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영혼의 샘물을 마구 팔아먹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이는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는 책도 냈습니다. 얼마전 새로 낸 책 제목은 '예수쟁이 김삿갓'입니다. 목사가 예수쟁이라고 책을 짓다니, 파격(破格)을 넘어 불경(不敬)입니다.
그이가 출판기념회를 하겠다며 가까운 이들을 불렀습니다. 30-4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방을 예약했는데 150여명이 와버렸습니다. 뉴욕 뉴저지, 펜실베니아, 버지니아, 워싱턴도 모자라 LA에선 외과의사이자 통일운동가 오인동박사가 비행기로 6시간을 타고 날아왔습니다. 한국은 물론, 일본 고베에서도 축하 메시지가 잇따랐습니다.
등촌 이계선(74) 목사는 특별한 분입니다. 은퇴후 뉴욕의 변방 돌섬마을(파 라커웨이) 시영아파트로 이현자사모와 함께 홀연히 내려갔습니다. 부부가 바닷가에서 꽃게도 잡고 '에덴농장' '아리랑농장'으로 부르는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고구마 배추도 캐고 깻잎도 수확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삽니다. 권력에 쓴소리하고 기성 교단에 일갈(一喝)을 서슴지 않는 진짜배기 목사이지요,
시월의 마지막날인 31일 플러싱의 식당 금강산에서 '예수쟁이 김삿갓'(신앙과지성사) 출판잔치가 펼쳐졌습니다. 명색이 출판을 기념하는데 지하행사장에 작은 플래카드 한 장 걸리지 않았더군요. 하긴 첫째딸 결혼식도 플러싱 식물원 야외에서 친지만 불러서 '열린 문학회'처럼 진행한 그이가 아닌가요.
아니나다를까, 출판잔치도 파격(破格) 그 자체였습니다. 경제학박사가 영시를 읊었고 시인은 징을 울렸습니다. 목사가 색소폰을 불었고 시민운동가는 장구를 치며 판소리를 했습니다. 기라성같은 박사와 목사, 의사, 교수들을 앞에 두고 스포츠기자가 문학강연을 했습니다. 하객중에는 한국말은 한마디도 못알아듣는 돌섬의 이웃 흑인청년들도 있었습니다.
본 행사에 앞서 참석자 모두가 자기소개를 하며 공통적으로 부여된 주제는 '내가 싫어하는 남자, 내가 싫어하는 여자'였습니다. 박인수•이동원의 '향수' 합창으로 본행사의 막을 열었고 폐회송은 노사연의 '만남'을 모두가 손잡고 불렀습니다.
다섯명의 축사와 국악한마당과 서평, 두명의 축시와 두명의 축가, 두명의 강연이 이어지는 내내 웃음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이목사의 3남매가 '내고향 충청도'를 '내고향 돌섬'으로 개사해 부를 때는 찡한 감동의 눈시울도 붉어졌지요.
출판잔치 다음 날인 1일엔 등촌이 사는 돌섬 아파트에서 작품 소재를 배경 삼아 보리밥과 갓김치로 식사도 하고 직접 심은 고구마를 함께 캐며 '돌섬 가을 축제'를 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기획한 것은 다름아닌 이계선 목사입니다. 등촌의 필력은 19세기 최고의 풍자가 앰브로스 비어스도 울고갈 정도랍니다. 그러나 직접적이고 신랄(辛辣)한 비판보다는 중의(重義)와 역설(逆說)의 유머로 포장하고 따스한 인간미까지 갖춘 글로 독자들을 사로잡습니다.
경기도 평택이 고향인 등촌은 나사렛대학을 졸업하고 목사 부흥사로 활동하다가 오십을 바라보던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목회를 시작했습니다. 틈틈이 한인언론에 독자투고를 보내다 난생 처음 써본 소설 '글갱이 사람들'이 광야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로 당선돼 얼떨결에 등단 작가가 됐습니다.
평생 목회를 하면서 황금보기를 돌같이 한 그는 5년전 존 F 케네디공항 뒤에 있는 돌섬(Far Rockaway)의 시영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가난하지만 정많은 흑인, 히스패닉 이웃과 함께 사는 애환(哀歡)을 '돌섬통신'과 '글로벌웹진' 뉴스로에 연재하는 '등촌의 사랑방이야기'로 세상과 소통했지요.
'돈 싫어하는 목사'라는 글에서 그는 "세상천지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목사들도 돈을 좋아한다. 싫어하는 척 하면서 좋아한다..대형교회도 교회세습도 다 돈 때문이다. 목회를 은퇴하고나니 돈 걱정 안해서 좋다. 수입도 없지만 돈 쓸 일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축도 한번에 3천불 주는 교회'라는 글에선 대형교회의 터무니없는 사례금 문제를 지적하며 가난한 목사 부흥사로 있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충청도 홍성에서 부흥회를 끝냈을 때입니다. 어느 자매님이 달걀박스를 선물로 줬습니다. 집에 와서 아내와 3남매가 달려들어 세어봤습니다. ‘와! 100개다. 일백개나 되는 이렇게 많은 계란을 한꺼번에 선물로 받다니!’ 갑자기 부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예수쟁이 김삿갓'은 돌섬통신을 통해 연재한 것중 41편의 글을 골랐고 '하얀갈대' '글갱이 사람들' 두편의 단편소설을 더했습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릅니다. 대동강 물 팔아먹은 김삿갓이 책 제목에 들어온 이유입니다.
행간 곳곳에서 등촌의 풍자(諷刺)와 해학(諧謔)은 차고 넘칩니다. "결혼 50년동안 나는 단 한번도 돈을 주물러 본적이 없습니다. 수입이 적었으니까요. 우리집 재정관리는 아내 전권입니다. 돈에 관한한 나는 마이너스 손이고 아내는 마이더스 손입니다." (설교구걸하는 거지목사)
돌섬통신 독자들은 지난해 8월 '나는 파킨슨병 환자입니다'라는 글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선고에도 등촌은 태연자약(泰然自若), 유머러스하기까지 했습니다.
"한달동안 종합검진을 한 전문의는 결과를 알려주려고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의사의 입술을 쳐다봤습니다. 의사는 최종판결을 내리는 대법원장처럼 보였습니다. 흉악범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염라대왕의 모습이 아닙니다. 멀쩡한 민주인사를 간첩으로 몰아 사형선고를 내리는 군사독재시절의 대법원장 표정 같다고나 할까? '목사님은 파킨슨병에 걸렸습니다' 순간 나는 웃음이 나올 뻔 했습니다. 의사는 의아해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파킨슨병인걸 알자 우셨는데 이목사님은 대견해하는 표정이군요' '파킨슨병 판정을 받는 순간 내가 대통령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아하, 레이건대통령을 말씀하는군요.'
이후 파킨슨병은 등촌의 친구처럼 등장합니다. 파킨슨병덕분에 그는 더욱 활력이 넘칩니다.
"파킨슨병이 생기고 난 후터 뛰어다닌답니다. 가만히 있으면 사지가 굳어지니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30분동안 스트레칭을 합니다. 굳은 몸이 문어처럼 부드러워집니다. 심호흡을 열번씩 합니다. 파킨슨병으로 작아진 목소리가 살아납니다. 오늘 미국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데 나의 하이테너에 주위가 놀랐습니다.."
여전히 그의 유머는 깨소금처럼 고소하고 찹살떡처럼 찰집니다.
"난 티슈와 내프킨 치매증세가 있다. 던킨도너츠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티슈와 내프킨을 까먹는다. 커피와 도너츠를 받고 티슈를 달라고 해야 하는데 영 생각이 안 난다. 수없이 외우고 들어가도 소용없다. 티슈말고 내프킨이라 해도 되는데 말이다...화투는 치매를 치료해주는 예쁜 꽃싸움(花鬪)이다. 화투를 만졌다하면 강남 복부인들도 망한다는데 나는 화투효험을 많이 보는 셈이다. 세상에 화투로 재미 보는 남자는 나와 조영남뿐일것이다. 조영남은 화투그림으로 돈을 꽤 벌었을 테니까." (화투로 재미보는 남자)



한인최초로 미국감리교회 감독을 역임한 김해종 목사는 "차라리 미국교회로 나간다는 그의 말은 한국교회를 향한 사랑의 역설이다. 허드슨 강가를 배회하고 돌섬에서 꽃게잡이를 되풀이해도 속마음에는 즐거움이 없다. 한국교회 때문이다..한국교회를 향한 그의 진실한 마음은 파킨슨병에 걸린 몸보다 더 아프고 쓰리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쓴다..판에 박힌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을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이 목사님의 글은 예수님도 웃으시며 읽으실 글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신성남 집사는 추천의 글에서 "지난 30년간 목회를 하신 많은 목사님들 중에 한국적 '성공주의'와 '성장주의'를 제대로 극복하신 분들은 매우 드물다. 큰 존경을 받던 유명 목회자들조차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거의 대부분 '종교 귀족'의 자리를 거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등촌은 그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의 삶은 기름기가 없이 그저 담백하다. 인공 조미료가 전혀 없는 유기농 음식 같은 삶이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지난해에 101세로 돌아가신 이계선목사의 어머니 이은혜권사님과 7남매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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