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잔인한 달이여..”
충청도가 고향(故鄕)인 세계사 선생님의 느닷없는 한 마디였습니다.
1979년 4월 어느날. 봄볕의 나른한 온기와 행락객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멍하니 상념(想念)에 잠겨 있었지요.
그해 입시에 실패한 우리들은 서울역 부근 한 종합학원에서 힘들게 봄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열아홉살 청춘(靑春)들이 딱해보였을까요. 선생님께서는 강의를 하다말고 재기넘치는 농담으로 노곤한 심신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 좋은 봄날, 대학에서 생기있게 캠퍼스를 누비는 대신 좁은 교실에 갇혀 또다시 기나긴 대입 레이스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사월은 말 그대로 ‘잔인한 달’이었지요.
기실 T. 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 를 제대로 읽은 것은 대학에 진학한 후였지만 들은 풍월(風月)로 ‘사월은 잔인한 달’ 이라는 선생님의 비유에 웃음으로 화답했던 것 같습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한 가운데 있는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황무지’을 읽을 때마다 대시인의 예리한 통찰력에 감탄사가 나옵니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으니.
***

한동신 님을 보내드린지 어언 100여일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겨울이 지나고 어김없이 봄이 돌아왔습니다. 노란 개나리가 피고 소담스런 백목련, 자목련이 경쟁하듯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엘리엇은 어느 겨울 아름다운 이와의 이별을 슬퍼하다 능청스럽게 다가온 봄의 화사함에 화가 난 것은 아닐까요. ‘주검의 매장(The Burial of the Dead)’이라는 부제가 문득 그런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봄비가 잠든 뿌리를 휘젓는 마음의 소용돌이는 필경 시인이 비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하얗게 덮은 속박(束縛)의 공평함이 차라리 따뜻한 겨울로 느껴졌겠지요.
지난 3월 중순 한동신 님이 계신 곳에 다녀왔습니다. 롱아일랜드 마운트 사이나이의 워싱턴 메모리얼 팍이었습니다. 본래는 49일째에 맞춰 2월 하순께 가려 했지만 내린 눈이 녹지 않아 묘자리를 못찾을 것이라는 공원측의 말에 한 차례 연기를 했던 것입니다.
아내와 함께 플러싱의 화원에서 작은 꽃을 준비했습니다. 워싱턴메모리얼팍은 플러싱에서 승용차로 약 한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롱아일랜드익스프레스웨이(495) 61번 출구를 빠져나와 5분 정도 호젓한 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나오는 곳입니다.
공원 사무실에 들어가 어느 곳에 모셨는지 위치부터 확인했습니다. ‘한동신(Dong-sin Han)’님의 묘를 찾는다고 했더니 컴퓨터를 두드렸습니다. 이어 중국계 직원이 나오더니 커다란 지도를 꺼내 연번(plot number)을 적어주며 대강의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처음엔 왜 이렇게 먼 곳에 모셔졌을까 안타까움도 들었는데 가서보니 한인들을 위한 ‘무궁화 동산’이라는 묘역(墓域)이 따로 조성이 돼 있었습니다. 중국계 묘역 또한 그 옆에 나란히 있었구요.
공원 관계자에 따르면 아시안가든도 있고 무슬림가든도 있다고 하더군요. 인종과 종교 문화가 다른 커뮤니티들을 위한 미국식 세미트리인 셈입니다.

워싱턴 메모리얼 팍은 뉴욕시에선 제법 떨어진 곳이어서 부지가 아주 넓고 공간도 충분해보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안을 살펴보니 개인을 위한 묘자리는 지나치게 협소(狹小)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묘와 묘사이가 30cm 도 안되보이는 등 사방에 빈 공간이 거의 없어 참배객(參拜客)들이 본의 아니게 다른 망인(亡人)들이 누워 계신 위를 걸어다니게 되니 말입니다.
땅도 넓은 나라가 왜 이렇게 적게 배정했을까. 딱 필요한 공간만 있으면 된다는 미국식 합리주의를 이해하지만 그래도 추모객들이 오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은 배려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은 한국도 커다란 산소(山所)를 조성하는 전통의 장례문화가 사라져가고 화장장(火葬場)을 많이 선택하는 추세이지만 비석 하나 달랑 서 있는 미국보다는 아담한 크기의 봉분(封墳)들이 나란히 있는 한국의 공동묘역이 좋아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공원 관계자가 일러준 곳에 도착해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한국분들의 비석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찾는 자리엔 아직 비석이 세워지지 않았기에 찾는 일이 간단치 않았습니다.
한 10여분을 왔다갔다하며 둘러봤지만 도무지 어느 지점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사무실로 돌아가 지도를 펴놓고 설명을 다시 들어야 했습니다. 친절한 중국계 직원분은 이번에도 못찾으면 자신이 직접 도와주겠노라고 하더군요.
날은 쾌청(快晴)했지만 바람이 매서울 정도로 찼습니다. 묘역이 평지이다보니 칼바람에 귀가 얼얼했습니다. 단단히 옷을 여몄습니다. 이번엔 주변의 지형지물을 외워두고 지도를 머릿속에 입력했기 때문에 님이 계신 자리를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엔 아무런 표식도 없고 다만 새로 흙을 덮은듯한 흔적만 어렴풋이 남아 처음 온 이들은 도저히 묘자리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겠다 싶더군요. 교회 같은 곳에서 한꺼번에 공간을 확보했거나 가족묘를 위한 공간으로 사둔다는 얘기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준비한 꽃을 올려놓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돌아가시기 이틀전에도 예의 활기찬 목소리로 새해 인사를 전하며 저를 비롯한 뉴스로 식구들의 건강을 염려해주셨는데...
인간사가 고통(苦痛)의 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그 누구도 생사의 윤회(輪廻)를 피해갈 수는 없지만 예기치 못한 이별은 못내 가슴이 아픕니다.
50여미터쯤 떨어진 곳에 사람들이 빙 둘러선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이들도 특별했던 누군가와 가슴 아픈 이별을 하고 있겠지요.

<이상 www.washingtonmemorialpark.com>
한동신 선생님, 지금 저희를 지켜보고 계시겠지요.
좀더 많은 나날을 함께 하고 싶었는데...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
이젠 님을 추억하며 님께서 남기신 뜻을 새기며 살아야겠지요...
가슴을 텅 비운 채 허허로운 마음으로 돌아섭니다.
길을 지나는데 문득 다른 묘역에 작은 바람개비 장난감이 꽂혀 있네요.
어린 영혼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완연한 봄입니다.
알록달록 피어난 꽃들의 훈향(薰香)이 지금쯤 무궁화동산에도 넘쳐 흐르겠지요.
모든 영가(靈駕)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더 이상 슬프고 두렵지 않은 세상을 오기를..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07:53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