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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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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는 왜 ‘매맞는 목사’가 됐을까(上)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2-05-23 (수) 05:44:23

 

외국인노동자의 대부, 이주민의 영원한 친구, 매 맞는 목사...김해성 목사를 이르는 별명들입니다. 저는 이중에서도 ‘매 맞는 목사’라는 별명이 맘에 듭니다. 아마 김해성 목사도 그렇지 않을까요.

‘매 맞는 목사’라는 별명은 기실 영예로운 것입니다. 인권의 死角地帶(사각지대)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시위 현장에 앞장섰다가 당한 훈장같은 상처니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김해성 목사를 외국인노동자와 이주민을 위해 헌신하는 분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이는 한신대를 졸업한 목회자로서 86년 성남에 노동자선교를 위해 ‘산자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도시빈민을 돕고 이를 탄압하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의 기수였습니다.

전두환-노태우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악착같이 싸우다 맞고, 쓰러지고, 끌려가고 노동자를 대신해 목숨을 걸다시피하면서 악덕사업주에 맞서 싸우는 그이를 보고 사람들은 ‘매 맞는 목사’라고 불렀습니다.

 

잠깐 그이의 회고를 들어보겠습니다.

“한동안 나는 ‘매 맞는 목사’로 통했다. 성남 지역에서 시위하면 빠지지 않고 앞장섰다. 6월 항쟁 때는 집회마다 앞장서서 마이크를 잡고 시위대를 이끌었다. 또 시국사건에 대한 기독교계의 항의 시위나 집회 때도 나는 단골 선동자였다. 전두환 정권 당시 민정당 중앙당사를 항의 방문했다가 목사 50여명과 함께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다. 앞장서서 항의하다가 폭행을 당해 고막이 터지고 뇌진탕을 일으켜 실신했다. 오래도록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노태우 후보가 성남에 유세를 왔다. 현장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정보과 형사가 찾아왔다. “제가 오늘은 목사님을 꼭 막아야 합니다. 목사님 막지 못하면 제 목이 날아갑니다.” 그는 상부의 지시 내용을 보여주며 하소연했다. 강제로 막으면 담이라도 넘어가겠지만 인간적으로 호소하는 데는 어쩔 수 없어 반강제 연금을 당했다. 연금에서 풀려나자 오토바이를 타고 유세 현장으로 갔다. 무개차 위에 서서 손을 흔들며 나오는 노태우 후보와 코앞에서 눈이 딱 마주쳤다. 순간 죽은 친구 유동운의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광주 학살 책임 지고 노태우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호원들이 비호같이 덮쳐 죽도록 때렸다. 나는 닭장차로 끌려가 또다시 맞았고 턱뼈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당시 성남경찰서에서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취업을 방해했다. 주민교회와 산자교회 교인들은 연합해 성남경찰서 정문을 막은 채 기도회를 열었다. 경찰이 우리를 강제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팔꿈치, 나는 갈비뼈가 부러졌다. 같은 병실에서 두 달여 만에 퇴원한 그날 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열려 있는 맨홀에 오토바이 앞바퀴가 걸려 또 사고를 당했다. 겨우 붙었던 갈비뼈가 다시 부러졌다.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음독자살 분신자살 등이 이어져 어쩔 수 없이 나는 가슴에 복대를 하고 나가서 대책회의를 여는 등 지원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고난을 이겨내자 우리나라에 민주화된 정권이 들어서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도 이루며 당시의 투쟁은 민주화운동으로 명예회복도 되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誓願(서원)은 김해성 목사를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이주 노동자들이 증가하면서 그들은 어느샌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이 되고 있었습니다.

92년 12월 김해성 목사는 필리핀 노동자 에리엘 갈락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는 산재사고로 오른쪽 팔뚝이 절단된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보상은 커녕 밀린 병원비에 시달리며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불법체류자가 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의 이주노동자를 도와준 게 인연이 되어, 어려운 처지의 이주노동자들이 주변에 점점 더 몰려들었고, 김해성 목사는 이주노동자와 조선족 등 이주민을 위해 일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구로구 가리봉동엔 돈 없고 아픈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이 있습니다. 김 목사가 2004년 문을 연 곳입니다. 그동안 김해성 목사도 만나고 이곳 시설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통 기회를 못갖다가 지난 봄 서울 방문길에 들를 수 있었습니다.

 

지구촌사랑나눔은 92년 외국인노동자를위한 상담과 급식소, 쉼터 운영을 시작으로 만 20년간 쉼없이 달려와 오늘날 140만 이주민들의 聖所(성소)와도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가리봉동과 오류동 두 곳에 사업장이 있습니다. 도와야 할 사람들은 많고 시설도 필요하지만 재정도 넉넉치 않고 한곳에 모을만큼 공간도 크지 않기때문입니다.

 

제가 김해성 목사와 만나기로 한 곳은 가리봉동 사무실.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밸리역에서 하차해 3번 마을버스를 타고 두 정류장을 가서 가산초등학교 앞에서 하차했습니다.

 

 

육교너머 낡았지만 아담한 건물이 보입니다. 문 앞에 '이중표 목사기념관'이라는 명패가 걸려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기증하신 건물이라고 하네요.

 

이곳엔 돈없고 힘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외국인노동자 의료센터가 있습니다.

   


혼자서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사무실 같은 곳이 안보이길래 다시 나와 전화를 할까말까 망설이는데 다른 건물에서 김해성 목사가 달려나왔습니다. ^^

 

1층 안쪽엔 넓은 홀이 있었는데 수백명은 족히 앉을 탁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아침과 점심 저녁 하루 세끼를 무료로 배식하는 무료급식소입니다.

 

주방에 계신 아주머니가 목사님께 누룽지를 드리면서 저도 맛보았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또한 남녀로 구분된 이주민 쉼터와 중국동포교회가 5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알고보니 지구촌사랑나눔 사무실과 이주민방송MN-TV, 지구촌그룹홈은 오른쪽 건물에 따로 있더군요.

 

‘글로벌웹진’ 뉴스로에서 취재를 나왔다고 고맙게도 직원분들에게 저를 위해 특별한 가이드를 당부했습니다. 덕분에 구석구석 탐방하며 취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강영석 사무국장과 후원팀의 김지선 씨, 손하영 지역아동센터장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엔 이주민방송국 MN-TV가 있었는데요. 김현숙 PD에 따르면 무려 13개 언어로 방송이 된다고 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이주민 노동자중에 아나운서 등 전문 인력이 있는만큼 이를 최대한 활용한 것이지요. 한국내 이주민들을 위한 내용은 물론, 한국에 올 예정인 노동자들, 관심있는 현지인들을 위한 작지만 큰 방송이었습니다.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워낙 하는 일들도 많고 필요한 시설도 늘어나다보니 공간이 좁아 바로 옆 건물에 교육시설 일부를 임대하고 있었습니다.

 


컴퓨터 교육실과 체력단련실, 작은 휴게실도 있었습니다.

 

 

외국인인력지원센터도 눈길을 끌었는데요.  

   

중국 몽골 미얀마 베트남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등 각국 언어로 이주노동자들의 상담을 받는 콜센터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일을 하다가 일부러 저를 위해 일어나서 포즈를 취해주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일어난 김에 오른쪽에 있는 여성분을 위해 한커트 더 찍었습니다.

 

아무튼 대단했습니다. 한사람의 사랑과 신념이 얼마나 큰 일을 만들 수 있는지 깨달았다고 할까요.


 

<下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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