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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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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와 한동신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4-06-07 (토) 04:29:14


 


 

 


 


 

뉴스로가 창간 4주년을 맞았습니다. 신록(新綠)이 짙어가는 유월, 좋은 날을 맞았지만 마음은 무겁습니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로 어이없이 희생된 수많은 영령(英靈)들때문이겠지요. 아직도 그리운 가족품에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열네분이나 됩니다. 잠수부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만큼 한분도 빠짐없이 꼭 돌아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뉴스로 창간일을 맞아 그리운 분을 찾아 나섰습니다. 바로 한동신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이 하늘나라로 가신지도 어언 1년 반이 되가네요. 사계절이 한번하고도 절반이 흘렀습니다.


 


 

 


 


 

지난해 삼월 아내와 함께 처음 묘소에 참배(參拜)했을 때는 꽃샘추위가 어찌나 심했던지 마치 겨울의 한복판에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직 비석(碑石)이 세워지지 않았을 때라 계신 곳을 찾아 헤매다 세미트리(공원묘역) 오피스에 두 번이나 가서 물어보고 간신히 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옳게 찾은 것인지 걱정도 되었지요.


 


 

 


 


 

6월 4일 날은 쾌청(快晴)했고 화씨 80도 언저리여서 다소 더운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묘역인 워싱턴 메모리얼 파크는 롱아일랜드를 관통하는 495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내달려 Mt. Sinai 이정표가 있는 Exit 61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뉴욕 플러싱에서 약 50마일(80km) 1시간20분 정도 소요됩니다. 이곳에서 8마일 정도 북쪽으로 향하는데 중간에 베트남 참전기념비와 추모상징물이 있는 곳도 나오고 호젓한 숲길을 지나게 됩니다.


 


 

 


 


 

공원묘역 바로 앞에 화원(花園)이 하나 있었습니다. 수천종의 작은 화분들이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고 있더군요. 체리빛과 진노랑 연노랑의 미니화분 세개를 골랐습니다. 늘 복사꽃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시던 한동신 선생님이었지요. 이 꽃을 보면 예의 미소를 지어주시겠지요.


 


 

  


 


 

드넓은 묘역은 늘 그렇듯 고요합니다. 드문드문 서있는 비석만 없다면 멋진 골프코스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저만치서 골프장의 카트를 타고 이동하는 이들을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곳은 한인과 중국인을 위한 묘역(墓域)이 따로 조성이 돼 있습니다. 무궁화동산(無窮花童山)이 바로 한국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지난해 찾아 헤매던 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비석이 있었습니다. 한동신 선생님의 성함이 보입니다. 그 아래 남편분의 성함도 같이 한글과 영문으로 새겨져 있더군요.


 


 

 


 

 


 


 

준비한 화분을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지난번에는 꽃을 가져와 그 앞에 놓고 갔는데 알고보니 세미트리엔 ‘콘’이라는 것들이 있더군요. 아이스크림 콘처럼 생긴 원추형(圓錐形)의 플라스틱 케이스에 꽃들을 넣고 땅에 꽂을 수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잠시 눈을 감아봅니다.


 

‘한동신 선생님. 제가 왔습니다. 너무 무심했지요? 생전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메일을 주고 받고 늘 제 건강 걱정하며 동생처럼 아껴주셨는데, 생활에 바쁘다는 핑계로 이렇게 무심한 세월만 보냈답니다. 당신이 계실적에는 뉴욕 뉴저지에 계신 필진분들 모임도 자주 가졌지만 이제는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버렸습니다. 이 세상의 유의미한 웹진이 되겠다는 뉴스로의 창간정신이 너무나 좋다고, 뉴스로를 통해 아름다운 사랑의 씨앗을 뿌리자고 하셨지요. 그늘진 이웃을 돌보고 재능있는 어려운 예술가들도 돕자고 하셨지요. 오늘날 한류의 촉매제(觸媒劑)가 된 한국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을 미국 땅에 전파하는데 개척자와도 같은 역할을 하신 당신의 유지를 많은 후학들이 받들고 있답니다. 지난해는 한동신선생님 헌정 영화제가 맨해튼에서 열리는 뜻깊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젊은 영화인들이 대선배를 잊지 않고 추모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고 감사했는지요. 요 며칠 선생님께서 뉴스로에 주신 글들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1991년 문화이벤트사 오픈워크를 설립한 이래 일궈놓은 것은 실로 드라마틱한 결실(結實)들이었습니다. ‘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의 모든 글들은 행간 하나하나 순수한 열정과 삶의 체취가 배어 있었습니다. 신상옥 임권택 안숙선 박완서 김금화 김대실 마종기 김기덕 임순례 반기문 이해경...다이애나비, 까뜨린느 드뇌브, 메릴 스트립,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많은 인사들과의 일화를 유려한 필체로 녹여낸 글들은 어찌나 흥미진진하고 진한 감동을 남기는지요. 보통사람들의 작은 에피소드일망정, 사람에 대한 깊고 그윽한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담아낸 글은 오직 당신만이 쓰실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사랑하고 있는, 그리고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린 ‘내 안에 네가 있어 행복해”라는 글이 바로 그렇습니다. ‘좌충우돌 새색시의 로마의 휴일’은 한편의 요절복통의 소극(笑劇)이었지만 늘 그렇듯 따스한 감동의 여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더욱이 뉴스로 창간 1주년을 맞아 저와의 인연을 돌이키며 써주신 ‘뉴스로 승선기 다시 찾은 나침반’은 제가 이제껏 글로써 누린 최상의 호사(豪奢)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뉴스로를 아껴주시는 여러분과 같이 당신께서 쓰신 ‘뉴스로 승선기 다시찾은 나침반 5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뉴스로 승선기 다시찾은 나침반 5회’


 

.......

<전략>

......


 

2004년 행사이후 시간은 또 다시 그렇게 흘렀다. ‘황우석사건’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그 일도 잠잠해졌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던 ‘원더우먼’도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를 가슴에 새기고 살고 있던 어느 날, 맨하탄에서 열린 사찰 음식제에 갔다.


 

2010년 9월이었다. “한 숟갈의 밥알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에 우주의 기운이 스며있다”를 내게 가르쳐 준 사찰음식의 대가들이 대거 참석, 사찰음식제는 대성황(大盛況)이었다.


 


 

▲ ‘열두달 절집밥상’의 저자인 대안스님과 함께


 

음식제에 셰프로 온 대안 스님을 만나기 위해 내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서는데 바로 내 뒤에 앉아 있는 낯익은 남자의 얼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노창현 국장님?”하고 불렀다.


 

뭔가를 쓰던 노창현 기자도 고개를 들며 금방 나를 알아보았다. 참으로 즐거운 자리에서 만난 축제같은 만남이었다. 그는 요즘 ‘뉴스로’라는 웹진을 운영하고 있다며 한번 살펴 보라고 했다. 글 쓰는 사람을 만나면 절대 놓치는 법이 없는 그인지라 바로 다음 날 ‘뉴스로’를 훑어 보았느냐?는 전화가 왔다. 물론 나도 사찰음식제에서 돌아오자마자 ‘뉴스로’를 훑어 보았노라 답했다.


 

칼럼형신문이니만큼 기사가 많아 다 읽어 보진 못했으나 ‘뉴스로’가 어떤 신문이든 글을 쓰겠다고 했다. 노창현 기자는 모르고 있겠지만, 그가 부탁을 하기 전에 나는 이미 그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해주겠다고 지난 7년간 벼르고 살았다.


 

언젠가 내가 보낸 황우석 박사의 강연 전문(全文)을 소개하기 위해 토씨하나 빼놓지 않고 옮겨 적었다는 얘기를 지인에게 듣고 깜짝 놀랬거니와, 그 얘기를 들으며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의 한 승려가 콩 한 알에 불경(佛經)을 옮겨 썼다는 일화(逸話)가 생각났다. 그저 얘기로만 듣고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노창현 씨에게 늘 갚아야 할 빚을 진 기분이었다.


 

2004년 행사이후 노창현 기자가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대한 기대와 인간 황 박사를 진심으로 자랑스러워 하며 썼던 기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기에 나도 ‘뉴스로’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다.


 

노창현 씨와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한 글이 이제는 제법 쌓였고, 내 글을 쓰며 읽게 된 다른 이들의 글이 매우 흥미로웠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돌며 글쟁이들이 있다면 정박(碇泊)하는 배처럼 ‘뉴스로’는 세상을 돌며 글로 우리들의 마음을 묶고 있다.


 

열심히 사는 일에 내공을 쌓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 역시 오늘을 살아 낼 기운을 얻는다. 한때는 참 지겨웠던 사람들, 내게 상처를 준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너무너무 다행인 것은 ‘뉴스로’라는 배위에 올라 탈 무렵, 내 마음이 가벼워져 무게를 싣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다. 만나지 않고도 이미 만난 것처럼 아니 아주 오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되어 버린 ‘뉴스로’ 필진들 그리고 노창현 대표.


 

나는 그들을 언제 어디서 만나도 손을 덥석 잡을만큼 내 마음이 열려 있다. ‘뉴스로’에 글쓰는 이들이 내게 준 자유다. 가식(假飾) 없이 본래의 목소리로 노래하라고 용기를 준 그들이 가족이 된 사연을 얘기하기 위해 ‘승선기(乘船記)’는 이렇게 길고 긴 글이 되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10:47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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