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번 도난당했던 뭉크의 대표작 ‘절규(The Scream)’을 볼 수 있는 오슬로의 뭉크 뮤지엄. 노르웨이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작품들이 많기에 여행 전부터 'MUST SEE' 1순위였던 곳.
시내와 꽤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도시가 작다고 해도 걸어가기에는 다소 먼 거리였으나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그 고생하는 과정 자체가 묘미(妙味)여서 덴마크 이후 삔 발목이 욱신거리고 부어올랐음에도 불구, 기쁜 마음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절규’ 라는 작품보다 ‘마돈나’라는 작품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음울하고 아픔이 고스란히 그림에 표현되어있는 그의 명화를 한 점씩 볼 때마다 마음이 짠~했다. 어째서 천재들의 삶은 고통과 지옥을 경험하고 죽음이후에 사랑을 더 받게 되는 것일까.
반 고흐의 상처가 밝은 빛으로, 간접적으로 화가의 아픈 영혼을 보여줬다면 즉, 상처를 감추기 위해 두꺼운 화장(化粧)을 한듯한 느낌이었다면, 뭉크의 그림은 보다 직접적인, 화장기 전혀 없는 뼛속까지 보여주는 작품처럼 생각되었다. (개인의 느낌이니 전문적 해설은 검색엔진을 이용하시고 태클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또한 그림을 그린 대상이나 주제 자체도 다른 화가들과는 차이를 보이는데 나는 그 안에서 처절한 외로움을 보았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고독을 그는 당당히 보여준 것이다.
박물관을 나서면서 그 곳에서 알게된 작품(한동안 응시했던…)을 비롯, 엽서 몇 장을 산 후 아쉽게 이별을 했다. 허술한 경비 시스템을 보니 그동안 도난사건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이해가 되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제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뭉크의 작품을 보며 감명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오슬로에는 ‘비겔란드(Vigeland, Adolf Gustav) 조각 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어디선가, 엽서나 달력 등에서 한번쯤은 본 듯한 그의 조각들이 공원을 아름답게 채우고 있으며 인간의 희노애락, 탄생과 죽음 등을 담은 모습을 보며 국적이 다른 수백명의 사람들이 다른 생각과 추억을 가슴에 안고 돌아가는 곳이다.
이곳을 찾아가는 길은 뭉크 박물관보다 훨씬 더 멀다. 처음에는 나도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꼭 가야하나 망설였는데 날씨 좋은 날, 더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이 공원을 방문하지 않았으면 서운할 뻔 했다.
오슬로에서도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었다. 숙소에서 아이패드2로(객실에서는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아 좁은 로비의 의자들은 각자의 랩탑을 든 여행객들로 늘 북적거렸다, 'Hostel Ankers') 다음 이동할 곳의 숙소를 찾아보고 있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남학생이 슬그머니~ 옆으로 오더니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었고 난 한국말로 “저…한국사람인데요”라고 대답해주었다.
청년은(나중에 알게된 그의 이름은 박준범군.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장기여행객들은 대부분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과감히 여행에 도전한 이들이 많다) 3개월째 여행중이었고 서유럽 이후 북유럽에서 좀처럼 한국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 우울증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 근처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내 나이면 어딜 가나 연장자이기때문에 준범군은 간만에 만난 나이 많은 누나로 인해 기분좋아 했다. 노트북을 가지고 오지 않아 후회된다는 친구에게 아이패드를 빌려주었고 또 북유럽 현지인들 사이의 아이패드2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아이패드2는 기본적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며 현재 많이들 쓰는 카카오 톡을 쓸 수 있어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실시간 소식 전하기가 가능하였다. 또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풍경 사진만 가득 한 카메라만을 들고 귀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애플 제품은 셀프촬영이 가능하여 이번에는 내 사진이 많다는 것도 좋은 점 중 하나였다. (물론 양손으로 들고 찍어야해서 모든 얼굴 사이즈가 똑같고 변화가 별로 없긴 했지만….)
같은 영화를 보고 다른 감정을 느끼듯 개인의 취향마다 느끼는 점도 다를 것이다. 대부분 젊은 친구들이 하루 정도 찍고 가는 이 곳 오슬로에서 3일을 꽉 채워 보냈다.(물론 날씨도 많이 좌우했다. 오슬로에서는 늘 해가 쨍쨍했고 스톡홀름에서의 이틀은 계속 비가 왔다)
떠날 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물가도 비싸고 맥주조차 마트에서 쉽게 팔지 않는 이 도시가 내게 매력적이었던 것은 거리 곳곳에 느껴지는 예술혼(藝術魂)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제 피오르드를 보기 위해 다른 도시로 내일 새벽에 떠나야한다. 날씨가 좋기를 바랄뿐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1:06:12 Rita의 북구여행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