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글날(10월9일)은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頒布) 정신을 기리고 한글 연구와 보급을 장려하고자 한글 창제 500주년인 1946년 제정됐고 1970년에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그러나 재계와 일부 정치권에서 ‘공휴일이 너무 많아 노동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제기해 노태우정권시기인 1991년부터 국군의 날(10월1일)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됐습니다.
당시 한글학회를 비롯한 한글단체들, 노동계가 강력 반발했지만 노동생산성의 논리에 사로잡힌 청맹과니들에겐 씨알도 안먹혔지요. 국가적인 기념일을 그저 공휴일, 노는날로만 인식하는 한심한 작자들로 인해 한글날의 의미는 퇴색하고 젊은 세대는 한글날이 언제인지도 헷갈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위대한 문자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세계 어느나라의 문자도 한글에 필적(匹敵)하는 것은 없습니다. 한글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한글을 반포한 사람과 시기, 창제원리를 아는 유일한 문자이기때문입니다.
인류는 상형문자(象形文字)로 최초의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한자도 그 범주에 속하는 뜻글자, 표의문자(表意文字)입니다. 문제는 모든 사물과 대상을 각각의 뜻글자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나(支那-중국)에서 기본적인 한자를 최소 3천자로 규정한 것도 그때문입니다.
말이 3천자이지,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루 황..’ 외워야 하는 천자문의 3배나 되는 양을 알아야 무식하다는 소리를 면한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지나인의 문맹률(文盲率)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한글은 소리글자, 즉 표음문자입니다. 영어의 알파벳이 26개의 철자인 반면 한글은 24개(자음14 모음10)입니다. 숫자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외우기 간편한다는 것입니다. 영어와 한글을 똑같이 모르는 외국인이 두 문자를 익힌다면 일방적인 승리는 한글입니다.
이화여대 최준식 한국어학과 교수의 글을 잠시 인용합니다.
한글은 다섯 개의 자음(ㄱ∙ㄴ∙ㅁ∙ㅅ∙ㅇ)과 3개의 모음(ㅏ,ㅡ, ㅣ)이 기본입니다. 아다시피 자음은 이 다섯 글자를 기본으로 획을 하나 더하는 식으로 다른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ㄱ·ㅋ·ㄲ’ 등등.. 앞 글자 다섯 개만 알면 다음 글자는 그냥 따라옵니다. 아주 쉽지요? ^^
게다가 이 다섯 자음은 발성 기관이나 소리 나는 모습을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에 외울 필요도 없습니다. 가령 ‘ㄱ’을 ‘기역’ 혹은 ‘그’ 라고 발음해 보세요.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과 똑같거든요. 또 ‘ㅇ’, ‘이응’을 발음하면 목구멍이 열리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배우기가 아주 쉬운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글이 소리와 글자의 상관관계까지 생각해 만든 글자라는 것입니다. 영어의 ‘city'는 ’시티‘보다는 ‘시리[siri]’라고 발음됩니다. 또 ‘gentleman’은 ‘제느먼[ʤénmən]’으로 발음됩니다. 이것은 t라든가 r, n은 같은 어군이라 서로 음이 왔다갔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영어 글자들은 그 생김새에 아무 유사성이 없어서 다 따로 외워야 합니다.
그러나 세종께서는 이 글자들이 모두 혓소리(설음, 舌音)에 속한다는 것을 아시고 같은 군에 모아두었습니다. 즉 ‘ㄴ·ㄷ·ㅌ·ㄸ(ㄹ은 반혓소리)’이 그것으로 글자의 형태들을 유사하게 만들었습니다.
모음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그 복잡한 모음 체계를 어떻게 점(ㆍ) 하나와 작대기 두 개(ㅡ, ㅣ)로 끝낼 수 있었을까요? 가장 간단한 것으로 가장 복잡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ㆍ, ㅡ, ㅣ’에는 각각 하늘∙땅∙사람을 뜻하는 높은 철학까지 담겨 있습니다. 한글은 이렇게 간단한 모음 체계로 가장 많은 모음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천재적 창조성 때문에 우리 한글은 휴대폰에서도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자판에 한글을 다 넣어도 자판이 남아돌아가니 말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문자가 있을 수 있을까요?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과학적인 원리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 있는 램지(Ramsey) 교수는 한글날에 학생들과 조촐한 자축연을 했답니다. 이렇게 멋진 문자가 나온 날을 축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입니다.
한글예찬론은 이쯤 하구요. ^^
한글이라는 낱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주시경(周時經) 선생(1876-1914)입니다. 한글의 ‘한’은 한민족의 ‘한’도 되고 ‘크다’라는 우리 말 뜻도 있습니다. 한글은 즉 우리 글자, 큰 글자라는 뜻이지요.
황해도 봉산에서 서당 훈장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주시경 선생이 한글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열여섯살 때 서당에서 시전(詩傳)을 배우던 중 한문을 우리말로 풀이하는 과정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문을 우리 글과 말로 해석하는 여러 가능성을 모색하며 우리말 연구에 뜻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1908년 선생이 조직한 국어연구학회는 1911년 조선언문회(배달말글몯음)으로 개명됐고 1913년 다시 한글모로 고쳐불렀습니다. 한글이 공식제목으로 첫 등장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선생은 1914년 불과 서른여덟의 나이로 별세했지만 최현배 선생 등 후학들은 한글연구 보급에 박차를 가했고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가 주동이 되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반포한지 480주년이 된 해를 맞아 기념식을 갖고, 이날을 제1회 '가갸날'로 정했습니다.
음력 9월 29일을 기준한 것은 <세종실록(世宗實錄)>에 1446년(세종 28년) 음력 9월 훈민정음이 반포되었다고 기록돼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인 29일을 ‘가갸날’로 정한 것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927년 조선어연구회 기관지 <한글> 창간을 계기로 ‘가갸날’은 ‘한글날’이 되었습니다. 한글날은 1934년 양력 환산법을 적용해 10월 28일로 정정됐다가 1940년 7월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에 반포일이 9월 ‘상한(上澣)’으로 나온 것을 알게 되어 상순의 끝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 10월 9일로 확정된 것입니다.
왜정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글학자들이 이처럼 한글날을 기리는 활동을 가열차게 벌인 것은 왜국의 강점에 따라 위협받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었을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한글과 한글날을 아끼고 기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한자 또한 소중한 우리의 글자라는 사실입니다. 강조하건대 한자는 지나족의 문자가 아닙니다. 본래 우리의 조상이 만든 우리의 글자라는 것입니다.
이번엔 한겨레 홍대선 기자의 ‘한자도 우리글이다’를 요약 소개합니다.
한자의 기원은 3,300년전 사용된 은나라의 갑골문을 그 기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나인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지나국 고대사의 확실한 연대는 주나라때부터 표기되는데 그 이전의 왕조였던 은나라는 동이족의 국가이고 은나라의 건국시조(始祖) 또한 동이족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럼 동이족의 국가가 만든 문자(한자)는 당연히 동이족, 우리 배달겨레의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나인들이 한자문자의 시조로 숭상하는 창일 역시 자부선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동이족입니다.
동이배달한민족의 상고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만물을 형상화한 한문이 신시배달시대의 녹도문자가 뿌리가 되어 탄생한 뜻글자인 것처럼 한글 또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세상에 없던 것을 창작한게 아니라 단군조선시대의 가림토문자를 기본으로 집대성(集大成)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한문과 한글은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보유 발전시켜 온 소중한 나라글이라는 것입니다. 뜻글자인 한자가 음의 문자라면 소리글자인 한글은 양의 문자로 이 두 개의 문자를 함께 써야 만 우리 말과 글은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할때까지 우리는 남의 나라 문자를 빌려쓴게 아닙니다. 본래 우리 것인데 남의 것으로 알고 빌려쓴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만약 한자가 지나족의 것이라면 왜 하나의 한자어를 읽을 때 두 개 이상의 발음이 될까요.
무슨 얘기인고 하니 ‘學’을 우리는 ‘학’으로 1음절로 읽지만 지나인들은 ‘슈에’라고 2음절로 읽습니다. 그런가하면 ‘水’를 우리는 역시 ‘수’, 1음절인데 지나인들은 ‘수웨이’라고 3음절로 읽습니다. 우리는 모든 한문 한 글자를 정확히 한 개의 발음으로 읽는데 지나인들은 두 개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자는 본래 우리 것이요, 지나인들에겐 외국어와 같은 대상이라는 증거가 아닐까요.
재야 사학자 박문기씨는 한자가 우리 글이란 근거로 한자에 깃든 문화와 관습이 중국보다 우리와 가깝다는 점을 듭니다. 예컨대 '家'(가)는 집을 뜻하는 면(갓머리)자와 돼지 시(豕)자가 합쳐져 '집안에 돼지가 있다'는 뜻인데 중국에서는 돼지를 집안에서 키우는 풍습이 전혀 없습니다. 반면 우리는 전라도, 제주도에 이 풍습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또 글자의 소리를 보더라도 한자가 우리말에 가깝다고 합니다. 호흡의 발음을 살펴볼 때 우리는 날숨, 들숨의 형태이지만 지나인들의 발음은 ‘흐쓰’입니다. 두 발음 모두 날숨입니다. 한자는 지나인들의 발음과는 맞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은 반면 우리의 발음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유창균 계명대 석좌교수(국문학)가 1999년 '문자에 숨겨진 민족의 연원'이란 저서에서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한자가 지나족만의 문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오늘날 한자를 활용하는 동북아 국가는 우리나라와 지나, 일본, 대만, 베트남 등입니다. 즉 한자는 백걸음 양보해도 동북아의 제 국가들이 오랜 세월 사용하고 발전시킨 공동의 문자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한자는 영어로 Chinese character가 아니라 East Asian charcter 가 되야 합니다.
한자를 우리 문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천년에 걸쳐 한자로 쓰인 역사의 기록물들을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얼과 문화가 담긴 기록물들을 남의 것으로 돌린다면 우리는 영원히 정신적 식민상태에 갇혀 있을 것입니다.
‘글로벌웹진’ 뉴스로가 ‘한자(漢子)가 아니라 한자(韓字)다’라는 슬로건 아래 주요 단어를 한자로 병기하는 이유도 바로 그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모든 매체들은 한자를 남의 글자 취급함으로써 국민들을 한자문맹자로 만들고 한민족정체성 위기의 시대를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두가지 문자인 한글과 한자는 뗄 수도, 떼어서도 안되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한글날은 법정공휴일로 복원(復元)되야 합니다. 기왕이면 말과 글 모두를 포괄하는 ‘한국어의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또다른 문화유산인 한자도 같이 기리는, 진정한 의미의 한(큰) 글로 융성(隆盛)하는, 열린 한글날이 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