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분들이 대사님들 맞나요?"
22일 맨해튼 더 플라자 호텔 그랜드볼룸. 중년의 6인조 밴드가 아이돌밴드와 같은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유엔 최초의 밴드 ‘유엔록스(UN Rocks)'였습니다.
'유엔록스'엔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션도 있습니다. 이날만은 대사직을 내려놓고 드러머로 변신한 오 준 대사입니다.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만찬장에서 깜짝 연주를 한 UN Rocks는 리드싱어 시모나 미렐라 미쿨레스쿠(루마니아)와 보컬 겸 베이스 입 페테르센(덴마크), 보컬 겸 기타 밀란 밀라노비치(세르비아), 보컬 겸 기타 비라차이 플라사이(태국), 키보드 마헤울리 투포우니(통가) 등 6개국 대사와 이날 참석하지 않았지만 유엔 사무국직원인 세르지오 페레이라(기타) 등 7인으로 구성됐습니다.
'로킨 올 오버 더 월드'의 신나는 리듬으로 시작한 이들은 존 레논의 '이매진', 건스 앤 로지스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로 이어나가 청중을 사로잡았고 피날레 곡은 원더 걸스의 '노 바디'를 흥겨운 율동과 함께 선사해 객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이날 기조연설을 한 김 용 세계은행 총재와 하이라이트인 밴 플리트 상 시상식에 대한 관심을 잠시 가리게 할만큼 폭발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유엔록스가 창설된 것은 지난해 8월입니다. 오준 대사는 "그전엔 홍일점 미쿨레스쿠 대사가 노래도 하고 사회도 보는 등 오락반장(娛樂班長)같은 역할을 했어요. 처음엔 밀라노비치 대사와 둘이 모였는데 내가 드럼을 좀 친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함께 모여 밴드를 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하더군요"라고 소개했습니다.
오 대사에 이어 젊은 시절 재즈밴드에서 노래와 연주를 했다는 덴마크 대사와 통가 대사가 차례로 영입됐습니다. 두달 전 합류한 태국 대사도 각종 악기 연주에 능한 실력파 뮤지션입니다. 유엔록스는 지난해 9월 반기문 총장과 사무국 임원들, 각국 대사들이 함께 한 맨해튼 선상 파티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습니다.
아마추어 수준을 넘는 이들의 연주는 입소문을 타고 불어권대사 연례만찬 등 각종 행사에 초대받는 인기 밴드가 되었지요. 그러나 워낙 업무에 바쁜 유엔 대사들이라 이날까지 공식 무대는 네 번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이번달은 좀 바쁠 모양입니다. 곧 본국으로 복귀하는 미쿨레스쿠 대사의 송별을 겸한 연주가 오는 26일 유엔총회장에서 열리는 국제합창대회에서 펼쳐질 예정이니까요.
함께 모여 연습을 하는 것은 한달에 두 번, 일요일 저녁입니다. "아무리 바쁜 대사들이라도 일요일 저녁에 약속잡는 사람들은 거의 없거든요. 관저에 연주실을 갖춘 세르비아대사가 대표부에서 모여 연습하다 태국대사가 합류한 뒤로는 연습실을 태국대표부로 옮기게 됐어요. 원래 연주를 하던 사람들이라 조금만 손발을 맞춰도 되더라구요."
내년 유엔 안보리 이사국후보로 출마할 예정인 태국 대사는 음악으로 선거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달에 한번 대표부 관저에서 각국 대사들을 초청하는 음악파티를 열어 표밭갈이를 하고 있습니다.
오준 대사는 외교부에서 음악동호회를 이끄는 등 수준급의 연주자로 익히 소문이 났습니다. 2004년 음악동호회 Mofat(외교통상부) Musicians를 창설한 그는 주한외교사절단과 함께 자선음악회를 여는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서울대 시절 ‘스타피시(불가사리)' 밴드팀의 드러머로 활약했습니다. 대학가요제의 전신인 MBC전국대학보컬경연대회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78년 외무고시 합격을 전후로 2년정도 제외하고는 취미로 드럼을 계속 했단다. 싱가포르 대사 등 임지에 갈 때도 드럼은 늘 이삿짐속에 있었습니다.
사실 오준 대사는 그림실력도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섭니다. 매년 보내는 연하장도 자신의 그림을 인쇄한 것입니다. 음악과 미술에 걸쳐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이는 것에 대해 그는 "취미가 달랑 두 개밖에 없는데 괜히 밖으로 소문이 난 것 같아요. 자랑할 수준은 아닌데.."라고 겸손해 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다자외교전문가인 오준 대사는 "유엔록스를 소개하는 글에도 나와 있듯이 예술은 평화를 촉진하는 부드러운 힘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이라는 마법을 통해 서로에게 다가가고 이해하고 관용의 정신을 보인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지겠지요"하고 말했습니다.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만찬은 한미관련 민간행사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행사입니다. 센트럴파크 바로 앞 유서깊은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한미양국 인사들만 700명에 달했습니다. 남성들은 대부분 정장과 보타이 차림, 파티 드레스 차림을 한 여성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우아한 한복을 차려 입은 유일한 주인공은 미국인이었습니다. 바로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대사였습니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이날 밝은 옥색 치마에 연보라 저고리의 단아한 한복을 입고 나와 시선을 끌었습니다.
과거 평화봉사단원 출신으로 유창한 한국말과 '심은경'이라는 한국이름도 갖고 있는 스티븐스 전 대사는 밴 플리트 상을 수상한 김호연 김구재단 이사장을 소개하는 연설에서도 여러 차례 한국말을 섞어 박수를 받는 등 '한국홍보대사'를 방불케 했습니다.
캐슬린 전 대사는 이날 참석치 못한 김호연 이사장을 대신해 토마스 허바드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으로부터 트로피를 수상했습니다.
이에 앞서 기조연설자로 나온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실향민 출신 아버지가 미국에 와서 어머니를 만난 에피소드와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 아프리카에서 부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김용 총재는 한국이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선 세가지 '이즘(ism)'을 극복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노인차별(Ageism)과 성차별(Sexism), 인종차별(Racism)을 들어 청중들의 호응(呼應)을 얻었습니다.
그는 60년대만 해도 아프리카 빈국의 수준이었던 한국이 반세기도 안돼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낮은 출산률과 여성의 경제적 기회 등의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며 이주민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를 가질 것을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