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을 가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가장 뿌듯한 경우는 언제일까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지만 저는 국민의 권리인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미성년이었을 때 저는 투표권을 행사하는 나이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어렸을땐 그게 참 부럽더라구요. 한 사람의 당당한 성인이 되었다는 認證(인증)과도 같은 것일까요. 그런데 저의 첫 투표는 참으로 한심했습니다.
1980년이었습니다. 서울의 봄, 그리고 광주민주화항쟁. 그러나 전두환의 신군부세력은 몸소리치는 피의 진압을 하고 ‘꼭두각시 대통령’ 최규하를 퇴진시켰습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無所不爲(무소불위)의 권한을 앞세워 전두환소장은 군복을 벗고 대통령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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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형식입니다. 비록 사기극일망정 형식을 밟아야 합법적인 탄압을 가할 수 있으니까요. 그해 10월 23일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지금 돌이키면 코웃음이 나옵니다. 방송에서 보도하기를 새 헌법은 언필칭 행복추구권이라는 것을 신설하고 환경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불가침 등 현대적 인권을 명문화하는 등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을 무자비한 살육하고 박정희가 만든 체육관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된 독재자 후계자가 인권을 강조한 헌법을 만들다니요. 그러면서 여전히 대통령은 비상조치권ㆍ국회해산권을 갖고 대통령간선제로 국민의 자유로운 정부선택권을 봉쇄하였으니 눈가리고 아웅이었지요.
난생 처음 투표를 하는 날, 개헌 동의를 묻는 찬반투표였습니다. 비밀투표지만 누군가에게 관찰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과민했을까요. 그러나 당시 사회 분위기는 경직되고 살벌했습니다. 구세군 장군이라는 사람이 TV방송에 나와 대머리의 한 군인을 난세의 영웅처럼 칭송하는가하면 ‘황강에서 북악까지’라는 그의 일대기가 서점가를 뒤덮었습니다.
전두환, 아니 당시 정권을 비판했다가는 소리소문없이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5.16쿠테타이후 박정희 소장이 그랬던 것처럼 전두환 소장도 소위 사회정화운동이라며 죄도없는 사람들을 삼청교육대라는 곳에 끌고가 혹독한 집체고문을 했습니다. 개중엔 훈련받다 개죽음을 당해도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투표에서 응당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해야할 많은 이들이 알지못할 두려움에 짓눌려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어차피 요식행위인만큼 압도적인 찬성은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 제가 반대표를 던진다고 해도 대세엔 아무런 지장이 없었겠지요. 그러나 저는 처음이지 마지막의 심경으로 투표장에 갔습니다.
전두환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니 반대표를 던지고 전두환정권이 존속하는한 더이상의 국민투표는 하지 않는다는 각오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행여 투표가 노출될까 싶어 기표소에서도 몸과 손으로 가린채 반대란에 기표했고 지문이 묻을까 손가락 사이로 접어서 투표함에 넣었으니 말입니다. 거의 신경과민이었습니다.
이후 몇 차례 투표의 기회가 있었지만 거부했습니다. 전두환정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투표행위 자체가 용인할 수 없는 것이라는 신념이었습니다. 6.29선언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되면서 당연히 저의 투표권은 蘇生(소생)이 되었습니다. ^^ 2003년말 미국에 온 이래 올해 역사적인 재외국민 참정권이 주어지기까지 8년간 투표권이 차단되긴했지만요.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모국에선 국민투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 연말 대통령선거도 있는만큼 제19대 총선은 어느때보다 중차대한 투표입니다. 적어도 민주국가에서 투표는 우리가 행사해야 할 권리이자 소중한 의무라는 의식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부패한 정치인은 게으른 유권자가 만든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투표율이 낮으면 국민의 뜻이 이반되고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부도덕한 정치인들이 활보하는 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2007년 대선 투표율은 63.0%로 역대 대선 최저투표율이었습니다. 이명박 후보가 530만표 차 압승을 거뒀지요. 2008년 총선의 투표율은 50%에 못미쳤고, 여당인 한나라당이 압승했습니다.
낮은 투표율은 대체로 젊은층과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이 참여하지 않았기때문입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한나라당은 자신들을 지지한 부자와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에 충실했습니다. 민생은 疲弊(피폐)하고 젊은이들의 실업률은 치솟았으며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높은 투표율은 위정자와 집권당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군사독재정권하이던 85년 12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84.6%라는 기록적 투표율로 신생정당 신민당을 제1야당으로 이끌었습니다. 전두환정권이 6.29선언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투표율을 70% 넘기면 옷을 벗겠다는 여성연예인이 나오는가하면 소설가 이외수씨는 트레이드마크인 수염을 깎겠다고 해서 어느 여성 탤런트와 트위터로 논쟁이 붙기도 했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을 모으는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대학원장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춤까지 추겠다는 공약(?)으로 투표를 督勵(독려)했습니다.
그러나 투표율을 높이는 것은 계도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진국들이 의무투표제(compulsory voting)를 채택하는 것입니다. 물론 의무투표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기권도 의사표현인만큼 민주제도하에서 의무투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투표에 대한 무관심은 부패한 정치인을 만드는 제1의 원인입니다. 투표장에 가서 기권을 할지언정 투표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인을 낳게 합니다.
의무투표는 날씨나 교통, 고용주 등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는 이들의 투표 의지를 고취시키고 사회적으로 불리한 사람들이 정치와 유리되는 것을 방지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현재 의무투표를 채택하는 나라들은 32개국이며 그중 19개국은 강행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OECD 국가 중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스, 스위스, 터키가 강행규정이 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는 강행규정은 없이 벌칙만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AUD, 아르헨티나는 10~20 페소, 스위스는 3스위스프랑, 키프로스는 300키프로스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벨기에에선 투표에 한 번 불참하면 10유로, 두 번 불참하면 20유로, 15년 동안 4번을 불참하면 선거명부에서 삭제하고 10년간 공직 임명이나, 승진 및 훈장을 받을 기회를 박탈합니다. 싱가포르는 투표 불참자를 유권자 명부에서 지워버리고, 회복을 원할시 불참에 대한 합당한 사유를 제시하고 투표권을 다시 신청해야 합니다.
그리스는 여권과 운전면허증 발급을 제한하고 벨기에는 공공기관 채용을 제한합니다. 페루에서는 선거후 수개월간 투표에 참여했다는 인증서를 소지하지 않으면 생활에서 여러 가지 불편을 겪습니다. 볼리비아에서는 투표를 하지 않으면 석 달 동안 자기 은행계좌에서 봉급을 인출할 수 없습니다.
덕분에 호주같은 나라는 투표율이 95%에 달합니다. 의무투표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네덜란드는 1970년에 의무투표제를 폐지했는데, 투표율이 약 20% 포인트 하락했습니다. 베네수엘라도 1993년에 의무투표제를 폐지했는데, 투표율이 30%포인트 가량 떨어졌습니다.
물론 ‘합당한 사유’가 있다면 벌칙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가령 병이 났거나, 투표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거나, 외국에 체류중이거나 등등 나름대로 사유만 제시한다면 벌칙을 부과하면 않습니다. 이와 함께 사전투표, 우편투표, 부재자투표, 이동식 투표소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투표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의무투표의 강제성에 대한 불만을 완화해야 합니다.
투표용지를 복권화하는 것도 도입해볼만 합니다. 즉 투표용지에 복권 번호를 부여하고 투표 후 추첨을 실시해 1등 담첨자에게 거액의 당첨금을 지급한다면 투표율이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사실 투표용지의 복권 방안은 한명숙 총리 시절에 잠시 검토한 바 있는데요. 이미 상업적 인센티브를 적용하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투표를 하는 유권자에게 철도요금을 일부 할인해 주고, 러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공짜 음식에 옷을 주고, 자동차·노트북·휴대전화를 경품으로 지급하기도 한다는군요.
모바일 투표 등 ‘유비퀴터스 투표제’도 흥미롭습니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 실시를 하고 있는데,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국민의 73.4%, 휴대폰 가입자 3700만 명으로 세계 IT 1위 국가인 대한민국인만큼 채택만 하면 투표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국민투표시 임시공휴일을 선포해 투표에 대한 편의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알아서 시간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도 미국보다 투표율이 낮은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정치에 도무지 관심이 없다구요? 그러나 먹고사는 것에 관심은 있겠지요. 정치는 우리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인물을 보든 정당을 보든 투표는 하고 볼 일입니다.
<에필로그>
제19대 총선투표율은 결국 54.3%로 귀결됐습니다. 18대 총선(46.1%)보다는 높지만 2010년 6.2지방선거(54.5%)보다 낮은 수치입니다. 불과 절반의 투표로 민심이 반영됐다고 할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선 의무투표를 강제할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