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사진필진 l Kor-Eng    
 
뉴욕필진
·Obi Lee's NYHOTPOINT (103)
·강우성의 오!필승코리아 (40)
·김경락의 한반도중립화 (14)
·김기화의 Shall we dance (16)
·김성아의 NY 다이어리 (16)
·김은주의 마음의 편지 (45)
·김치김의 그림이 있는 풍경 (107)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173)
·로창현의 뉴욕 편지 (506)
·마라토너 에반엄마 (5)
·백영현의 아리랑별곡 (26)
·부산갈매기 뉴욕을 날다 (9)
·서영민의 재미있는인류학 (42)
·신기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17)
·신재영의 쓴소리 단소리 (13)
·안치용의 시크릿오브코리아 (38)
·앤드류 임의 뒷골목 뉴욕 (37)
·제이V.배의 코리안데이 (22)
·조성모의 Along the Road (51)
·차주범의 ‘We are America (36)
·최윤희의 미국속의 한국인 (15)
·폴김의 한민족 참역사 (476)
·한동신의 사람이 있었네 (37)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244)
·훈이네의 미국살이 (117)
·韓泰格의 架橋세상 (96)
Obi Lee's NYHOTPOINT
옐로캡과 서브웨이, 기차와 수상택시, 헬기까지. 뉴욕은 육해공의 교통수단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곳이지만 별다방 커피를 손에 들고 애버뉴와 스트릿을 걷는 것이야말로 뉴욕의 멋과 맛을 즐기기엔 제격이다. 연극과 마케팅에 걸쳐 활기찬 전문인의 삶을 살아가는 리타가 전해주는 아주 특별한 뉴욕 스토리.

총 게시물 103건, 최근 0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피오르드에서 만난 노르웨이의 비극 (11)Rita 여행기

글쓴이 : Rita 날짜 : 2011-08-04 (목) 13:10:56

 

노르웨이 피오르드의 진수(眞髓)인 베르겐과 스타방게르의 경험을 나누기 전 먼저 이번 오슬로 테러의 희생자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글로 마음을 전한다.

몇년 전, 스페인 마드리드를 여행했을 때 기차역 폭탄테러가 있어 가족들이 걱정했고, 2001년 여행차 뉴욕에 왔을 때 9.11이 터져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있다.

 

노르웨이 여행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듣게된 테러 소식에 현장에 있을 때보다 더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겨우 며칠 전 그곳을 지나며 사진을 찍고 활보 했었는데...

오슬로에서는 경찰조차 길에서 보기 힘들어도 전혀 불안함이 없었고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과 개성 다양한 현지인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도시였는데 갑작스런, 그리고 잔인한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에 경찰이나 의료진조차 발빠르게 대처할 수 없었을 그 당시를 내가 있었던 장소와 함께 떠올리니 더욱 슬픔이 밀려온다. 사람들에게서 천천히 잊혀질 대참사지만 나에게는 더욱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일이 될 것이다.

 

세계 4대 피오르드뿐만 아니라 노르웨이는 ‘피오르드의 나라’라고 불러도 될 만큼 도시를 벗어나면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노르웨이의 대표 피오르드 구간을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볼 수 있는 대표 투어 상품인 Norway in nutshell을 신청했다.

 

총 11시간동안 절경(絶景)을 감상하며 Bergen도시로 이동하는 상품으로 그 코스를 살펴보면 오슬로 중앙역 출발(기차로 다음 목적지까지 가야하지만 현재 공사중이라 버스를 타고 한시간 30분 이동 후 기차로 갈아타는 불편함이 있다) - 기차로 뮈르달(Myrdal) 도착 - 산속을 달리는 특별한 기차로 다시 갈아 탄 후 플람(Flam)이동 - 페리를 타고 구드방겐(Gudvangen) - 버스타고 보스(Voss)이동 - 기차타고 베르겐(Bergen) 도착으로 돼 있다.

 

단 내가 정해진 시간 내에 다음 교통편을 타지 못한 것에 대해서 책임은 없다는 말에 걱정을 하였으나 워낙 많은 사람이 함께 이동하였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슬로에서 쨍쨍하던 날씨는 1년 365일 중 200일 이상 비온다는 누군가의 얘기처럼 나 역시 피오르드를 보기 위한 며칠 내내 비와 사투를 벌여야 했으며 사진보다 못한 실제 광경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특히 구드방겐으로 가는 페리 구간은 현지인들에게 ‘7자매’라고 불리는 폭포가 유명한데 11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폭포를 보기 때문에 마치 터키 여행 후 이집트에서 유네스코지정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고도 ‘돌덩어리들!’이라고 여겨지는 것처럼 대단한 감흥은 없었다. 그러나 직행으로 가면 4시간 걸릴 거리를 11시간 투자하며 갈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계속 볼 수 있었으니 약간 흩뿌리는 빗방울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베르겐에서도 아주 특별한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기차역에 지도가 없어 호스텔 찾아갈 길이 막막해 한숨 쉬고 있을 때 지도를 보고 있는 동양 여자를 보았다. 지도를 빌려도 되겠냐고 했더니 친절히 보여주더니 어디 숙소를 찾냐고 한다. YMCA 호스텔이라고 대답했더니 자기도 거기 묵었다며 반가워 했다.

  

Wendy 라는 이 친구는 오슬로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이미 4시간이나 그곳에서 지루하게 있었고 앞으로도 3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니 직접 호스텔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친절을 베풀었다. 덕분에 지도가 있어도 기본 30분은 뱅글뱅글 돌았을 나는 쉽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이 체류하는 동안 알게 된 폴란드 교수님도 내게 소개시켜 주었다. 아이슬랜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난 며칠 후 오슬로로 가야했고 웬디도 내가 도착한 다음날 독일로 가니 시간을 맞춰 한번 더 보기로 하고 서로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베르겐에서 첫 날을 보낸 후, 4대 피오르드 중 하나를 볼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바꿔 스타방게르로 이동, 뤼세피오르드를 보기로 마음을 고쳤다. 그곳에서 만난 독일 할아버지가 며칠 전 그곳에 다녀왔다며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고소공포증(高所恐怖症)이 있는 나로서는 사진만으로도 벌써 다리가 떨릴 정도의 두려움을 느낄만큼 압도적인 풍광이었다. 하지만 도전정신 하나로 일단 이동하자라는 생각으로 이틀 후 아침 일찍 페리에 몸을 실고 스타방게르로 이동했다.

 

베르겐보다 더 굵은 빗방울을 맞아야 했던 스타방게르에 도착하자마자 인포센터에서 돌산을 올라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죽고싶으면 올라가라’는 결코 농담같지 않은 답변이었다. 지금 이정도의 비바람이면 산 정상은 훨씬 더 세차고 하이킹 시간이 보통 왕복 4시간에서 5시간일뿐더러 해도 더 일찍 떨어진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하이킹을 할 생각으로 이 도시에서 10시간을 잡아둔 상태였고 야간기차로 다시 오슬로로 돌아가야 하기때문에 짜릿한 하이킹이 졸지에 킬링타임으로 바뀌면서 비를 맞으며 여기 저기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인포센터 직원은 비오는 날 가장 완벽하다는 박물관 몇 곳을 추천해줬지만 난 그냥 좁은 구시가지 골목을 돌아다니며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였다.

 


그때 심정은 하이킹을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하늘이 나를 도운 것 같기도 하다. 노르웨이에서는 발목이 많이 부어 올라서 내리막 길을 걸을 때 더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고 얇은 운동화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부족한 장비 또한 문제였을 것이다.
 

여행 중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이렇게나마 위안을 삼고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아슬아슬함을 즐기는 분들이 있다면 미리 날씨 확인, 여유로운 일정으로 준비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밤 11시가 넘어 출발한 기차는 다음날 오전 7시쯤 오슬로에 도착했다. 배낭여행이 나이 들수록 어렵다고 하는 이유들은 대부분이 숙박때문이다. 여러명과 함께 자야하는 호스텔의 불편함, 야간 이동으로 쪽잠을 청해야 하는 부분들인데 나의 경우 그 어디에서건 아직은 잠을 잘 자는 것 같다. 아니 너무 푹 자서 민망할 정도니 앞으로 몇 번은 더 이 도전이 계속 될 수 있으리라.

 


약속대로 웬디와 난 오슬로에서 여유있게 맥주 한잔과 수다를 안주로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 발목을 보더니 자기 옆집에 중국인 부부가 산다며 그 집에는 없는게 없으니 파스가 있는지 물어보고 내가 떠나기 전 호스텔 근처로 와서 주겠다고 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해달라고 하기가 어려워 대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나와 헤어진 후 이메일을 보내 파스를 구했다며 다시 도시로 나왔다.(그녀는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고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어서 발목이 낫기를 바란다며 그림부터 심상치 않아 보이는 붙이는 파스를 내 손에 들려주었다.

 

때론 정말 낮선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낮선 이의 친절에 코끝 찡해지기도 한다. 덴마크에서 만난 데이빗과 함께 오래 오래 서로의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사이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노르웨이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은 단지 물가가 비싼 것을 넘어 특히 교통비가 무시무시하다는 점이다. 많은 배낭객들이 피오르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비싼 교통비때문에 수도만 보고 이동하는 경우를 보는데 교통비를 계산하다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총 6박 7일동안 머물렀던 노르웨이를 떠나 나의 마지막 나라, 아이슬랜드로 떠나게 된다. 한숨으로 시작되었던 여행이 점점 웃음으로 변했고 멀게만 느껴졌던 3주간의 일정이 이제 아이슬랜드에서의 4박만 남겨두게 되었다. 그곳에도 스칸다비아 요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11:06:12 Rita의 북구여행에서 이동 됨]


이전글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제호 : 뉴스로 l발행인 : 盧昌賢 l편집인 : 盧昌賢
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l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 l등록일 : 2010.08.31. l창간일 : 2010.06.05.
미국 : 75 Quaker Ave Cornwall NY 12518 / 전화 : 1-914-374-9793 l한국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607-204 / 전화 : 010-2041-1942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