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향산(妙香山)에 가기 전날이었다. 안내원 김선생이 “묘향산 가서 조개구이나 먹읍시다”고 말한다.
아니 묘향산에 바다가 있나? 산에서 웬 조개구이? 불현듯 90년대 중반 남한의 한 공중파 TV 취재진이 북에서 주민과 인터뷰 하면서 ‘해수욕을 묘향산에서 한다’는 식으로 소개해 웃음거리로 삼았던 일이 떠올랐다. 요즘 말로 ‘악마의 편집’이었다. 아무려면 북한 주민이 해수욕의 뜻을 몰라서 묘향산에서 해수욕 한다고 하겠는가.
묘향산 조개구이의 의문은 다음날 아침 김선생이 비단(백합) 조개를 8kg이나 들고 오면서 풀렸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조개들이 먹음직스러웠다. 북녘의 4대 명산으로 꼽히는 묘향산은 계곡부터 우리를 놀라게 했다. 거울처럼 맑은 명경지수(明鏡止水)였다. 계곡 하류인데도 바닥이 고스란히 비치는데 어쩌면 그렇게 투명한지...너무 맑아서 산천어조차 못살 것 같았다.
동행한 권용섭 화백은 물가로 가더니 호텔에서 들고 온 샘물(생수)을 버리고 계곡물을 담았다.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생수보다 더 시원하고 맛있네” 연신 감탄이다.
묘향산 입구에 세워진 생태환경 보호준칙 안내판을 보니 북의 자연보호 정책은 우리보다 엄격하게 느껴졌다. 남녘에 비해선 행락객이 거의 없어서 오염될 가능성이 적은데도 수려한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지는 확실해 보였다.
취사는 사전에 허가를 통해 지정된 곳에서 가능하다. 그런데 조개를 굽는다면서 주변엔 장작이나 숯같은게 보이질 않는다. 조개구이 방법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김선생과 운전수 홍선생은 큼지막한 조개들을 돌판 위에 나란히 세우기 시작했다. 균형을 잡기 위해 테두리는 작은 돌로 받쳤다. 저걸 어떻게 익힌다는거야? 갸우뚱하는데 홍선생이 점퍼 주머니에서 작은 플라스틱 생수통 두 개를 꺼낸다. 연노랑의 액체가 담겨 있다. 작은 구멍을 통해 쭉 뿌리더니 라이터를 켠다.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액체의 정체는 휘발유였다.
“어?.. 먹을거에 휘발유 뿌려도 되나요?”
“아, 일없습니다(괜찮습니다). 휘발유는 타서 날아가는데 뭐.”
듣고보니 그럴듯했다. 불과 10분만에 즉석 조개구이가 완성됐다.
하나씩 조개를 들고 입을 벌렸다. 잘 익은 속살에선 살짝 휘발유 향이 묻어났다. 그런데 먹다보니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이거 휘발유조개구이 맛이 은근히 좋네.^^
조개구이에 평양소주가 빠질 수 없다. 김선생은 “조개랑 소주랑 같이 먹으면 안팎으로 소독됩니다”고 이죽댄다. 술잔은 커다란 조개껍질이 대신했다.
조개껍데기 술잔을 주거니받거니... 묘향산 계곡의 휘발유 조개구이는 그렇게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휘발유 조개로 배를 채운 덕분에 준비한 도시락은 반이상 남겼고.
방북후에 오랫동안 북녘에서 의료봉사를 했던 LA의 오인동 박사와 통화하며 휘발유 조개구이 얘기를 하자, “휘발유 조개구이? 그거 기가 막히지. 난 평양에서 먹었는데, 경치좋은 묘향산 계곡에서 즐겼으니 더 좋았겠구만” 하고 껄껄 웃었다.
사진 오인동박사 제공
휘발유 조개구이 추억이 너무 강렬해서 두 번째 방북에선 평양의 유일한 휘발유 조개구이 식당을 일부러 찾아갔다. 대동강 풍치가 멋드러진 동평양의 강변 락랑호텔 식당이었다.
강변에서 여성봉사원이 직접 조리하는데 둥그런 통속에 조개를 세워놓고 휘발유를 뿌린다. 나도 좀 해보자고 하면서 휘발유 조개구이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물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우리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휘발유 조개구이를 잡수셨다니까 1950년대부터 있었던거 같습니다. 그때는 가마니 위에 조개를 세워놓고 휘발유를 뿌렸습니다.”
요즘 ‘남녀북남의 로맨스 드라마’로 인기를 모으는 ‘사랑 불(사랑의 불시착)’에서 휘발유 조개구이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가마니 위에서 휘발유 조개구이를 하는 장면을 보고 제작진이 꽤 충실하게 자료 조사를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혹시 북에 가신다면 휘발유 조개구이를 한번쯤 경험하시라.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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