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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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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벗을 각오 하셨나요?

반총장의 걱정되는 환향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7-01-10 (화) 14:10:59

 

0412 Global Colloquium of University Presidents on the topic “Preservation of Cultural HeritageChallenges and Strategies”, at Yale University in New Haven, Connecticut.jpg

 

 

반기문(潘基文) 전 유엔 사무총장이 마침내 12일 환향((還鄕)합니다. 제가 반 전 총장을 처음 본 것은 2005년 외교부장관 시절 뉴욕 총영사관에서였습니다. 워낙 많은 동포 인사들이 자리한지라 악수만 하고 의례적인 인사를 나눴습니다. 소문대로 그는 겸손하고 온화했습니다.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이 나온다는 것은 사실 생각하기 어려웠던 시절입니다. 사무총장 임기가 재선포함, 10년인데다 대륙별로 돌아가는게 관행(慣行)인데 아시아의 몫이 되더라도 그 많은 나라에서 한국이, 그것도 분단국에서 배출한다는게 가히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려워 보였으니까요.

       

더욱이 반 총장 개인으로선 말 그대로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애당초 그는 사무총장 후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알려진대로 한국인 사무총장 후보로 처음 거론된 주인공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입니다. 유엔의 코피 아난 제7대 사무총장 임기가 2007년으로 종료됨에 따라 2006년은 후임 사무총장을 뽑아야 했습니다.

 

아시아출신은 버마의 우탄트 사무총장(3대 1961-1971)이후 36년만에 아시아에서 사무총장이 나올 것이 유력시됐습니다. 대륙별 순번제는 명문화된 규정은 아니지만 관행적으로 따르는 사항이었습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등 5대 강대국들은 사무총장 후보를 낼 수 없지만 한 나라라도 비토하면 사무총장을 할 수 없으니 생사여탈권을 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이들에게 배척받지 않는 나라의 후보를 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시켜보자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야심찬 프로젝트중 하나였고 언론사주 이상의 꿈을 꾸고 있던 홍석현 회장과 노무현 정부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0619 Secretary-General Visits Acropolis, Athens.jpg


 

일체의 외교 경력이 없는 홍석현 회장을 유력한 후보로 만들기위한 첫 번째 전략은 가장 중요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한국의 최대 동맹국 미국의 대사로 그를 보내는 것이었지요. 2004년 12월 홍회장이 깜짝 주미대사로 내정된 것이 유엔 사무총장 만들기의 공식프로젝트의 시작이었습니다.

 

노무현정부는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을 맡았던 홍회장의 국제적 감각과 미국 지식인층과의 두터운 교분,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지지해 온 합리적인 성품 등을 발탁 배경으로 밝혔지만 파격인사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특히나 노대통령 지지자들은 재벌의 대명사 삼성그룹과 긴밀한 관계의 보수매체 중앙일보 사주를 주미대사가 발탁한다는 것이 적이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도대체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은 당연했지만 한편으로 ‘홍석현카드’는 '조중동'에서 중앙일보를 분리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꿈보다 해몽식 분석이 나오는 등 결국 한번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정작 문제는 홍 회장이 공직을 맡기엔 흠결이 많았다는데 있었습니다. 홍 회장은 1999년 탈세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중앙일보 계열 보광그룹 세무조사 1000여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700억원에 이르는 소득을 탈루하고 262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 4년 및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검찰에 소환될 때 중앙일보 기자들이 검찰 청사 앞에 일렬로 서서 “회장님 힘내세요”라고 외치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바로 이때 일어났지요.

 

 

1230 Ban Ki-moon Makes Final Departure From UNHQ as Secretary-General.jpg

 

약 두달에 걸친 미국 정부의 아그레망이 끝난후 홍석현 회장은 2005년 2월 15일 주미대사로 정식 임명됐습니다. 그런데 임명 직후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일종의 설화(舌禍)를 빚습니다. 유엔 사무총장 관련 질문에 “적당한 시점에 정부가 도와준다면 꿈을 갖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밝힌 것입니다.

 

너무 솔직해서인지, 아니면 넘치는 자신감때문인지 모르지만 막 발령을 받은 주미대사로선 신중치 못한 처신이었습니다. 더욱이 당시는 북한의 ‘2.10 핵 보유 선언’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 상황이어서 주미대사가 취임 후 첫 회견에서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홍 대사가 이후에도 사무총장 도전에 대한 뜻을 표명했던 것을 보면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무총장으로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외교적 이력이자, 핵심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2006년 선거를 위해선 결코 시간이 많지 않았기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그해 7월 MBC가 특종 보도한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 'X 파일' 파문은 홍 회장의 원대한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홍 회장은 결국 주미대사 임명 5개월만에 사퇴했고 노무현정부도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708388.jpg

 

물론 국가적 프로젝트인 유엔 사무총장을 포기할 수는 없었지요. 홍석현 회장의 충격적인 낙마는 반기문 당시 외교부장관에게는 한줄기 서광(曙光)이었습니다. 사실 홍석현 회장만 없었 다면 반기문 장관이 처음부터 유엔 사무총장 후보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고 했는데 돌연한 산사태에 휩쓸려갔다고 할까요.

 

2006년 2월 유엔 사무총장 도전을 공식화한 반기문 장관은 초기만 해도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았습니다. 차기 사무총장이 ‘아시아 몫’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해도 선거준비를 할 시간이 절대 부족했고 초기에 인도의 샤시 타루르 유엔 사무차장과 수라끼앗 사티아라타이 태국 부총리 등이 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었지요.

 

어쨌든 정부가 총력전을 전개하고 반장관도 외교부 수장(首長)의 신분을 통해 중요 당사국들을 방문하며 선거 캠페인도 벌인데 힘입어 서서히 유력 후보군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초반 3차례의 예비투표에서 반 총장이 가장 많은 지지표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한방이 필요했습니다.

 

9월말 승리의 여신이 반총장에게 미소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군소후보였던 스리랑카 대통령의 고문 자얀타 다나팔라 유엔 사무차장이 전격 사퇴를 선언하면서 반 총장 지지를 선언한 것입니다. 반 총장은 다나팔라 사퇴 직후 실시된 4차 투표에서 찬성 14표, 기권 1표로 사무총장에 선출될 수 있었습니다.

 


Secretary-General Visits UN Bookshop.jpg

 

다나팔라 후보의 사퇴와 관련해 고인이 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생전에 “(반총장의 당선은) 스리랑카의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친분이 주효했다. 어차피 다나팔라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후보를 사퇴하고 반 총장을 밀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기문 총장도 성 전 회장의 ‘결정적 도움’으로 한국인으로서 첫 유엔사무총장이 될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고 이후 한국에 올 때마다 성 전 회장과 개인적인 만남을 지속했다는 후문입니다. 충북 음성이 고향인 반 총장은 성 전 회장이 설립한 충청포럼 회원인 데다, 동생 반기상 씨가 경남기업 상임고문을 지낸 인연(因緣)을 갖고 있습니다.

 

경남기업은 1978년 국내 건설업체로는 처음으로 스리랑카에 진출해 주택과 각종 인프라 건설을 했으며 국토개발 계획 및 쓰나미 피해복구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노무현정부가 반기문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등극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음에도 노대통령 서거후 반 총장과 친노그룹과의 관계가 뜨악해진 것도 처음부터 반총장을 밀어주지 않은 데 따른 서운함이 작용한게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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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투표에서 결정적인 승부수를 동향 기업가가 힘썼다면 세간의 추측과는 달리 노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이 그리 크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반 총장이 대북유화적인 참여정부와 체질적으로 다른 보수적 정치성향을 띄었다는 사실도 고려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반기문 총장은 천운으로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영광된 자리를 누렸습니다. 유엔이 언제까지 존속할지 알 수 없으나 한국인 사무총장이 다시 탄생하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아시아에 사무총장 몫이 돌아오는 것도 수십년이 걸릴뿐더러 또다시 한국인이 당선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기때문이지요.

 

그래서 반 총장은 한국인중 오직 한번뿐인 기회를 누린 기막힌 행운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 또한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에서 반총장의 재임 기간을 고스란히 지켜봤으니 기자로서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솔직히 유엔 사무총장은 화려한 이면에 어려움도 적지 않습니다. 사무총장이 제왕적 권위의 통치자가 아니라 197개 회원국의 이해를 조정해야 하는 관리자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회원국의 분담금으로 살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분담금 등 많은 재원을 출연(出捐)하는 경제 강국들과 특히나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들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반 총장이 첫 임기인 5년간은 이들 상임이사국을 의식하겠지만 일단 연임이 되고나면 할 말도 하고 과단성 있는 정책을 펼 것이라고 기대해 마지 않았습니다.

 

 

김민선 반총장 1228.jpg

 

반총장의 치적중 대표적인 것은 기후협약입니다. 1기 임기에서 지구온난화를 핵문제보다 심각한 것으로 강조하며 글로법 의제를 설정하는데 성공한 그는 2기에서 파리기후협정(2015년)을 맺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이전 기후협약이었던 교토의정서는 미국 등 주요국이 빠지는 등 구속력이 별반 없는 합의안이었지만 파리 협정은 미국을 포함, 195개국이 채택, 명실상부한 국제법으로 효력이 발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습니다. 임기 10년동안 지구 100바퀴를 돌며 154개국을 방문하는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며 세계 평화와 환경 문제 소수자 인권 문제를 환기시키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구촌 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참혹한 분쟁으로 사람들이 희생되고 인권은 유린되고 있습니다.

 

임기중 150개가 넘는 나라들을 방문한 반 총장이 어떡하든 한번은 이뤄졌어야 할 북한 방문을 못한 것도 안타깝습니다. 지구촌에서 가장 긴장된 지역으로 꼽히는 한반도 긴장완화에 견인차가 되고 남북화합과 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하기에 유엔 사무총장만큼 보기 좋은 모습은 없었을 것이니까요.

 

물론 방문 직전 북한이 돌연 취소하는 돌발사태 등 불운도 있었지만 북한의 그런 행동조차도 어떠한 원인제공을 하였는지 돌이켜봐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가 북한을 한번이라도 방문하여 일말의 성과를 거뒀다면 김대중 전대통령에 이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테고 대한민국의 압도적인 대통령 후보도 되었을 것입니다.

 

 

Portrait of Secretary-General Ban Ki-moon in front of the United Nations 2007.jpg

 

인권문제 역시 그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분쟁 지역과 난민 캠프에서 인권문제가 끊이지 않고 제기됐지만 청맹과니 상대를 향해 호소하고 규탄하는 허공속 외침의 이미지만 남았을 뿐입니다. 더욱이 사무총장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이 한일관계의 핵심인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쓴소리를 한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은 뼈아픈 대목입니다.

 

오히려 그는 2015년 12월 많은 문제를 낳고 있는 한일정부간 위안부 졸속협상에 대해 찬사를 보냄으로써 국민적인 반감만 초래한 상황입니다. 이는 대통령 출마를 결심한 그의 발목을 계속해서 잡을 수 있는 경솔한 태도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2007년 미국 연방하원에서 역사적인 위안부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을 때 공헌한 시민참여센터의 김동석 상임이사는 지난해 12월 반총장이 동포사회와 석별의 자리를 만들었을 때 참석하지 않겠다며 뼈있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2007년 미연방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추진할때 직.간접적으로 반기문총장께 지지발언을 요청했지만 ‘유엔내 일본의 힘을 모르는 요청’이라고 거의 핀잔에 가까운 말씀?을 들었고, 한국인총장이 한국이슈는 곤란하다는 거절을 들었다. 그래도 딱 한가지 기대가 있었다..., 그것은 총장님의 당당하고 떳떳한 북한방문. 그것을 확신하는 수준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빈곤과 공포’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신 반기문총장이 ‘빈곤과 공포’라는 가장 절절하고 절실한 현실의 ‘북한’을.....10년동안 왜? 단 한번이라도 찾아가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같은 분단국가 출신의 민족성원으로....화딱지가 날 정도의 실망감때문에 나는 그의 임기종료 어떠한 축하 행사에도 안가기로 결정했다.”

 

 

Secretary-General Visits His American Mom.jpg

 

반기문 총장은 왜 연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2기들어서도 강대국들 지도자 앞에서 할 말을 하거나 때로는 싫은 소리도 내뱉는 과단성을 보여주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반총장의 좌우명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부드러운 천품을 타고 났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기후협정을 반드시 임기내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세운 그로서 미국 등 주요국들의 동참을 위해 읍소를 할지언정, 비위를 거슬리는 말을 할 수는 애당초 없었던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반총장의 대표적인 치적(治績)으로 꼽히는 파리기후협정은 미국의 차기 대통령 트럼프가 대선 캠페인에서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고 혹평을 함에 따라 장차 어떤 운명을 맞을지 불확실해졌다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파리 기후변화협정은 일방적인 협정이고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취소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물론 트럼프가 공약을 번복할 가능성도 있지만 최소한 지구온난화 문제를 비롯한 기후협정에 관해 불신하고 호의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덧없는 상상이지만 만약 반 총장이 대통령의 야심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필경 그는 임기 1~2년을 남기고 부터는 소신껏 할 말을 하는 사무총장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212 신구 총장.jpg

 

국내 언론이 대선질문을 할라치면 손사래 치며 “임기 끝나는 날까지 사무총장직에만 충실하겠다”고 앵무새처럼 말할 필요도 없었겠지요. 20여명의 한인지도자만 불러낸 옹색한 작별 인사대신 10년간 동고동락한 많은 뉴욕한인들과 함께 코리아타운에서 잊지 못할 흥겨운 잔치도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마음을 비웠는데 뭐가 거칠게 있겠습니까. 퇴임후에는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경험한 모든 것을 갖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여하는 길로 뚜벅뚜번 나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남북이 화합하고 평화통일로 가는 가교(架橋)이자 위대한 리더로 역사에 남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되어 모든 우려를 털고 또다른 리더십을 보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에 앞서 반대 정치세력의 노도와 같은 공격과 전방위적으로 들이대는 송곳검증의 칼날 아래 깊은 내상(內傷)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상처뿐인 영광이라도 대통령만 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상처만 남고 영광은 없지 않을지 그게 걱정입니다.

 

 

0529 Secretary-General Visits Andong Hahoe Folk Villag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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