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사진필진 l Kor-Eng    
 
뉴욕필진
·Obi Lee's NYHOTPOINT (103)
·강우성의 오!필승코리아 (40)
·김경락의 한반도중립화 (14)
·김기화의 Shall we dance (16)
·김성아의 NY 다이어리 (16)
·김은주의 마음의 편지 (45)
·김치김의 그림이 있는 풍경 (107)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173)
·로창현의 뉴욕 편지 (506)
·마라토너 에반엄마 (5)
·백영현의 아리랑별곡 (26)
·부산갈매기 뉴욕을 날다 (9)
·서영민의 재미있는인류학 (42)
·신기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17)
·신재영의 쓴소리 단소리 (13)
·안치용의 시크릿오브코리아 (38)
·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37)
·제이V.배의 코리안데이 (22)
·조성모의 Along the Road (51)
·차주범의 ‘We are America (36)
·최윤희의 미국속의 한국인 (15)
·폴김의 한민족 참역사 (476)
·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37)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244)
·훈이네의 미국살이 (117)
·韓泰格의 架橋세상 (96)
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총 게시물 506건, 최근 0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애국가 부정은 3.1운동의 부정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2-06-17 (일) 08:41:25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시덥잖은 종북논란속에 국회에 입성한 통합진보당 이석기의원이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고 하여 또다시 대한민국을 양은냄비처럼 들끓게하고 있습니다.

비례대표 부정경선에 연루된 인물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한 폭력사태속에서도 버젓이 금배지를 달더니 입을 열때마다 논란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네요.

 

새누리당을 근간으로 한 수구꼴통인사들은 “너 잘 걸렸다”며 ‘빨갱이’를 목청껏 외치는데 이석기 파문이 올 대선을 앞두고 야권이나 진보의 표를 우수수 떨어뜨리고 있으니 대체 그는 누구편인가 하고 끌탕을 치게 됩니다.

이름은 진보요, 언행은 수구꼴통을 신바람나게 만드는 좌충우돌 절정판은 “애국가 부정” 사태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석기는 야당과 진보진영을 송두리째 말아먹을 작정인가 봅니다.

각설하고, 대한민국 국민처럼 국가(國歌)를 사랑하는 이들도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국가를 사랑하면 이름앞에 ‘사랑 애(愛)’를 붙여 애국가(愛國歌)라 하냐 이겁니다. 애국가는 아다시피 안익태가 작곡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에 맞춰 불렀지요.

작곡자와 달리 1900년대초 만들어진 애국가의 작사자는 공식적으로 미상(未詳)입니다. '윤치호 설'과 '안창호 설' 두가지가 유력하지만 딱히 누구 작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윤치호 www.ko.wikipedia.org 

'윤치호 설'은 윤치호가 애국가의 가사를 1907년에 써서 후에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한편 '안창호 설'은 안창호가 애국가를 보급하는 데에 앞장섰고 가사에 자신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는 데에 무게를 둡니다.

그러나 1908년에 출판된 가사집 <찬미가>에 수록된 것을 비롯한 많은 일제시대의 출판물이 윤치호를 작사자로 표기하는 등 증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안창호는 윤치호의 초기 가사에서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 를 지적,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으로 고치게 했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후 ‘우리 대한 만세’를 ‘우리 나라 만세’로, ‘이기상과 이맘으로 임금을 섬기며’를 ‘이기상과 이맘으로 충성을 다하며’로 고쳤다고 합니다.

  

도산 안창호 www.ko.wikipedia.org

한편 이광수와 주요한은 애국가 작사자는 안창호가 맞지만 인격적 성품으로 인해 내세우지 않고 자신이 세운 대성학교 교장인 윤치호의 공적으로 돌렸을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건대 정황상 '윤치호 설'이 좀더 유력하고 사이좋게 두사람을 공동 작사자로 돌리는게 좋은 해결책이 아닌가 싶지만 문제가 간단치 않은 것은 윤치호의 친일행적입니다.

윤치호는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수감됐다가 친일전향을 조건으로 1915년 2월 13일에 출감했습니다. 1915년 3월 14일자 매일신보에 일선동화(日鮮同化)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가하면, 3·1운동이 일어난 지 며칠 후 <경성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평화를 위해 일제에 순종하라는 등 친일매국의 길에 앞장섰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댓가로 호의호식한 그는 77세가 된 1943년 일제의 총동원령이 나자 11월 18일자 ‘매일신보’에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고 중일전쟁에 청년들이 자원입대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 공로로 일본제국의회의 칙선 귀족원의원이 되었고 그의 애비 또한 남작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더 얘기할 것도 없는 파렴치한 매국노가 애국가의 작사자로 확인됐다면 도저히 용인할 수가 없겠지요. 따라서 이석기가 “애국가 가사를 윤치호가 만들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발견됐다. 본 의원은 양심상 애국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면 ‘개념있는 의원’으로 칭송받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그는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애국가는 그냥 나라 사랑을 표현하는 여러 노래 중 하나”라며 “(우리나라는) 애국가를 국가로 정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민족적 정한과 역사가 있으므로 아리랑이 실제 우리 국가 같은 것이라고 본다”며 애국가는 “독재 정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애국가를 부르지 말자는 게 아니며, 충분히 부를 수 있지만 애국가 부르기를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라고 주장했습니다.

궤변(詭辯)을 넘어 허위사실 공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애국가는 1919년 3.1운동에서 태극기와 함께 삼천리 방방곡곡에 울려퍼졌습니다. 그해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백범 김구 주석은 윤치호 작사설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3.1 운동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했는데 누가 지었는가가 왜 문제인가. 작사ㆍ작곡가의 성향보다 애국가 안에 담긴 정신이 더 중요하다”며 국가로 채택하였습니다.

  

백범 김구 www.ko.wikipedia.org

또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후에도 사실상 국가로 채택되었고(이미 국민 마음속에 자리잡은 애국가를 구태여 성문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2010년엔 국민의례규정을 통해 공식국가로 못박았습니다.

한번 따져봅시다. 이석기가 말하는 우리나라는 대체 어느 나라인가요? 독재정권이 만들었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어느 정권이 20세기초로 날아가 만들었다는건가요? 그가 달고 있는 국회의원 뱃지는 ‘메이드인 어느 나라’ 길래 그처럼 천연덕스럽게 우기는걸까요.

설사 “친일매국노 윤치호가 만들었을 개연성이 높은만큼 애국가를 인정해선 안된다”는 주장이었다해도 그는 공인의 신분입니다. 보통의 국민도 준수해야 할 국법과 따라야 할 관행을 조롱하고 모독하고 싶다면 최소한 이 나라의 의원직을 사퇴해야 하는게 상식이 아닌가요. 국회의원으로 불체포특권등 엄청난 권한을 누리고 십수억원의 세비 등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누리면서 다름아닌 애국가를 부정하다니요. 벼룩도 낯짝이 있지, 받을땐 국민이고 안받을땐 비국민인가요.

이석기의 망언은 고려할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애국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윤치호 작사설외에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1절의 구절도 본래는 ‘하나님이 보우하사’로 된 것을 바꾼 것입니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개신교인은 1절의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고쳐 부르고 이에 반해 불교도 등 타종교신자와 무신론자들은 ‘하느님이 보우하사’를 특정종교와 무관한 구절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대신 부처님, 알라신이라고 한다면 어느 개신교인이 이를 수용하겠습니까.

또 한가지 문제는 곡의 표절(剽竊) 논란입니다. 전술한대로 초기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에 맞춰 불렀고 이를 안익태가 1935년 11월 사 장조로 된 현재의 곡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익태 역시 친일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인데요. 일각에선 1936년 유럽에 건너간 그가 1942년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닷컴에 따르면 1964년 제3회 서울 국제음악제에 초대된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서울에서 받은 대우가 좋지 않다고 불평하고 음악제를 추진한 안익태를 비난하면서 애국가의 가락이 도브리치 시의 시가인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불가리아어: 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 ‘도브루자 땅이여’)와 많이 닮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 노래를 부르면서 이렇게 비꼬았습니다.

“만약 불가리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를 부른다면, 한국인들은 (애국가인줄 착각하고) 일어날 것입니다!” (If Bulgarian singers came to Korea and sang O Dobrujanski Krai, Korean audiences would stand up!)


1976년 이유선은 <한국양악백년사>에서 애국가의 표절 문제를 거론하며 “대한민국은 완전한 민주독립국가이니만큼 하루 속히 국가를 새로 제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안익태기념사업회 측은 반론자료와 함께 정부 각 부처에 진정서를 보냈고 문화공보부는 애국가가 30년동안 국가 역할을 한 점으로 볼 때 “명확한 근거 없이 표절 여부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진화했습니다.

두 곡은 첫 소절이 서로 비슷하지만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가 약박으로 시작하는 데 비해 ‘애국가’는 강박으로 시작하며, 전체적으로 가락의 분위기는 다르다고 합니다.

애국가에 대한 또다른 비판으로는 선율 자체가 처음에 못갖춘마디처럼 들리기때문에 뒷부분의 호흡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1977년 한국음악협회 조상현 회장은 애국가의 표절 의혹과 함께 가사와 선율의 불일치, 소극적인 내용의 가사 등의 이유를 들어 1월 26일 총회에서 새 국가를 만들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 다음 통과되면 이를 정부에 건의하기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소중한 애국가가 표절의 시비대상이 되고 가사와 완성도 면에서 흠결이 있다면 차제에 새로운 애국가를 논의해야 할 필요성은 있어 보입니다.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애국가 문제를 터뜨려준 이석기가 한편으로는 고맙다고 해야 할까요.


* 흥미로운 에필로그입니다. 애국가의 저작권은 국가에 귀속되지 않고 안익태의 유족이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안익태의 유족들은 저작권이 인정된 1992년부터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신탁을 통해 저작권료를 받았습니다. 이같은 사실이 일반에 알려진 것은 2003년에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프로축구단 경기에서 애국가를 무단으로 사용한 두 구단을 고소했기때문인데요.

다음은 2003년 12월 12일 한겨레 기사입니다.

<사단법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축구 경기장에서 저작권료를 내지 않고 애국가를 튼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라며 최근 프로축구단인 부천SK와 대전시티즌을 각각 서울 종로경찰서와 대전 둔산경찰서에 고소했다고 12일 밝혔다.

지난 2001년 개정된 저작권법은 프로경기장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음악저작물을 방송할 때는 저작권료를 내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애국가도 그 대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저작권협회 쪽은 “부천SK 프로축구단은 지난해 6월28일 이후 부천경기장에서 애국가의 저작권료를 내지 않은 채 무단으로 방송해왔다”고 주장했다.

협회 관계자는 “프로스포츠 경기장은 물론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거나 끝낼 때 나오는 애국가도 모두 저작권료 징수 대상에 해당한다”며 “지난해의 경우 애국가 사용과 관련해 방송사와 기타 프로경기구단 등으로부터 약 700만원의 저작권료를 징수해 이 가운데 400여만원을 저작권자인 고 안익태 선생의 유족에게 분배했다”고 말했다. 프로축구장 한곳에서 보통 1년 동안 애국가 사용에 대해 걷는 저작권료는 입장객 수 등에 따라 1만~6만원 정도라고 그는 전했다.

이에 대해 부천SK 구단 쪽은 “애국가는 국민의 공공재이고 경기 시작에 앞서 권장되는 일종의 국민적 의식인데, 여기에 저작권료를 물리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논란을 계기로 애국가의 저작권을 국가에서 사들이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고, 결국 안익태의 유족은 2005년 3월 16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저작권을 기증, 논란이 종결되었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제호 : 뉴스로 l발행인 : 盧昌賢 l편집인 : 盧昌賢
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l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 l등록일 : 2010.08.31. l창간일 : 2010.06.05.
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 전화 : 1-914-374-9793 l한국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607-204 / 전화 : 010-2041-1942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