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들이 모국에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대표적인 한가지를 들라면 시도때도 없이 바뀌는 외양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젠 박물관에 박제(剝製)라도 되야 할 구태의연한 표현이 될 모양입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산천은 6개월 한번은 바뀌고 있으니까요. 아마 모국에 계신 분들은 잘 느끼지 못할겁니다. 저처럼 미국에
살면서 일년에 한두번 모국에 들어가는 입장에선 갈때마다 바뀌는 우리나라가 재미있기도 하고 희한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는 복잡한 심사에
사로잡힙니다.
그것은 필경 6.25동란으로 조국 강토(疆土)가 쑥대밭이 된 후에 남북이 각자의 경제개발 혹은 군사개발(?)을 통해
옛것을 보존하기 보다는 짓고 허물고 다시 짓고를 반복하는 습성이 들은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이야 가본 적이 없으니 논외로 하고 서울을 비롯하여 남녘의 산하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갈 때마다 없던 초대형 건물이나 도로가 불쑥불쑥 생기고 새로운 제도와 문화가 튀어나와 6개월만에 들어오는 재외국민을 낯설게 합니다.
동네고 시내고 바뀌는게 하도 많아 “이번엔 또 뭐가?” 호기심반 두려움반 그런 마음이 됩니다.
반면 지난 10년간 뉴욕에서 바뀐건 곰곰 생각해봐도 떠오르는게 없네요. 요즘 맨해튼에 콘도건물 신축 붐이 일기는 하지만
초대형 빌딩이랄것은 아니고 2002년 9.11테러로 무너진 쌍둥이건물 대신 프리덤 타워가 솟아오른것인데 벌써 10년이 넘은 세월이니 ‘강산이
바뀔만한 기간’입니다. ^^
지난 봄 한국을 다녀온 후 주마간산꼬레아 상반기편을 연재할 무수히 많은 사진들을 촬영했지만 매일 쫒기는 일에 엄두를
못내다가 이제야 시작을 합니다. 조금 구문이 되버렸지만 널리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서울의 광화문과 시청 주변은 무교동에서 3년, 태평로에서 16년 등 20년 가깝게 직장생활을 한지라 많은 애환이 녹아
있는 곳입니다. 지난해 봄과 가을 이곳에 갔을 때 시청은 한창 공사중이었습니다.
지난 봄에 갔을 때는 신청사가 들어섰더군요. 그런데 건물 모양이 참 특이합니다. 건물 하나만을 놓고 볼 때는 나름 독특한
외양이 있지만 뭐랄까 주변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구조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신청사는 건축 전문가 100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최악의 한국 현대건축물 1위의 불명예를 안았다지
뭡니까. 구 청사를 허물고 (일부는 남겨뒀습니다만) 꼭 이런 식으로 신청사를 만들어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일제의 잔재(殘滓)인 구청사를 대신하려 했다면 우리의 전통미를 살리는 고풍스런 형태가 좋지 않았느냐는 것이지요. 제가
사는 동네에 맨해튼으로 가는 기차역이 있는데 수년전 역으로 연결되는 철로위의 낡은 육교를 허물고 새 것을 짓는 과정을 흥미롭게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놀란 사실은 이전 것보다 더 고색창연한 형태로 새 육교가 탄생했다는 사실입니다. 별 것 아닌 철골 구조물이지만
모양이며 색상이며 만든 것은 한 50년쯤 된듯했습니다. 당연히 주변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렸고 세월의 깊이가 담겨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육교를 처음 본 사람들은 만든지 수십년은 된 줄 알겠지요. 동네 육교도 이렇게 만드는데 하물며 도심에선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만약 미국인들이 서울시 신청사를 짓게 되었다면 600년 도읍지였던 서울의 역사가 듬뿍 느껴지는 건축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모양은 주변과 전혀 안어울렸지만 서울의 모양을 망가뜨린 것이 어디 신청사뿐이겠습니까. 서울광장 앞 프라자 호텔을 비롯해
제 직장이 있었던 프레스센터 건물, 건너편의 코리아나 호텔, 동아일보 신사옥, 파이낸스센터 남대문 주변의 삼성건물 등등 인근 빌딩들 모두가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망친 주범들이니까요.
하지만 서울시 신청사 자체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돋보이고 시민들을 배려하는 새로운 공간이라는 평가는 할 수 있었습니다.
신청사는 지하철 시청역에서 4번출구쪽으로 올라가면 서울시청 ‘시민청’이 나옵니다.
갤러리와 시민발언대, 공정무역 가게도 있습니다.
책방을 지나면 조선시대 무기 제도 기관인 군기시(軍器寺) 유적을 만납니다. 군기시 유적은 신청사를 짓는 과정에서 발굴한
곳입니다. 자기와 동전, 기와는 물론, 보물로 지정된 불랑기자포와 총통 등 무기류들도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을 군기시의 유구를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해 놓은 공간이 전시실이 돼 있었습니다. 지하에서 동굴 속 유적지를
보는듯한 풍경이었습니다.
특히 토층의 한 단면을 고고학적 유적 형태로 전시해 놓았는데 자연퇴적층, 조선전기문화층, 근대문화층 등으로 구별해놓고
출토된 유물과 유구가 어떻게 다른지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시청 지하에서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자연퇴적층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시민청갤러리 뜬구름갤러리 활력콘서트 시민발언대 담벼락미디어 등 재치있는 아이디어의 시설물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둥그런 계단을 타고 시청 1층 로비에 들어서면 거대한 녹색 정원(Green Wall)이 벽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약 7층 높이의 거대한 수직정원은 6만5천본의 공기정화식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안내하신 분에
따르면 공기정화만이 아니라 실내온도와 습도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는군요.
위를 올려다보면 천장을 가로지르는 유선형의 물체가 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까지 올라가면 만나는
‘하늘 광장’입니다. 복층 공간에 빛이 가득하도록 채광이 설계돼 있습니다.
서울특별시청 청사는 일제강점기 때, 경성부청(京城府廳)으로 건립되었다가 광복 이후 서울시청 건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1962년 북관이 증축되고 1986년 신관이 증축되었는데 새로운 청사를 짓기 위해 2006년초에 철거되었습니다.
새로운 청사가 들어서면서 구 청사는 서울도서관으로 용도가 바뀌었는데요. 아무튼 참 멋지게 만들어졌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십여년전 모습이 뇌리에 남아있는 저로선 뭔가 낯설고 허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박정희정권때처럼 모든걸 싹 지워버린게 아니라 일부나마 전시관형태로 남겨놓고 지나간 흔적을 더듬어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니 그에 만족해야 할까요. 하긴 박정권이후 30년도 더 지났는데 그만한 생각을 못하면 말도 안되겠지만요.
서울시청의 신청사를 경험하며 우와~하는 감탄사보다는 왠지 모를 상실감과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비단 저만이
아니었겠지요.
<2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