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막판에 접어들면서 윤석렬 국힘당후보가 연일 어퍼컷을 날리고 있다. 복서 출신도 아닌데 왜 자꾸 공중에 어퍼컷을 날릴까. 현정권과 민주당에게 호쾌한 주먹을 날려 지지자들에게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알 것 같다. 선거를 이틀 앞둔 7일 유세에서는 가죽장갑까지 끼었다. 홍콩 느와르의 낯선 향기도 풍긴다.
M이코노미TV 캡처
문득 2002년 5월 노무현과 이회창의 추억이 떠올랐다. 20년전 난 스포츠서울 사회부장이었다. 월드컵과 대선의 해, 여야 후보와 단독인터뷰하는 기획이 추진됐다. 월드컵 개막을 앞둔 싯점에 종합지와는 차별화된 연성기획이었다.
노무현 이회창 두 후보와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사전에 진행한 서면 인터뷰와 현장에서 대면 인터뷰를 추가하는 방식이었다. 먼저 노무현과 영등포의 한 지구당 창당식에서 만나기로 했다. 당시 경선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직후라 많은 관심이 쏟아진 터였다.
노무현이 행사장에 등장하는데 참 희한한 느낌을 받았다. 광배(光背) 현상이라고 할까. 마치 뒤에서 빛을 받는 듯 사람이 빛나보이는거다. 사실 노무현은 대선에 두 번째 도전하는 이회창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졌다. 그런 그에게서 광채(光彩)가 나는 듯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행사를 마치고 인근 한 실내공간에서 수인사를 나누었다. 명함을 건넸다. 눈을 꿈뻑꿈뻑 하면서 보더니 한마디 툭 던진다.
“어라, 노씨네!”
지금이야 명함도 로창현이지만 당시엔 호적대로 했으니 같은 성씨가 도드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본관이 어디냐? 흔히 나옴직한 족보따지기는 다행히(?) 없었다. 어찌보면 참 무덤덤한 스타일, 노무현은 그랬다.
인터뷰를 한 후 들고간 그의 책에 서명도 받았다. 워낙 바쁜 후보시절이라 길을 가는 순간까지도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일주일쯤 후에 이회창캠프와 약속을 했다. 잠실쪽에서 일정이 있어 월드컵 분위기도 맞출 겸 잠실종합운동장을 약속장소로 정했다. 현장에 갔더니 뜻밖에 월드컵 홍보에 여념이 없던 ‘콧털가수’ 김흥국이 와 있었다. 이회창캠프에서 나와달라고 했단다.
이내 수행원들과 함께 도착한 이회창은 우리보고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김흥국과 축구공 그리고 경기장. 대충 감이 잡혔다. 잠시 후 돌아온 그를 보고 탄성이 나왔다. 붉은악마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덕분에 유니폼 차림의 대선후보와 김흥국이 서로 공을 차며 달리는 기막힌 그림이 연출된 것이다.
솔직히 이회창캠프의 언론대응력은 노무현캠프보다 몇수 위였다. 두사람 모두 신문 한 면을 털어 게재된 공평한 와이드 인터뷰였지만 캠프의 기획력에 따라 확실한 차이가 난 것이다.
정작 놀라웠던건 이회창의 볼차는 모습과 움직임이었다.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수준급 실력자인 김흥국과 운동장을 몇 번 돌면서 차는데 호흡도 꽤 잘 맞았다.
가쁜 숨을 고르고 론그라운드 한 가운데 앉아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남다른 운동신경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보니 학창시절 권투선수를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놀라웠다. ‘대쪽’이란 별명으로 강직한 법조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운동과는 담쌓았을 것 같은 인물이 권투를 했다니...
윤석렬의 어퍼컷을 보면서 단단한 체구의 이회창이 그 시절 유세장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다면 어울렸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푸트웍과 위빙, 더킹의 몸동작도 슬쩍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어퍼컷은 복싱에서 상대에게 파고들며 급소(急所)인 턱을 노리는 기술이다. 그러나 잘못 들어가다간 상대에게 치명적인 카운터블로를 맞기 쉽다.
TBS 캡처
사실 복서출신이 아니면서도 어퍼컷 세리머니를 멋지게 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히딩크다. 골이 터지는 순간 온 국민이 절정의 흥분으로 치달을 때 어김없이 나오는 히딩크의 어퍼컷 세리머니는 어느 세계 챔피언보다 멋져 보였다.
2002의 향수가 떠오르는 2022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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