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경일도 쉬고, 미국 국경일도 쉬고.
이런 꿈의 회사가 있을까요. 실제로 그런 혜택(惠澤)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주미 대사관과 총영사관 직원들입니다.
워싱턴의 주미대사관과 뉴욕총영사관, LA총영사관 등 총 12개 공관들은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문을 닫았습니다. 그들만의 황금연휴를 즐긴 것입니다.
한글날인 9일이 금요일이고 12일 월요일은 미국의 연방공휴일 컬럼버스데이입니다. 토, 일요일과 묶어 무려 나흘을 쉴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주미공관 직원들이 미국에서 한국의 국경일을 쉬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뤄진 관행(慣行)입니다.
물론 벼룩도 낯짝이 있지 한국의 모든 법정 공휴일을 쉬는 것은 아닙니다. 삼일절과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4개 국경일이 대상입니다. 국경일도 급수가 있는지 어떤건 쉬고 어떤건 안쉬고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고유명절의 비중으로 따진다면 추석과 설날이야말로 쉬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그때는 천연덕스럽게 지나가고 유독 이 4개 공휴일만 애국이라도 하는 양 부득불 쉬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재미공관 직원들은 1월의 뉴이어스데이부터 12월 크리스마스까지 미국의 10개 연방공휴일에 한국의 4개 국경일을 덤으로 쉬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국경일이 현지에선 업무일이라 많은 민원인들의 불편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금요일과 월요일은 가장 많은 민원인들이 몰려 이같은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왔다가 헛걸음을 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분들은 다 아시지만 물설고 낯선 외국(이민)생활속에서 하루 시간을 내어 영사 업무를 위해 공관을 찾는건 쉽지 않습니다. 한국처럼 사는 곳에 동사무소가 있고 어지간한 것은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평일 하루를 완전히 접고 가야 하는데 힘들게 갔더니 쉬는 날임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허무(?) 맹랑하겠습니까.
미리 잘 파악하고 가야되는게 아니냐고 하시겠지만 대부분의 동포들은 이같은 사실들을 모르고 혹 안다해도 현지 사정에 맞춰 살다보니 별 생각없이 평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뉴욕 총영사관
그래도 비상업무는 한다는 얘기에 쉬는 날 전화를 한번 걸어봤습니다. 뉴욕총영사관의 경우 전화를 걸면 휴무안내 자동메시지가 나옵니다.
'사건사고 등 긴급업무가 있을 경우 222번을 누르면 직원과 통화할 수 있고 만일 연결이 안될 경우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하는군요. 이날 전화를 두차례 해보았지만 통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번호를 남겼지만 전화가 오지도 않았구요.ㅠㅠ
워싱턴 대사관에 전화를 하면 범죄피해나 긴급영사업무가 필요한 사람은 1번을 누르라고 했습니다. 긴급번호를 누르니 다행히 직원이 나왔지만 담당자에게 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었고 '긴급사안이라고 판단되면 직원을 수배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말 그대로 긴급 서비스인만큼 예외적인 사안에 국한될뿐 각각의 급한 사정들이 있는 민원인들에게 큰 불편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긴급의 기준은 갑이 판단하니 을에겐 역시 '그림의 떡'이올습니다.
워싱턴 주미 대사관
LA총영사관은 대표전화로 걸어도 휴무일을 고지(告知)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1분에 걸쳐서 자동안내를 듣고서 0번을 누르니 그제야 '오늘은 휴일이므로 근무일에 연락하라'는 내용과 '사망사건 등 긴급한 사건의 경우 213-XXXX..으로 연락해달라'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메시지를 남겼지만 역시 '리턴 콜'은 없었구요.
알고보니 대부분의 재외공관들은 출근하는것도 아니고 그냥 조를 짜서 휴무일 전화 당번을 하는 것인데요. 그런건 토요일이나 일요일 같은 보통의 휴일에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평일이나 다름없는 동포들을 위해선 좀더 성의있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많은 지상사 주재원들과 동포 직장인들은 한글날은 물론이요, 컬럼버스 데이도 일하러 출근합니다. 나흘 황금연휴는커녕 보통의 휴일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지요.
그런데 나라의 녹(국민의 세금)을 받는 공관 직원들은 동포들을 위해서 일하라는건데 로마에서 서울법을 따르겠다니 이게 뭔 경우인가요?
한인들은 "아무리 한국의 국경일이지만 미국이 정상근무일이면 최소 인원이라도 나와야 하는게 아닌가. 긴급 서비스 전화는 사실상 형식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 민원인의 말입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국경일을 모두 쉬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기념일을 기리는건 좋아요. 하지만 외국에선 재외국민들을 위해서라도 현지 관습과 법에 따라야 하는게 아닌가요. 반대로 우리나라 국경일은 미국 근무일이니까 일하고, 미국 국경일은 한국과 상관없으니 출근하라고 하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네요.."
* 이 글은 지난 10월 9일 송고 기사를 칼럼형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