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방송과 인연을 맺은게 중학교 때였으니 나 역시 ‘아역출신’이라 할 수 있겠다. 운좋게 단역과 조연을 오래 거치지 않고 고등학교 3학년때 청소년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교실”, 주인공 차동복 역과 인연을 맺어 2년 가까이 활동을 했으니 요즘도 간혹 나보다 어린 친구들은 나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혹시 연예인 아니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어릴 때 전문 매니지먼트(그 당시에는 엄마들이 대부분 매니저 노릇을 했었다)의 관리 없이 활동을 하다보니 시간이 지난 지금 여러가지를 떠올려보면 예민한 시기를 엄마와 함께 해서 많은 시간을 나눌 수 있었던 점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반대로 쉽게 어리광을 부리다보니 쇼비즈니스 세계를 스스로 떠나는 결정을 하게 되었지만.
아역배우출신이라는 꼬리표는 대학시절 내게 큰 부담이었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프로그램 하차(下車) 의사를 밝혔는데 당시 극중 아버지 역을 했던 고 김흥기 선생님의 야단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땐 나만 생각했다. 내가 하차함으로서 가족역할을 했던 분들의 고충(苦衷)은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이었고 엄마에게 울며 제발 나 이 짓 안하게 해달라고 떼만 부렸으니. 어디든 소속되어 계속 연예활동을 해야 했지만 누군가가 날 알아보고 낮선 조직(?)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불편한 일이였다.
그래서 어쩌면 대학 4년 내내 연기보다는 나를 좀 더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다른 나라로 여행을 많이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졸업 후에도 마음을 잡지 못한 나는 중학생 영어학원 강사, 연기 강사 등 겉도는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연극을 만나게 되었다.
화려할 필요도 다른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고 오직 연기만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무대라는 사실을 깨닫고(물론 그곳 또한 조직사회이기 때문에 많은 갈등요소들이 있었다) 20대 후반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끊임없이 무대에 서고 계속해서 공연을 보러 다녔으며 대학원까지 가게 되었다.
나를 괴롭히는 질문들은 바로, 왜 계속 활동하지 않았느냐? 빽이 없었느냐? 소속사는 어디냐? 등이었다. TV를 하다가 잘 안풀리니까 연극을 한다는 식의 오해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모두가 스타를 꿈꾸는가? 모두가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샤넬백을 원하는가?
어려서 연기를 시작했지만 그곳은 철저한 쇼비즈니스 사회였고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시기(猜忌), 질투(嫉妬) 그리고 음모(陰謀)가 많은 곳이었다. 지금도 나는 내 스스로 떠날 결심을 한 것이었기에 어떠한 후회도 없다. 얼마 전 함께 드라마, 음반활동은 물론 중대로 편입을 한 고 박용하의 1주기 뉴스를 접하니 더 마음이 짠해졌다.
한국에서 운좋게 훌륭한 분들과의 작업으로 주연배우로 왕성하게 활동을 했던 나는 5년 전 뉴욕행을 결정해버렸다. 나는 늘 밑바닥부터 시작하기를 원하나보다. 어릴 때 TV 활동들, 연극배우로서의 꽤 괜찮았던 삶… 그리고 이제 나는 배역의 욕심을 내려놓고 이곳 뉴욕극단들과의 작업에 도전해본다.
영어는 내 모국어도 아니고 극단에서는 나를 욕심내지 않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많은 제약(制約)을 이미 가지고 시작하지만 난 극단의 문을 두드려 보려고 한다. 언더스터디도 좋고 대사 한줄 단역배우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티켓을 팔거나 무대 뒤에서 기회를 엿보고만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곳에서 한인동포를 대상으로 두 번의 연극을 하면서 좋은 경험을 한 나였지만 나는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배우이기에 이제 용기 내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두렵지 않다. 아니, 사실 두려움은 내가 즐기는 도전과제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증명해보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겁나 혹은 연기를 못해 도망친 것이 아니라 정말 연기가 좋아 무대에 서고 싶어 도전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또 다른 인연을 만나 다시 한번 희망을, 꿈을 펼쳐 보일 것이다.
아역배우출신 탤런트, 대학로배우, 중대출신…. 한국에서 내가 가졌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만이 어느 순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삶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느님이 주신 감사한 재능을 맘껏 펼치며 살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