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 이름 그대로 프릭이 모은 예술작품들로 이뤄진 박물관 프릭콜렉션, 프릭뮤지엄 모건 라이브러리에서도 대량의 미술품을 구입, 자신의 사택을 꾸미고 대부호(大富豪) 모건처럼 사후 이 예술품 가득한 집을 뉴욕시에 박물관으로 기증한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 1849-1919).
헨리 클레이 프릭은 어마어마한 예술작품 콜렉터로 잘 알려진 문화 예술계의 큰 손이다. 멋진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아름다운 저택에서 노후(老後)를 아내와 보내려고 했지만 정작 5년밖에 살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그는 자신보다 열네살 많은 ‘철강왕’ 카네기와 쌍벽을 이루는 불편한 라이벌관계로 20블럭 위 카네기의 저택(현재 쿠퍼휴이트 박물관)을 광산업자의 오두막처럼 보이게 하겠다며 70스트릿 에비뉴를 통으로 사들여 집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저택 설계는 뉴욕 공립도서관을 만든 캐리어&해스팅스를 고용해 당시 500만 달러를 들여 지었다고하니 그가 얼마나 카네기를 의식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철강, 석탄, 철도사업으로 부를 쌓은 그는 초기 카네기 강철회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대표 자리까지 오르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카네기에게 임원들 앞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에 회사를 나와 US스틸을 차렸고 카네기와 동지에서 적으로 만나며 경쟁하게 된다. 악덕경영자로도 유명했던 프릭은 권총 저격을 두 번이나 당할만큼 노동자들에게 원망이 높았는데 파업이나 요구사항들에 탄압은 기본이고 오히려 강도 높은 구조조정(構造調整)을 한 결과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CEO' 리스트에 항상 이름을 올리곤 했다.
photo by Obi Lee
저격 당시 권총 두 발도 귀와 목만 살짝 스쳤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1912년 타이타닉호 승선을 하려했으나 아내가 발을 다쳐 막판에 취소하는 등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프릭이었지만 장수 운은 부족했는지 공교롭게 카네기가 타계한 1919년, 69세의 나이에 모든 재산을 남겨둔 채 세상을 등진다.
그는 조각 그림 등 미술작품을 유독 좋아했으며 그가 지내던 서재, 사랑방, 넓은 화랑에는 값비싼 예술품들로 가득하다. 전 세계인들이 예술작품 콜렉션을 보기 위해 찾는 프릭뮤지엄은 The Met처럼 너무 크지도, MoMA처럼 피카소나 고흐의 작품은 없지만 16세기 네덜란드의 천재화가 램브란트부터 19세기말 미국화가 휘슬러까지 서양미술사 ‘끝판왕’을 보는 듯 하다.
이하 사진 Frick Collection 웹사이트
저 유명한 램브란트의 자화상(portrait of himself)과 Nicholas Ruts, Polish Rider 영화로 대중에게 더 잘 알려진,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같은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영국화가로 고전적인 풍경화에서 낭만적 경향으로 기울어진 대표작으로 ‘전함 테메레르’ ‘수장’ 등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J.M.W Turner)의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현재 특별전으로 Canova at Work - George Washington이 눈길을 끌고 있는데 안토니오 카노바는 이탈리아의 조각가이며 신고전주의 대표자로 미국건국의 아버지, 초대대통령 조지워싱턴의 조각을 여러 형태로 완성했다. 마블 테라코타 플라스터(plaster, 석고 또는 석회, 물, 모래로 이루어진 풀 모양의 건축재료) 조각과 오일캔버스 드로잉 등 다양한 모습의 조지 워싱턴을 여러 방법으로 묘사했으며 프릭뮤지엄 내 스크린을 통해 감상과 설명듣기가 가능하다.
프릭컬렉션에서 실내 촬영은 금지, 실내 정원에서만 촬영이 가능하며 매주 수요일 2시부터 6시는 기부제 입장, 매달 첫 번째 금요일 오후 6시부터 9시는 무료입장이다. 뉴욕에 있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훌륭한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기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드라마틱한 프릭의 삶도 돌아보면서.
Henry Clay Frick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Obi Lee’s NYHOT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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