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새벽은 희미한 안개에 젖어 있었다. 택시 몇 대가 두줄로 서 있다. 평양에 택시들이 크게 늘었다더니 밤새 손님들을 기다리는 택시들도 제법 되었다.
창너머 오른편으로 눈을 돌리면 내가 평양의 한복판에 있다는게 실감이 난다. .
해방산 호텔은 해방산 ‘구역’(서울의 구 개념과 같다)에 있다. 해방산거리 동쪽에 있는 해방산은 해발 35m에 불과한 언덕같은 산이다. 광복을 기념해 해방산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해방산 호텔은 서울의 한강마냥 동서로 흐르는 대동강변에서 한블럭 안쪽에 있는데 평양의 최고급 호텔은 고려호텔과 량각도 호텔이고 해방산 호텔은 평양호텔과 함께 그 다음인 고급 수준이다.
사실 오기전 숙소는 북을 자주 다녀온 경험자가 추천한 평양호텔에 머물 생각이었다. 호텔은 도착후에 결정해도 된다고 들었는데 공항에 마중나온 안내 김선생은 해방산 호텔을 이미 예약했다고 한다. 미리 얘기를 안한 실수는 있지만 우리의 요청에도 ‘호텔을 바꿀 수 없다’는 단호한 말에 좀 기분이 상했다. 그건 ‘안내’도 마찬가지였다.
“난 선생님들이 혹시 고려호텔을 원할까봐 걱정했습니다. 지금 방이 없어서 해방산 호텔로 정했다 말입니다.” 자기딴엔 신경써서 해방산호텔을 예약했는데 같은 급인 평양호텔로 못해준다고 무슨 불만(?)이냐는 볼멘 소리였다.
찜찜함 느낌으로 숙소인 해방산 호텔에 도착했는데, 뜻밖의 선물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방산 호텔 오른쪽 90도 방향으로 로동신문사 건물이 있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이야 별다른 감흥이 없었겠지만 언론인인 나로선 북한의 대표적인 신문사 바로 옆에서 머물게 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숙소에 들어가서도 좋은 위치의 방이 배정돼 창문을 내다보면 대문짝만한 로동신문 간판과 밤에도 환한 조명(照明)이 가해지는 ‘김일성-김정일 초상’이 한눈에 보였다. 내가 정말 북한의 한복판에 들어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해방산호텔에선 트윈룸을 혼자 썼는데 가격은 조식 포함, 하루에 78달러였다. 둘이서 쓰면 88달러이니, 40%는 절약이 되는 셈이다. 호텔방은 아주 청결했고 꽃병이 놓인 탁자와 전화 TV 헤어드라이어 미니냉장고 등 기본적인 비품이 비치됐다. 바닥이 나무였는데 따뜻하게 데워져 맨발로 다니면 마치 온돌방에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화장대거울 앞에 가위와 실, 바늘이 들어있는 작은 반짇고리함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수십년간 세계 여러나라의 수많은 호텔방을 경험했지만 반짇고리가 비치된 것은 평양의 호텔이 처음이었다. 이런 세심한 서비스라니, 가히 ‘디테일’에 강한 평양의 호텔이다.
지난 2월에 해방산호텔이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로부터 신의주화장품공장과 함께 ‘김정일 훈장’이 수여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공적 사유는 “봉사활동을 끊임없이 개선함으로써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고 나라의 대외적 권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관광산업은 외화벌이로서도 꽤 중요하다. 그런만큼 호텔의 봉사원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도 서방 못지 않다. 내가 묵은 호텔이 봉사활동을 잘해 상을 받았다니 직원들의 세심한 서비스가 떠올라 미소가 퍼진다.
(5편 계속)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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