2005년 4월엔 외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벨연구소 사장직을 맡아 좌초(坐礁) 위기에 몰린 벨연구소를 회생시키는 등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photo by 뉴시스 최동준기자>

 

장관후보로 발표되기 사흘전 한국 국적을 부랴부랴 회복하는 등 이중국적의 신분에도 여론이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것은 이같은 성공신화가 바탕이 되었습니다.

 

능력있는 미국시민권자가 모국을 위해 공헌(貢獻)할 수 있다는 ‘열린 사고’가 한국에서 형성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스러운 일입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주류사회에 뿌리내리려 하지 않고 돈을 좀 벌면 한인단체장이나 맡다가 모국을 기웃거리며 관직이라도 하나 잡아볼까 하는 일부 재미동포인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그가 장관이 된다면 외국에 있는 1.5세, 2세 인재들이 그 나라 시민권을 갖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여 주류사회에 안착(安着)하고 언젠가는 모국에 돌아와 명예도 누리고 능력도 발휘할 수 있는 선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쉽지 않을 모양입니다. CIA(미중앙정보국)와의 남다른 관계때문입니다. 그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CIA 외부자문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일했습니다. 자문위원들은 대테러, 테러 비확산, 사이버 안보와 교전지역 등 업무를 브리핑받고 임무 달성을 위해 기꺼이 협력을 하는 존재입니다.

 

1999년 CIA가 정보기관에서 쓸 기술을 개발하는 벤처 발굴을 위해 설립한 투자펀드 ‘인큐텔’의 이사회에 참여했는가 하면 자신이 설립한 유리시스템스에 1996년 CIA 국장에서 퇴임한 제임스 울시를 이사로 영입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핵심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한다면 우려감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CIA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불법행동도 불사합니다.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로버트김 사건에서 보듯 국가의 이익은 상충(相衝)될 때가 많습니다.

 

한미간 이익이 부딛칠 때 그가 현재의 신분에 반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저버리진 못할 것입니다. 설사 그가 100% 대한민국을 위한 활동을 한다해도 남다른 커넥션이 있는 CIA 쪽에서 방치(?)할 것이냐는 문제와 그로 인해 경계어린 우리쪽의 시선도 불가피합니다.

 

상식적인 수준으로 볼때 그는 현재의 조국 미국에 대해 크나큰 자부심과 애국심이 돈독할 것입니다. 기회의 땅 미국에서 그는 보란듯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동경하여 마지않는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그가 미국을 얼마나 사랑하며 자부심을 가질 것인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합니다.

 

더구나 그는 미군, 그것도 해군장교로 7년이나 복무했습니다. 우리처럼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인 미국에서 스스로 군인이 된 그의 애국심은 보통의 한국인에 감히 비할 바가 아닐 것입니다.

장관 후보가 되기전에 모국을 위해 기여한 것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단지 미국에서 성공한 1.5세로서 한국 매체에 소개된 ‘자랑스러운 한국계미국인’입니다. 이제라도 모국을 위해 기여하겠다는 충정(忠情)은 이해하지만 과연 그가 핵심부처의 장관후보 제의를 받지 않았다해도 한국 국적을 회복하려 했을까요?

 

만일 미국이라면 어린 시절 한국에 이민간 미국인으로 한국군 복무까지 한 인물을 핵심부처의 장관으로 영입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요즘들어 미국의 한인 영주권자와 시민권자중에서 한국군 복무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한국군복무를 할 경우 훗날 미국에서 정보관계를 비롯한 공직에 오르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김종훈씨와 같은 나이에 미국에 온 아들이 있는 저로선 그가 1.5세, 2세의 ‘롤 모델’이 되어주기를 바라지만 그러기엔 살아온 궤적(軌跡)과 둘러싼 환경(環境)이 적합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모국을 사랑하고 돕고 싶다면 굳이 장관을 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CIA와 같은 정보기관과의 연계성이 있기에 서로간 눈에 띄지 않게 돕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박근혜정부가 정말 그를 기용하고 싶었다면 저항감이 적은 공직 후보로 추천한다든지, 모국에 어떤 형태로든 기여한 이후에 영입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가지 우려는 그가 융단폭격같은 여론의 화살로 깊은 상처를 입어 모국에 대한 원망만 남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에서 성공하여, 장차 모국을 위하여 정말 많은 일을 해줄 수 있는 인재를 상실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맞게 될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07:53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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