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외곽에서 지금은 남녘에서 보기 힘든 추억의 풍경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소가 달구지에 볏단이나 짐꾸러미 등을 잔뜩 싣고 가는 장면들이다. 대중교통과 짐차 등 화물차가 많지 않으니 자전거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고 소 몰이 모습도 심심찮게 보이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듯한 느낌도 들었다.
어떤 이들은 이런 풍경에 북한의 빈한한 사정에 혀를 끌끌 차거나 눈부시게 발전한 남한의 경제에 자부심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지사지(易地思之) 해보자. 만일 우리가 30년에 걸친 모진 국제적 경제제재를 받았다면 과연 얼마나 지탱할 수 있었을까. 패닉현상으로 며칠도 못가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90년대 초 동구블럭이 와해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북은 상당한 무역시장을 잃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95년과 96년에, 100년만에 한번 온다는 가뭄 등 천재지변이 전역을 강타했다. 기왕의 대북제재까지 포함해 총체적 재난이 융단폭격처럼 가해진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최악의 경제난으로 배급이 제대로 안되면서 지방에선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했다. 먹고 살기 위해 탈북자들이 중국 등지로 나왔고 길에서 물건을 파는 장마당도 생겨났다. 그나마 사정이 좋았다는 평양 주민들도 살기가 녹록치 않았던 시절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오늘의 북한을 관통하는 것은 ‘자력갱생’의 기치다.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자력갱생이다. 지난번 하노이 북미회담을 마치고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의 모 기자가 대북제재를 강화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미 대북제재는 강력하다. 북한 주민들 살아야 한다. 북한 주민 생존도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다”라고 대북제재의 실상을 고백(?)했다.
한국기자의 질문에 트럼프도 아연실색할만큼 대북제재는 가능한 모든 봉쇄를 전방위적으로 가하고 있다. 북한의 영유아들에게 필요한 의약품과 결핵약, 항암제는 물론, 링거 투여에 필요한 의료기구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북제재를 대북주민제재, 인권제재라고 비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북은 지난 30여년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고안했고 개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 살림집(아파트)마다 태양열 패널을 설치해 가정용전기를 쓰고 대규모 댐이 필요없는 계단형발전소, 자연흐름식물길 공사 등의 대역사가 그것이다.
그런가하면 강원도 세포 등판 지역엔 버려진 황무지를 개간해 세계최대의 축산국가인 뉴질랜드의 대목장 두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축산기지를 수년전에 조성했다. 드넓은 목초지에서 수많은 가축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는 장면을 본다면 누구나 감탄사가 나올만 하다.
평양엔 타조농장이 있어서 보통강거리 고기상점 같은 곳엔 타조고기 등 5종의 고기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다. 그야말로 제재의 역설이요, 자력갱생의 롤모델이 아닐까.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wr_id=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