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뉴욕의 전시회로부터 시작됐다.
‘시신 미스테리’로 돌아온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뉴욕에서 신비의 자연주의 사진작가로 통했습니다.
그는 뉴욕 한복판에서 수십만명이 다녀간 거대한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3년전 일입니다. 2011년 10월13일부터 22일까지 뉴욕 맨해튼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에서 열린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전시회였습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어떤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지요.
전시회는 충분히 뉴스가 될만한 것이었습니다. 장소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서울역에 견줄만한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은 유서 깊은 역사(驛舍)와 웅장한 규모(規模)로 뉴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입니다.
그가 전시를 한 중앙 홀 옆에 있는 밴더빌트 홀은 미국의 철도왕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이따금 대기업과 시정부 차원의 행사가 펼쳐지지만 미지의 예술가가 온전히 개인전을 위해 임대하는 것은 초유의 일이었습니다.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은 뉴욕 북부의 통근철도 3개 노선과 5개의 지하철이 만나는 곳으로 평일엔 75만명, 주말엔 100만명이 넘는 승객이 이용하는 맨해튼의 허브입니다. 그리고 밴더빌트 홀은 역사 남쪽 42가의 메인게이트로 중앙 현관 역할을 하고 있지요.
역을 이용하는 승객의 최소한 30%가 이곳을 통과했다면 당시 열흘간 계속된 유병언의 사진전을 잠깐이라도 본 사람은 연인원 20만명은 넘은 것으로 추산(推算)됩니다. 사진전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밴더빌트 홀 입구를 개선문마냥 장식하고 가로 4m 세로 6m의 초대형 작품을 포함, 약 100점의 사진작품이 전시되는 등 입이 딱 벌어질만 했습니다.
게다가 많은 작품들은 내부에 조명이 설치돼 LED처럼 발광(發光)하는 방식으로 소개했습니다. 열흘간의 엄청난 임대료는 그만두고라도 전시공간을 꾸미는 것만 해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을 법 합니다.
이런 초대형 전시회를 연 주인공이었지만 그는 이름도 얼굴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의 프로필도 없었습니다. 오직 ‘나의 창을 통해서(Through My Window)’라는 타이틀과 ‘아해(AHAE)’라는 작가명만 나와 있을뿐.
◆ 기이한 언론의 외면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전시회를 다룬 언론이 아무 곳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공간을 임대해준 뉴욕시가 웹사이트에 짤막한 소개를 했을뿐이었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주최측이 일부러 홍보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취재를 원했다손, 미스테리의 장본인은 인터뷰를 거절했을테니 말이지요.
제가 아해 전시회를 취재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평소 밴더빌트 홀의 행사를 자주 둘러봤지만 알고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취재는 했지만 기사화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시회가 미스테리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랜드센트럴 터미널 밴더빌트 홀은 양 입구에 개선문 같은 장식으로 꾸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보기 드문 초대형 사진전도 이색적이었지만 그 대상이 한국의 자연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아해’란 이름이 생소했습니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동포 작가일까? 대체 얼마나 세계적인 작가이길래 이렇게 특별한 곳에서 엄청난 전시회를 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선문같은 대형 장식에 음유시인(吟遊詩人)의 싯구와도 같은 감상적인 문장만 있었을뿐 아해가 대체 누구인지, 왜 이런 작품전을 열게 됐는지 말해주는 단서는 없었습니다.
전시장 안쪽 가려진 곳에 있던 주최측 관계자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30대의 안경 쓴 한국인이었습니다. 작가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 신분을 확인한 그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분은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할 수가 없습니다”고 하더군요.
언론의 취재를 반기지 않는 정체불명의 사진작가가 아해였습니다. 그 남성은 웹사이트(www.ahae.com)를 참고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웹사이트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의아하기까지 했습니다.
◆ 2년간 창문 통해 100여만장 사진 촬영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자신의 집 창문밖에서 바라본 풍경들을 무려 100만장 넘게 찍었고 그중에서 고른 작품들을 전시장에 걸었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100여만장의 사진을 촬영했다고? 2년간 쉬지 않고 찍었다해도 대략 하루에 140여장을 촬영한 셈입니다.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100일이 넘게 창문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사진을 찍는다면 그 사진은 어떤걸 보여줄까. 한국의 선지자 아해를 만나보라. 아해의 작품들이 사진전으로 마련된다. ‘나의 창문을 통해서’는 사계절 창문밖으로 통해 바라본 세상을 촬영한 100장이 넘는 사진들이다.”
괴이했습니다. 집안 창문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2년간 촬영했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피사체속에 나타난 대상은 아주 다양하고 풍성한 자연입니다. 들짐승 날짐승이 단골 메뉴였습니다. 아하, 그는 자연주의자니까.
그의 자택은 비무장지대안에라도 있는 것일까요. 창밖으로 이런 파노라마의 대자연을 만날 수 있다니. 필경 그의 집 창문은 동서남북으로 다양하게 나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넓은 발코니에 나가서 자유로이 앵글을 활용하거나 산책(散策) 중에 촬영하는 ‘파울 플레이(?)’를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아닌게 아니라 다른 자료엔 100여만장의 사진 중 90%만 창밖을 통해 촬영했다고 소개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렇다해도 아해는 최소한 도덕적인 작가입니다. 자연을 건드리지는 않았으니까요. 500년된 금강송의 사진 각도가 안나온다고 주변의 200년 된 금강송 수십그루를 베거나, 동물들을 괴롭히고 때로는 해치면서 인위적으로 연출하는 사진작가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한국의 유명한 자연주의자이자 사진작가인 아해는 거의 100만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그의 작품 90%는 집안의 창문을 통해 촬영한 것들이다. 매혹적으로 아름다운 한국의 시골정경을 볼 수 있는 그의 사진들은 가장 순수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인위적이지 않고 작위적이지 않다. 자연의 아름다움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개별적인 관점에서 사진들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전시회는 우리의 지속적인 건강과 복지와 관련하여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차남 “그 누구도 아버지와 같은 작가는 없어”
그에 관한 유용한 한가지 정보가 있다면 아들의 등장입니다.
“아해의 사진전 ‘내 창을 통해서’는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운 속성을 가장 순수하며 가장 원초적으로 보여준다. 아해의 아들 키이스 유(Keith Yoo)와 대변인은 ‘어떤 사진작가도 이렇게 엄청난 작업량을 통해 만든 것은 없었다’고 말한다. ‘특히 인위적인 조명과 무대, 편집 등 일체의 인공적인 편집이 없는 것들이다. 이것은 가장 단순하지만 보기드문 프로젝트이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키이스 유는 차남 유혁기 씨의 미국 이름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대자연을 촬영한 그의 자택은 안성의 금수원 안에 있었고 작업을 하는 개인 스튜디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진들을 많이 걸고 싶은 욕심때문이었는지 디스플레이가 조밀(稠密)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솜씨좋은 큐레이터가 가세하지 않은듯 작품들을 주제화 하지도 않았더군요. 솔직히 규모엔 압도됐지만 작품의 수준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2008년 이전에 작업을 했다는 내용이 없으니 아해의 사진작가 경력은 그리 내세울만한게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성능 좋은 최고급의 카메라와 장비들로 2년간 줄기차게 100만장을 찍는다면 누구라도 훌륭한 사진 수백장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얼굴없는 사진작가, 자연주의 사진작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주의와 선진 시민들에게 민감한 환경보호를 강조하면서 아해의 이미지 마케팅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언론의 주목을 피하면서도 그는 뉴욕 전시회 이듬해인 2012년 루브르의 튀를리 정원, 2013년 베르사이유궁에서 잇단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115만 유로(약 15억원)의 엄청난 기부금(寄附金)을 낸 댓가로 알려졌지만 그랜드 센트럴이라는 뉴욕의 랜드마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 경력이 ‘국제적인 작가’의 행보에 분명 도움이 됐을 터입니다.
사업가이자 종교지도자인 그가 말년에 자연주의 사진작가로까지 포장하게 된 것은 순수한 예술의 열정이었을까요. 아니면 이 또한 치밀한 사업의 한 방편이었을까요.
갑오년(甲午年) 비극의 정점(頂點)인 세월호 참사이후 그는 사상 최고액의 상금이 걸린 현상수배자가 되었고 의문의 변사체로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아해의 웹사이트(www.ahae.com)는 출생과 사망을 의미하는 ‘1941-2014’로 표시해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旣定事實)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본래 한국어 영어 불어 등 7개 언어로 서비스됐지만 초기화면외에는 들어갈 수 없더군요.
눈길을 끄는 것은 바탕화면에서 하나씩 떠오르는 일곱 개의 애도 메시지들입니다. ‘당신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거에요.’(마이클) ‘당신은 정말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잭)...
그리고 피터의 메시지는 의미심장합니다. ‘내 주위 사람들과 함께 당신의 사상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당신의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을 세상이 알도록 진실을 위한 싸움을 하겠습니다.’
photo by JV Bai
미스테리의 삶이요, 미스테리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유병언 회장의 죽음은 세월호 참사 규명과 또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서서히 침몰하는 배에 갇힌 가녀린 목숨들을 왜 단 한명도 구하지 못했느냐가 진정한 ‘화두’이므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0:10:47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