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최초의 위안부기림비 건립으로 잘 알려진 뉴저지 팰리세이즈 팍 타운이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으로 한인사회의 분열(分裂)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과 인접한 팰리세이즈 팍(이하 팰팍)은 인구의 55%가 한인으로 미주 도시로는 유일하게 한인 주민이 절반을 넘는 도시입니다. 인구 2만5000여명의 작은 도시지만 팰팍의 명성을 한국은 물론, 미국에도 알린 것은 지난 2010년 해외 최초로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덕분이지요.
기림비 건립 이후 이곳은 위안부 이슈와 전쟁범죄 여성인권 등 시민활동의 성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습니다. 그런 팰팍이 이곳을 주무르는 주류 정치인간의 심각한 알력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친한파 정치인으로 한국사회에 여러 차례 소개된 제임스 로툰도 시장은 10일 제이슨 김 부시장을 전격 해임하고 이종철 시의원을 부시장으로 영입한다고 밝혔습니다. 외관상 한인 부시장이 또 다른 한인으로 교체된 것이지만 속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팰팍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이고 로툰도 시장을 비롯해 제이슨 김 부시장과 이종철 시의원, 크리스 정 시의원 등 한인 정치인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그러나 팰팍을 움직이는 진짜 정치적 힘은 80대의 마이크 폴라타 민주당 위원장에서 나옵니다.
이 지역이 '폴라타 왕국'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수십 년간 그는 팰팍의 정치 대부로 존재했습니다. 폴라타 위원장과 로툰도 시장을 포함, 팰팍은 이탈리아계의 아성(牙城)이기도 했구요. 팰팍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은 로툰도 시장과 폴라타 위원장이 정치적 명운을 걸고 극한 대립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인구의 반수가 넘는 한인사회를 의식, 휘하의 한인 정치인들을 내세워 대리전 양상을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폴라타는 로툰도가 지난 봄 자기 아들을 초등학교 교감으로 앉히려 하는 등 월권(越權)을 휘두르고 시장이 학교 관리직으로 이름만 걸어놓고 3만여 달러 연봉을 챙기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또 부인은 빌딩국 직원, 또 다른 아들은 경찰, 누나는 클럭오피스에서 일하는 등 다수의 가족이 타운정부에 근무하는 등 불투명한 인사의 문제를 공격했으나 폴라타 역시 조카 등 친척들이 타운정부 내 다양한 부서에 근무하는 등 이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들은 민주당이라는 한울타리에서 정치적 동반자 관계였습니다. 로툰도도 폴라타의 후원으로 성장했고 제이슨 김도 로툰도의 지원이 있었지요. 교육위원과 시의원, 부시장까지 순조롭게 올라가던 제이슨 김 부시장은 지난해 6월 시의원직을 크리스 정 시의원에게 사실상 물려주고 부시장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의 돌연한 시의원직 반납은 건강상의 이유로 발표됐으나 이후 2018년 시장선거에 나설 뜻을 표명하면서 내부에서 미묘한 정치적 구도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급기야 로툰도 시장이 김 부시장을 전격 해임하고 이종철 시의원을 부시장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이에 폴라타는 로툰도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며 "팰팍은 이탈리아계 도시에서 한인의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한인시장이 나설 때가 됐다"며 2018년 선거에 제이슨 김 부시장을 시장 후보로 밀겠다는 뜻을 표명했습니다.
당초 한인사회가 분열될 수 있다며 부시장을 고사(苦辭)한다던 이종철 시의원은 '부시장에 타인종이 임명되면 한인사회와 팰팍정부의 협조에 틈이 벌어질 수 있다'는 명분을 들어 부시장직을 수용한다는 입장입니다.
때문에 한인사회는 로툰도-이종철 지지파, 폴라타-제이슨 김 지지파로 양분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각각의 친소(親疏) 관계에 따라 "한인 시장을 탄생시킬 기회가 왔다"는 의견과 "정치력을 갖춘 친한파 시장이 낫다"는 의견이 대립하는 것이지요.
많은 한인들은 한인사회가 제대로 된 정치력을 키우지 못한 결과라는 자성과 비판의 시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인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주류정치인들의 눈치를 보고 줄서기나 하는 바람에 한인사회의 권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20년 전만 해도 '별 볼 일 없던 무명의 팰팍 타운이 한인들 덕분에 상가가 활성화되고 집값도 폭등하는 등 경제발전의 견인차(牽引車) 역할을 했지만 세금이나 걷고 각종 위반티켓이나 발부(發付)하는 등 '봉으로 대접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팰팍경찰서에 근무하는 한인 경찰관도 30명 중 두 명에 불과한 점과 2년 전부터 브로드애버뉴를 코리안스트릿으로 병행 표기하자는 의견도 묵살(默殺)된 것도 한인들은 섭섭해하고 있습니다.
브로드 애버뉴는 근 2㎞에 걸쳐 한인상점들이 꼬리를 물고 있어 미주에서 가장 긴 한인거리의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로툰도 시장이 브로드 애버뉴와 '코리안마켓 스트리트'의 명칭병기를 긍정 검토하는 것도 곱지 않은 시각을 받고 있습니다.
한 상점주는 "이곳은 99% 이상 한인상점인데 우리가 요청하기 전에 코리안 스트리트라는 이름이 됐어야 하는 게 아니냐. 이제 와서 한인들을 배려하는 것처럼 하는 게 우습다"고 꼬집었습니다.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문제는 뉴욕 플러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현재 뉴욕 퀸즈한인회 주도로 한인사회는 노던블러바드 150-160가 일대에 '코리아타운 플라자'를 세우는 문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코리아타운 플라자는 155~156가 사이 레오나드 스퀘어와 루스벨트 애비뉴를 막아 5천 스퀘어 피트(약 180평)의 공간을 조성하는 계획으로 한국 전통양식의 팔각정과 벤치 및 화단 등을 설치해 시민들의 휴식 공간을 만드는 계획입니다.
토니 앤 스타비스키 뉴욕주의원 등 친한파 정치인들의 강력한 후원 아래 올 들어 이곳에서 두 차례 원데이 플라자 행사를 열고 주민 워크샵도 실시했으나 최근 일부 시민단체가 교통혼잡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반대해 제동이 걸린 상태입니다. 특히 10일엔 또 다른 친한파정치인 토니 아벨라 주의원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같은 친한파 정치인들임에도 이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이들의 정치적 색채가 다른 갈등관계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인사회는 차제에 주류사회와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진짜배기 한인정치인을 양성하고 친한파 정치인들도 무늬만 친한파인지, 진심으로 한인사회를 의식하는지 구별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팰팍 주민의 55%가 한인인데 눈치 안 보고 할 말 하는 시의원과 시장을 못 만들 이유가 무엇인가요. 모든 사람이 의견이 같을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의 권익 앞에서 한인들이 최대한 뭉쳐서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