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기림비는 이제 우리 귀에 익숙한 단어입니다. 위안부기림비 하면 뭐라 표현하기 힘든 깊은 슬픔과 고통이 응축(凝縮)된 느낌이 전해옵니다.
적게는 열한두살 어린 여자아이부터 가녀린 여성들을 속이거나 납치하여 위안부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을 뒤집어 씌운 일본제국주의의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죄악은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씻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위안(慰安)을 주는 여성이라구요? 가증스럽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위안을 준다는 말입니까. 전장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사들에게 쾌락의 도구로 쓰기위해 강제로 동원된 처절한 피해여성들을 매춘부라고 우기는 자들에게 언젠가 천벌은 내려질 것입니다.
위안부이슈가 오늘날 국제적으로 확산된데는 2007년 미 연방하원에서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된데 따른 것입니다. 이 결의안을 주도한 캘리포니아의 정치인 마이크 혼다는 일본계 3세입니다.
▲ 마이크 혼다 가족. 앞줄 가운데 꼬마가 어린 시절 혼다
1941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1년만에 가족과 함께 콜로라도 남동부에 있는 수용소에 끌려갔습니다. 일본이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과 전쟁을 하면서 재미일본인들이 잠재적인 적으로 분류돼 강제(强制) 이송(移送)된 것이었습니다.
1953년 캘리포니아에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이크 혼다는 이때의 경험이 평생의 사상과 철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침해(人權侵害)와 차별(差別) 등을 뼈저리게 겪으면서 훗날 정치인이 되어 이같은 문제를 시정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1996년 캘리포니아 주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선출직 정치인 생활을 시작한 혼다 의원은 소수계의 권익을 위해 특히 힘을 쏟았는데 미국의 무슬림을 위한 권익옹호 활동도 정력적으로 하였습니다.
뭐니뭐니해도 혼다의원을 보기드문 양심적인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은 2007년 미연방하원에서 통과한 위안부결의안의 최초 발의자였다는 것입니다. 일본으로선 뼈아픈 것이었고 실제로 일본이 로비스트와 친일 정치인들을 통해 이를 좌절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그는 정의와 양심에 기초한 언변으로 의원들을 설득시켜 결국 만장일치(滿場一致) 찬성이라는 역사적인 개가(凱歌)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일본계 정치인이 앞장서서 위안부결의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더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이죠. 일본의 우익들은 그가 눈엣가시처럼 보였지만 기실 그는 “봐라, 일본에도 이렇게 양심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줬다는 점에서 일본에도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안부결의안이 통과한 지 3년만인 2010년 뉴저지 팰리세이즈팍에 위안부기림비가 미주 최초로 탄생한 것은 위안부결의안이 단지 하나의 선언적 의미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의제(議題)역할을 하면서 일본의 맹성(猛省)을 촉구하고 세계인의 주의를 환기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팰팍의 위안부기림비는 미 전역은 물론, 세계속으로 위안부문제를 알리는 촉매(觸媒) 역할을 톡톡히 하였습니다. 2012년 7월 뉴욕주 낫소카운티에 2호 위안부기림비가 생겼고 그해 12월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가드그로브에 3호 기림비가 생겼습니다.
이듬해 뉴저지 버겐카운티 청사 앞에 4호 기림비가,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 5호이자 최초의 위안부소녀상이 건립되었습니다. 또 지난 1월엔 낫소카운티 현충원의 위안부기림비 바로 옆에 뉴욕주 위안부결의안 통과를 기념하는 위안부결의안기림비가 만들어져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밖에도 뉴저지 포트리에서 지난해부터 위안부기림비를 세우는 문제가 진행중이고 디트로이트, 플로리다, 시카고 등지에서 또다른 기림비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 반가운 소식이 버지니아에서 들려왔습니다. 페어팩스카운티 정부 청사안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버지니아 최초의 위안부기림비 제막식(除幕式)은 오는 30일 열립니다. 특히 미국의 지방정부내에 건립되는 최초의 기림비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제막식에 앞서 26일 입수한 기림비 평화가든의 모습은 이제까지 건립된 어떤 기림비 부지보다 넓고 아름다운 풍광(風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페어펙스 카운티 정부는 이곳을 시민들을 위한 산책로로 개방했으며 그 중심에 평화가든을 조성했습니다.
특히 두 마리의 나비형상을 좌우에 배치한 것이 눈에 띄는데요, 연하늘색 철제로 만든 나비형상은 추모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벤치 역할도 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나비 형상은 위안부 희생자들이 억압(抑壓)과 폭력(暴力)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날개짓을 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안쪽에 ‘2차대전 위안부 희생자들을 기리며’와 ‘2차대전 위안부 희생자들께 헌정’이라는 영어문구가 각각 새겨졌습니다.
가운데 기단(基壇) 위에는 폭 2m, 높이 1.5m의 커다란 돌이 자리잡았구요, 전면과 후면에 동판을 부착했습니다.
기림비 동판 전면엔 일본제국주의군대에 의해 젊은 여성과 소녀들이 강제로 끌려와 성노예(性奴隸)로 유린(蹂躪)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위안부 동판 문구입니다.
‘2차대전중 인신매매에 의해 여성과 소녀들이 인간의 기본권, 존엄성을 유린당하며 명예가 짓밟혔습니다. 한국과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네덜란드와 동티모르에서 20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일본제국주의군대에 의해 성노예(위안부)로 강제로 끌려왔범죄에 의해 희생된 여성들이 영원한 평화와 정의를 찾기를 기원하며, 이분들이 여성과 인간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중요한 의미로 기억되기를 기원합니다.’
후면엔 2007년 미연방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될 때 최초 발의자인 마이크 혼다의원이 “일본정부는 1930년대부터 2차대전까지 식민통치하에서 ‘위안부’들을 ‘성노예’로 삼은 행위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고 분명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선언한 내용이 표기됐습니다.
현장 사진들을 뉴스로에 제공한 재미언론인 문기성 씨는 “버겐카운티 청사 주변을 산책하는 미국인들이 위안부기림비 평화가든이 조성된 것을 알고 둘러보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서 “카운티정부 청사안에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기림비 공원을 만든 것이 놀랍고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버지니아는 올해 미국 50개주에서 처음으로 동해병기법안이 주의회를 통과한데 이어 최초로 정부 청사안에 위안부기림 공원이 조성되는 등 한인사회 이슈를 선도(先導)하고 있습니다. 페어팩스 카운티는 미국에서 살기좋은 톱10 카운티중 선정된 곳으로 한인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버지니아, 메릴랜드, 워싱턴DC에 약 20만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문기성씨는 “동해병기에 이어 페어펙스카운티정부 청사에 위안부기림 평화가든이 조성된 것은 북버지니아 한인들의 정치력이 그만큼 신장(伸張)된 결과로 봐야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페어팩스카운티 기림비는 백악관에서 승용차로 30분거리에 위치해 사실상 미국의 심장부에 건립되는 효과를 가질 전망입니다. 이곳에 기림비가 건립될 수 있었던 것은 2년전부터 워싱턴정신대대책협의회(회장 김광자)를 중심으로 위안부기림비 건립위원회(위원장 황원균)가 만들어진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 왼쪽부터 미주태권도의 개척자인 이준구 사범부부, 이용진 전워싱턴평통회장, 황원균 위원장, 혼다 의원
이들 한인들은 일본의 방해공작을 피하기 위해 페어팩스카운티 정부와 극비리에 일을 추진, 모든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된 지난 4월말에야 관련 사실을 알리게 됐습니다.
30일 열리는 공식 제막식엔 마이크 혼다 연방의원과 샤론 볼로바 페어팩스카운티 의장과 주민들, 한인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합니다.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 할머니가 초청돼 일본제국주의의 만행(蠻行)을 고발하는 증언(證言)도 할 예정입니다.
페어팩스카운티 청사내 위안부기림비 평화가든이 역사의 진실과 정의의 커다란 울림을 전해주는 성스러운 명소(名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