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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대 정치학박사,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아내와 네아이들과 함께 일하며 공부하며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다양한 러시아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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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루시코프 (上) 빗나간 러시아자본주의 창시자

글쓴이 : 김원일 날짜 : 2011-12-24 (토) 04:11:17

 

지난 9월 러시아 인테르팍스 뉴스통신이 실은 유리 루시코프 전 모스크바 시장과의 인터뷰가 눈길을 끌었다. 루시코프는 모스크바 시장을 무려 18년간이나 역임했으며 러시아 정가의 넘버3으로 인정받던 인물이다.

루시코프가 돌연 메드베데프 대통령에 의해 시장직에서 해임된 것은 2010년 9월. 그런 그가 해임 1년만에 크레믈린이 러시아의 모든 정치활동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며 입을 연 것이다.

메드베데프의 대통령의 지도력에 의문을 표한 뒤 해임된 루시코프 전 시장은 러시아에서는 크레믈린의 통제 때문에 정치 활동도, 사업도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러시아는 현재 어두운 시기를 겪고 있다. 정부가 모든 국가기관을 완벽히 지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러시아 국회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통합러시아당은 정부의 하수인(下手人)에 불과하다. 러시아 공산당이 크레믈린에 저항하고 있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다”면서 정치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모스크바 시장을 역임하던 18년 3개월 동안, 러시아에서는 대통령 2명, 수상 10여명이 교체됐다. 루시코프는 대통령과 총리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며 2개 정당을 설립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독단성과 강경한 독자 노선을 고집해 코르자코프와 추바이스로부터 푸틴과 메드베데프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정치인들과 모두 갈등을 겪었다. 그는 세 번이나 사퇴를 약속했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푸틴 시절 당시 그는 이미 여러 번 루시코프를 해임하겠다고 했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갖은 비리 혐의로 대중의 비판이 거세지자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모스크바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며 루시코프를 해임한 것이다.

루시코프는 모스크바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과 스캔들이 불거졌지만 오랜 시간 동안 모스크바 시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는 아직도 러시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루시코프 제국이 붕괴한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왜 크레믈린은 인내(忍耐)의 잔을 거둬 버리고 루쉬코프 시대의 종말을 고했을까? 유리 미하일로비치 루시코프는 1936년 9월 21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시장을 역임할 동안 작업복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서 자주 포즈를 취했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전공이 건축학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루시코프는 구프킨 석유가스산업대학을 졸업한 화학학 박사다. 1987년 소련공산당 모스크바시위원회 신임 제1서기 보리스 옐친에 의해 새로운 간부들이 선발됐고 루시코프는 모스크바시집행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1991년 모스크바의 초대 시장 가브리일 포포프는 루시코프에게 부시장직과 모스크바시 행정부 위원장직을 제안했다.

포포프가 갑자기 사임하게 되자 옐친은 대통령령으로 루시코프를 모스크바 시장에 임명한다. 모스크바의 권좌(權座)에 오르자 루시코프는 사회와 개인의 이익을 결합하고 돈과 권력을 루시코프 자신이라는 유일한 중심인물의 권력 아래 통합하는 새로운 모델의 러시아 자본주의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루시코프는 아나톨리 추바이스나 예고르 가이다르 같은 다른 개혁자들이 추진한 전략인 서구 자본주의 모델을 과감히 탈피해 모스크바를 또다른 ‘협동조합’으로 만들었다. 루시코프는 자신이 직접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것을 즐겼고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마치 중세의 군주처럼 도시를 다스렸다. 단언컨대 모스크바는 루시코프가 만든 국가자본주의 사회였다.

루시코프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친인사 정책을 펼쳤으며 그들은 갖은 특혜를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혹독한 통치 스타일, 부정부패 만연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시와 시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루시코프는 은행가와 기업가로부터 지속적으로 투자를 요구했다.

러시아사회여론조사센터와 ‘레바다 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유리 루시코프에 대해서 모스크바 시민들은 대부분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의 지지율은 1995년 64%였고, 1998년은 86%까지 오르기도 했다. 2001년 모스크바 시민 65%는 모스크바 시장의 시정(市政)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05년에 응답자의 54%가 그를 지지했다.

그러나 2007년은 처음으로 모스크바 주민의 절반 이하(48%)가 루시코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2009년 3월 루시코프의 시정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루시코프는 물자 부족과 문제와 급변하는 러시아 경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스크바 시민으로부터 모스크바를 견인할 새로운 주인공이 됐다.

시장이 되자 루시코프는 국가 기반 시설 마련과 러시아의 상징격인 모스크바 수도 건설이라는 야심찬 발전 계획을 차츰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루시코프 집권 시기 모스크바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깨끗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변모했다.

루시코프는 전철역을 확장하고 도시 시설을 정비했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구세주사원 재건축, 모스크바외곽순환도로와 볼샤야 레닌그라드카 도로 건설, 모스크바 비즈니스 센터, 루즈니키 운동장하면 루시코프 시장을 떠올린다.

<下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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