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1945년부터 1988년까지 전 세계에서 297건의 핵방사능 사고가 발생하였으며 사상자의 수는 15만71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 2만5733명이 허용치 이상의 핵 방사능에 피폭(被暴) 되었고 ‘사고 현장에서’ 69명이 사망했다. 핵사고 자체는 31건 이상이 발생했다. 그 사고들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사고는 원자로 폭발 사고이다.
첫 번째 사고는, 미국 아이다호 주에서 1961년 1월 3일 군사용 실험로인 SL-1 원자로에서 열용량 3MWt의 실험용 비등수 원자로 (가격이 싸고 에너지 발생 효율은 좋은데 안전효율이 떨어지는 사고에 취약한 원자로)에 제어용 측정기구를 추가적으로 설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사고로 3명의 군인이 죽었다. 두 번째 사고는 구소련 극동 차즈마 만(灣)에서 1985년 8월 9일 태평양함대 소속의 핵잠수함 K-421의 두 원자로를 활성공간으로 옮기는 도중 발생했다.
무엇보다 최악의 원자로 폭발사고는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사고이다. 지금까지도 ‘체르노빌’이라는 이 끔찍한 단어는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 있고 앞으로도 살아 있을 것이다. 이 단어는 수많은 희생의 원인이 되었던 끔찍한 참사(慘事)의 동의어가 되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는 우크라이나에 심각한 타격을 안겼다.
체르노빌은 우즈와 프리퍄티 강 사이 키예프 저수지 강변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숲의 녹음 속에 잠겨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왜냐하면 이곳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프리퍄티 강변에 도시가 세워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에도 도시를 프리퍄티라고 명명했다. 이곳은 도시 정원이었다. 아름다운 가로수들과 수많은 녹음이 도시를 유쾌한 휴양지로 만들어 놓았다.
1972년 체르노빌 바로 옆에 구소련에서 가장 강력했던 핵발전소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1985년경에 이미 4개의 원자력발전소가 건립되었고, 다섯 번째 발전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1986년 4월 26일, 밤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허용치의 실험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실험은 비극을 잉태(孕胎)하고 있었다. 원자력발전소의 모든 보호시스템이 차단되면서 발전소는 통제 불능상태에 빠져들었다. 관리자들은 상황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하였지만 이미 늦었다. 이렇게 정확히 밤 1시간 24분에 4개의 원자로에서 두 번의 폭발음이 울렸고 불타기 시작했다.
5분 뒤 소방관들이 도착했다. 아침쯤에야 그들은 불길을 잡아 화재를 진압(鎭壓)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일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네 번째 원자로가 완전히 파괴되면서 원자력발전소 영내 전체에 방사능을 발산하는 우라늄과 흑연 조각들이 흩뿌려졌다. 그런데도 주위 도시들은 이틀간이나 보통 때처럼 생활했다.
주민들에게 그 누구도 참사에 대해 경고하지 않았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였고 야외로 나갔다. 키예프에서는 자전거 경주가 개최되었다. 그 즈음 날씨가 더웠기에 많은 사람들이 교외에서 보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녹색의 풀과 나무가 그들의 적이 되었을 것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몇몇 사람들은 몇 시간 후에 사망했을 정도로 방출된 방사능의 양은 엄청났었다.
4월 28일 1100대의 버스 행렬이 프리퍄티, 체르노빌, 기타 소개 지역의 거주 지점들로부터 주민들을 실어 날랐다. 그들에게 단지 신분증과 약간의 음식만을 가져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남은 모든 재산은 버려졌다. 그래서 사고 후 처음 며칠은 모든 재산이 남겨진 아파트들과 상품이 가득 찬 상점들은 부랑아(浮浪兒)들에게 진정한 천국이었다. 경찰들은 힘겹게 재산들의 약탈을 막을 수 있었다. 체르노빌로부터 반경 30킬로 안의 삶은 마비되었고 단지 드물게 긴박감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간혹 출현했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는 복구 작업이 전속력으로 진행되었다. 원자로가 다 탄 후에 지붕으로부터 우라늄과 흑연의 모든 파편들을 제거하고 영내 전체에서 그 파편들을 수집해야만 했다. 에너지 블록의 폐허에서는 흑연이 타고 있는 동안 미량이나마 계속해서 여전히 방사능이 새어 나왔다.
백러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영토의 200,000 km2 이상이 방사능에 오염(汚染)되었다. 방사능 물질이 에어졸(연무질) 형태로 확산되어 점차로 대지 표면에 침전되었다. 방사능의 오염은 매우 불균형적이었다. 왜냐하면 사고 이후 첫 바람의 방향에 오염의 영향력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비가 내렸던 지역들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죽음의 재라고 일컬어지는 수많은 양의 스트론튬과 플루토늄이 핵발전소로부터 100킬로미터 내에 떨어졌다. 그것들은 주로 더 큰 입자들에 함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요오드와 세슘은 더 넓은 영토로 확산되었다. 기상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사고 장소에 가장 가까운 도시인 프리퍄티 주민들이 급작스런 죽음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도시가 방사능 배출물들의 착륙 기점들 간의 ‘간극’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붉은 숲’은 운이 더 없었다. 소나무 숲은 구름에 덮였었고 방사능 수치가 수 백 렌트겐에 달했기에 군인들이 모두 베어서 묻어야만 했다.
사건 발생 삼일 째에 바람이 남쪽을 향하면서 이미 눈에 띄게 ‘희석된’ 구름을 키예프로 몰고 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동․서유럽의 국가들은 높아진 방사능 수치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사고 후 처음 몇 주 동안, 주민들에 대한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상대적으로 짧은 반감기 기간(8일)을 가지는 방사능 요오드와 텔루르였다. 현재 (그리고 최근10년 동안) 가장 위험한 것은 약 30년의 반감기(半減期) 기간을 갖는 스트론튬과 세슘의 동위원소들이다. 가장 짙은 농도의 세슘-137은 토양의 표면층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는 방사능이 식물과 버섯에 침투된다는 의미이며, 그것들을 섭취하는 곤충과 동물들도 오염될 수 있음을 뜻한다. 플루토늄과 아메리슘의 방사능 동위원소들은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동안 미량(微量)이나마 대지에 남아있을 수 있다.
긴급한 정상화 조치들을 수행한 이후 원자로가 장기간 주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 파괴된 원자로를 격리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또한 파괴된 원자로의 잔해들을 주위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중요했다. 처음에는 원자로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그 내부의 온도가 5천도에 달했기 때문이다.
원자로가 다 탔을 때 우라늄과 흑연의 모든 파편들을 수집해야만 했다. 모든 작업은 수작업으로 진행되었다. 방독면과 납으로 된 작업복을 입은 해체반원들이 삽으로 긁어내고 손으로 방사능 물질들의 조각들을 모아 불타버린 원자로에 던져 넣었다. 영내를 청소한 후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서 원자로 위에 석관으로 된 콘크리트 시설물(거대한 통)에 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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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폐시설 건축 프로젝트는 보완, 변형되면서 1986년 5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수행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 18개의 계획안들이 계발되었다. 파괴된 블록 구조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이것은 가장 짧은 기간에 파괴된 블록이 주위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고, 그 해에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1호와 2호의 복구와 가동을 위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1호기 원자로는 사고 이후 10월 1일에, 2호기 원자로는 11월 5일에 가동을 시작하였다. 계획 수행 시, 조립지역에서 사람들의 수작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부품들과 결합제들을 가진 최대한 통합된 구조물들이 계발되어 원거리 조립을 실행할 수 있도록 했다. 건설은 1986년 6월부터 11월까지 계속되었다. 건설 작업은 24시간 교대로 진행되었고, 참여인원은 10,000명에 달했다.
시설물 사용 기간 이루어진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 ․ 대기 침전 ․ 온도 변화의 영향으로 인해 석관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노후를 맞아 파괴되어 갔다. 최근 구조물은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전문가들은 만약 구조물이 무너진다면 대기 중에 엄청난 양의 방사능 물질이 유입(流入)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석관 벽들 중 한 곳을 강화하는 작업 덕분에 석관이 파괴될 가능성은 낮아졌고, 수명을 15년 정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참사를 예방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불충분하다.
파괴된 원자로를 위한 새로운 엄폐물의 건설은 유럽연합과 유럽 재건과 발전 은행이 우크라이나 정부와 공동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새로운 석관의 총액은 8억7천만 유로에 달한다. 새로운 엄폐물은 역사상 가장 커다란 이동식 구조물이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 높이는 108미터 정도이고, 길이는 257미터, 넓이는 164미터이다.
원자로에 인접한 지역에서 건설 작업이 이미 시작되었다. 작업들이 종결되면 제자리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만 남게 되고, 그 구조물은 낡은 원자로를 완전히 덮게 된다.
<中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