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을 만나기 위해 그의 생가가 있는 오덴세로 가야하는데 시간은 한시간 반 남짓 걸리지만 비용은 미화 $100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더군다나 북유럽 스웨덴부터 느낀거지만 크레딧카드(visa)에 자꾸 핀 넘버(비밀번호)를 누르란다.
내 기억에 애시당초 셋업한 적이 없는거 같은데 이미 틀린 걸 여러번 눌렀고 노 핀넘버라고 했을 때 대부분 미국처럼 싸인으로 전환시켜주었다. 그런데 코펜하겐은 유별(有別)을 떨어 중앙역에서조차 핀 넘버 없이는 카드를 긁을 수 없어 얼마 없는 현금 중 일부를 환전해서 티켓을 사야만 했다.
나의 걱정 고민은 시작되었다. 가장 비싼 두 나라가 남았는데 어쩐단 말이던가. 그러나 이 고민때문에 안데르센과의 만남마저 망칠 수는 없었다. 오덴세로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 오덴세 역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의 생가(生家)가 있는 곳은 매우 작았고 역에서 멀지 않았지만 상실한 나의 방향감각은 이미 여러 사람의 설명을 듣고 엉뚱하게 헤매기 시작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강을 건너려던 아시아계 데니쉬에게 길을 다시 물었고 그는 나를 직접 마을까지 안내해 주었다.

▲ 생가를 알리는 표지판
▲ 안데르센의 유품을 볼 수 있는 박물관
자, 여기서 여행의 묘미, 인생의 재미...특별한 인연이 만들어진다. 그는 안내 후 갈 길을 갔고 나는 셔터를 누르며 안도하고 있을 때 다시 내 주변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며 어색한 미소를 내가 보였고 그는 마치 날 기다리는 듯 하였다. 물론 약간 무섭고 의심도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 공원에서는 안데르센 동화구연과 놀이가 한창이다.
“여긴 안데르센이 자란 곳이고 실제 태어나서 유아기를 보낸 곳은 따로 있어. 관광객들은 잘 몰라. 그리고 그 길로 가다보면 멋진 교회와 호수가 있어. 원한다면 데려다 줄게..”(영어...대략 이런 내용)
여러분이라면 어떤 생각을 먼저 하겠는가? 난 내 직감을 믿고 그 호의에 그럼 위치만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사진을 찍겠다고 설명했다.
▲ 실제 생가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안데르센은 청소년기를 지금 사람들이 많이 찾는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이 친구의 이름은 데이빗. 중국계 덴마크인이다. 미국에 이민온 중국인을 부지기수로 봤지만 북유럽에서 덴마크 말을 하는 1.5세는 왜 그리 낮설든지. 덴마크의 겨울이 너무 길고, 춥고, 어두워서 매년 추위가 찾아올 때면 중국으로 가서 몇 달 지내다 온다며 자신도 여행을 좋아하기에 동병상린의 마음으로 돕고 싶다는 것이었다.
혼자였다면 놓치기 쉽고 지루할 수도 있었던 오덴세에서 데이빗은 훌륭한 가이드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내가 코펜하겐 가는 기차를 타는 그 순간까지도 편명을 확인하고 뉴스에서 봤다는 말을 강조하며 기차역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 일러 주었다.
내가 이 친구를 위해 베푼 것은 2 달러짜리 아이스크림 하나였다. 낯선 이의 친절을 의심부터 하게 되는 요즘 세상에 난 동화(童畵)에서나 봄직한 아름다움을 만났다. 뉴욕에 가서 이메일 하겠다는 인사와 함께 4시간의 투어를 마치고 작별을 했다. 그리고 기차에서 이 특별한 인연때문에 혼자 미소지었다.
로맨틱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여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우연이었기에 안데르센 마을이 더욱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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