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마음은 오기 전날 방문한 보현사(普賢寺)에서도 이어졌다. 보현사는 자강도와 인접한 평북 향산군의 수려한 묘향산에 위치한 북한 최고의 사찰이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불보사찰이요, 청운대선사 등 북한불교를 대표하는 큰스님들을 배출한 사실상의 종찰(宗刹) 역할도 맡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때 이곳에 주석(住錫)하던 서산대사는 72세의 노구를 이끌고 나와 전국의 사찰에 승병을 일으키도록 했다. 평양성 수복에 성공한 후 서산대사는 제자인 사명대사에 뒷일을 맡기고 다시 묘향산에 들어가 보현사에서 입적했다.
보현사도 한국전쟁의 참화를 피해가지 못했다. 전쟁 전 30채가 넘는 절집들이 있었지만 미군 폭격으로 만세루 등 3분의 2가 파괴되었다. 대체 군사나 산업시설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폭격을 강행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유럽은 1,2차 대전당시 전역이 전화에 휩싸였지만 역사적인 유적물은 대부분 손상되지 않고 보호됐다. 그에 비하면 북녘 땅이 겪은 피해는 너무나 참담했다. 그들에게 동방의 작은 나라 유적과 무고한 주민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보현사 앞에서 미니밴을 타고온 신혼부부 일행과 마주쳤다. 그들과도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말을 건네기가 조심스러웠는데 일행중 한 사람이 우리를 향해 접근하며 말을 붙였다. 아주 쾌활한 친구였다.
우리가 미국에서 왔다는 얘기에 환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만났는데 신혼부부한데 덕담좀 해주시라요”하는거다. 우리의 축하에 신랑신부는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 했다. 그들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지금쯤 그들도 보현사 앞에서 만난 낯선 미국동포들과 함께 한 짧은 시간을 돌이키고 있을 것이다.
비단 보현사만이 아니더라도 명승지와 사적지에 가면 막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들이 눈에 띄었다. 화사한 한복차림의 여성들과 말쑥하니 양복을 입은 신랑들이 봄가을에 특히 많이 보인다.
북에선 보통 결혼식을 신부 집에서 올린다. 신랑이 신부집에 와서 상을 받은 뒤, 신부를 데려가는 형식이다. 직장 상사나 친구가 사회 겸 주례를 맡고 조촐한 피로연도 진행한다. 과거엔 결혼식이 종일 걸리는 동네 잔치였지만 요즘엔 결혼문화가 많이 바뀌어 결혼식 전문 식당에서 3시간 이내 식을 끝내기도 한다.
photo by Jean Chung
혼수는 신랑이 보통 옷감과 화장품을, 신부가 장롱과 재봉틀, 그릇, 이불, 가전제품 등을 준비한다고 한다.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은 사전에 국가에 신청하여 공급받기 때문에 우리처럼 ‘내 집 마련’에 신경쓸 일이 거의 없다. 보통 결혼하면 신부가 시댁에서 함께 사는데 방이 모자라면 일종의 ‘매매교환’으로 해결한다. 즉 큰집을 사는 사람과 집을 맞바꾸는데 일정한 값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세상 어느곳이든 평생을 함께 할 짝과 새로운 출발을 하는 젊은 커플은 보는 이들에게도 행복감을 안겨준다.
(9편 계속)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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