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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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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직전 남긴 말은 동양평화!” 사형집행보도 <안중근순국 104주기④>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4-03-12 (수) 14:59:37

 

1910년 3월 26일 뉴욕타임스에 짧은 외신이 실렸다. 만주 하얼빈 발 기사였다.


 

“이토의 저격자가 사형됐다. 지난해 10월 26일 전 한국통감 이토 백작을 저격한 한국인, 안중근이 오늘 아침 포트 아더에서 처형됐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사는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09년 10월 26일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지 정확히 5개월되는 날이었다. 저격 당일 급전으로 미대륙에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을 전했던 뉴욕타임스는 사형 소식도 어떤 언론보다 빨리 송고했다.

 

 


 

뉴욕타임스가 명기한 ‘포트 아더(Port Arthue)’는 뤼순(旅順)의 영어 표기다. 영국 해군 중위 윌리엄 아서(William C.Arthur)가 이곳에 정박한 것을 기념한 이곳은 지정학적 요충지로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고 안중근 의사가 수감된 뤼순 교도소 또한 러시아, 일본, 중국 등 관할국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거사 직후 러시아제국 경찰에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일본에 넘겨져 다롄(大連)시 뤼순교도소에 수감됐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고 40여일 뒤인 3월 26일 형이 집행되기까지 일본의 통제를 반영하듯 영어권 매체의 보도는 거의 없었다.


 

뉴욕타임스의 짧은 보도이후 미국 매체들이 안중근의사에 관한 속보를 전한 것은 4월 8일이었다. 오레곤 살렘에서 발행되는 데일리 캐피탈 저널(Daily Capital Journal)은 1면에 ‘유나이티드 프레스’의 기사를 전재했다.

 

 

 

 


 

‘배려심있는 정부(A Thoughtful Government)’라는 이색적인 헤드라인의 기사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빅토리아 항에 입항한 일본 증기선 쿠메릭호로부터 전해진 소식이었다. “이토 백작의 저격자에 대한 사형집행은 당초 3월 25일로 예정됐으나 이 사형수가 ‘동양평화론(Peace in the Far East)’이라는 저서를 완성하기 위해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는 워싱턴에서 발행되는 ‘스포케인 프레스(The Spokane Press)’에서도 같은 날 소개됐다. ‘책을 끝내기 위해 처형 연기(Postpone Execution to Finish Book)’라는 보도에서 “1905년 대한제국을 사실상 일본 제국의 속국으로 만든 제2차 한일 협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 운동에 투신한 안중근은 사상적 측면으로는 동양평화론자이기도 했다. 그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보도했다.


 

 

 

 

 

▲ “동양 평화를 위해 이토를 죽였다”


 

알려진대로 안중근의사는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옥중에서 집필했으나 미완성의 원고로 남았다. 그는 ‘동양 평화론’ 서문에서 하얼빈 의거를 동양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이웃나라를 침략해 일본에 종속시키려는 이토 히로부미의 사살은 동양평화를 지키려는 정의의 응징이었음을 설파한 것이다.


 

그는 명성황후를 시해와 고종황제 폐위,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맺고 정권을 빼앗은 이토의 15가지 죄악을 들며 “동양의 평화가 어지럽혀지기때문에 죄인을 처단한 것이다. 나는 한일 양국이 더 친밀해지고, 나아가 오대주에도 모범이 돼 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안중근 의사는 또한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신분으로 이토를 처단했므로 살인자로 대우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같은 인식은 ‘특파독립대장’으로 일본군 수비대를 전멸시킨 1908년 당시 그가 생포한 일본군 포로를 국제공법에 의거해 석방해 준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한·중·일 3국이 서로 상호 부조하여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에 대응하는 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방법론을 제시한 ‘동양평화론’이라는 의외의 단어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미국인들은 이토를 저격한 청년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로 ‘배려심있는 정부’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미국 독자들은 사형연기의 사유가 죄수의 책 탈고라는 사실에 감동받았을 법 하다. 그러나 실제는 달랐다. 당초 안중근의사는 형의 집행만 남은 상태에서 책을 완성할 때까지 처형을 연기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형집행이 하루 연기된 것은 3월 25일이 순종의 생일인 ‘건원절’이었고 전국 각지에서 의병활동이 활발하던 시점이라 이들을 자극할 것을 우려했기때문이다. 예정했던 분량의 5분의 1도 쓰지 못한 상황에서 ‘책 탈고를 위해 처형을 하루 연기해주었다’고 미국민들에게 홍보한 일본 제국주의의 간교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책탈고가 허위였다는 사실은 5월 25일 ‘아리조나 리퍼블릭(Arizona Republic)’의 기사에서도 드러난다. 이 신문은 ‘이토 저격자 처형’이라는 기사에서 “안중근은 15일의 관대한 유예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3월 25일 다음날 처형됐다”고 전했다.

 

 

 


 

안중근 의사가 사실은 보름의 시간을 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것이 거부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어진 사형집행 전날의 소식은 애달프다. “별도의 방에서 그는 형제들을 만나 포옹하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들은 곧 무릎을 꿇고 20분간 기도를 했다. (안중근 의사는) 두 형제의 얼굴을 보면서 손을 잡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 안중근의사 사형집행 생생보도 싱가포르 영자신문


 

안중근 의사의 처형 전후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듯 누구보다 생생하게 전한 매체가 있다. 싱가포르의 영자지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다. 스트레이츠는 4월 14일 7면 기사에서 안중근 의사가 사촌이 가져온 수의를 입고 마지막 당부한 말, 참석한 일본관계자들 이름, 하얼빈의거를 같이 감행한 우덕순 등 동지들이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두 형제의 시신인수 요청을 교도소가 거절하고 매장한 내용들을 상세히 전해 주목된다.

 

 

 


 

‘이토백작의 저격’, ‘안중근(An Ju Kon) 포트 아서에서 사형집행’ 두 개의 제목을 단 기사는 “지정된 시간 사형집행장에 당도한 그는 사촌인 안명근이 가져온 한국산 명주로 된 흰색의 새 옷을 단정히 입고 있었다. 얼굴은 약간 창백해보였지만 충분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듯 했다”고 시작된다.


 

사형집행장에는 미조부치 검찰관과 구리하라 교도소장, 통역을 맡은 소노키 통역 등 관계자들이 자리했다. 교도소장이 사형집행문을 낭독하고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전할 말이 있는지 물었을 때 안중근 의사는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남기고 갈 말은 없다. 다만 여기 와 있는 일본 관리들이 마지막까지 동양의 평화를 위해 힘껏 노력해주기 바란다”며 ‘동양평화론’에 동참할 것을 당부했다.


 

그가 마지막 기도를 올린 후 교수형은 집행됐다. 신문은 “의사 검시후 시신이 안치된 관은 교도소 예배당으로 옮겨졌다. 조도선과 우덕순 유동하 등 함께 거사를 결행한 3인의 동지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우덕순은 아주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이어 “유해는 오후 1시에 공동묘지에 매장됐다. 안중근의 두 형제(정근 공근)는 교도소장에게 시신을 인도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됐다”고 덧붙였다.


 

기사에 따르면 사형 집행부터 매장까지 채 3시간도 안걸린 셈이다. ‘시신이 밤에 황급히 묻혀졌다’는 일설과 달리 정상적인 경로로 교도소에 인접한 공동묘지에 매장된 것을 알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형제들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제의 정확한 매장 기록이 없고 오랜 세월속에 홍수로 인한 유실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2000년대 이후 유해발굴 작업은 아직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서울 효창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빈묘(虛墓)가 있다. 해방후 백범 김구 선생이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의 묘를 만들며 언젠가 유해를 봉환할 때를 대비해 만들어 둔 것이다.


 

언젠가 유해가 봉환된다면, 필경 그 날은 의사의 유지대로 한일 양국이 화합하여 동양평화를 일구고 나아가 오대주에도 모범이 되는 날이지 않을까.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모습을 전한 1910년 4월14일 더스트레이츠 타임스 기사 전문을 소개한다.


 

“이토백작의 저격”

‘안중근 포트 아서에서 사형집행’


 

이토 백작을 저격한 안중근이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지 꼭 5개월만인 3월 26일 오전 10시 포트 아서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그는 지정된 시간 사형집행장에 당도했다. 새 한복을 입은 그는 사촌인 안명근이 가져온 한국산 명주로 된 흰색의 새 옷을 단정히 입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약간 창백해보였지만 충분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듯 했다. 미조부치 검찰관 구리하라 교도소장, 소노키 통역 등 관계자들이 자리했다. 교도소장은 사형집행문을 낭독하고 안중근에게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전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남기고 갈 말은 없다면서 여기 와 있는 일본 관리들이 마지막까지 동양의 평화를 위해 힘껏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기도를 하도록 허락됐을 때 잠시 나지막히 기도를 했다. 올가미가 그의 목에 걸렸고 사형이 집행됐다. 15분이 지나 검시 의사가 확인한후 시신은 교도소측이 준비한 관에 입관됐다. 관은 교도소 예배당으로 옮겨졌다. 조도선과 우덕순 유동하 등 함께 거사를 결행한 3인의 동지들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도록 허용됐다. 우덕순은 아주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유해는 오후 1시에 공동묘지에 매장됐다. 안중근의 두 형제(정근, 공근)는 교도소장에게 유해를 인도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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