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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지역 현재도 400만명 거주 <中>체르노빌참사 25년

글쓴이 : 김원일 날짜 : 2011-12-14 (수) 06:26:52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설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서로 다른 각도에서 사고의 원인에 접근하고 있는 두 개의 공식적 입장이며, 다른 하나는 나름의 신빙성을 갖는 여러 비공식적 이설(異說)이다.

처음에는 참사의 잘못을 일방적으로 직원들 탓으로 돌렸다. 참사원인을 밝히기 위해 구소련에서 조직된 국가위원회, 재판소, 그리고 독자적 연구를 진행했던 구소련 KGB가 모두 이런 입장을 취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1986년 보고서에서 이 관점을 대체로 수용했다. 구소련 및 현재 러시아 대중매체들 역시 최근까지도 바로 이런 논리에 기반하여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게오르기 메드베데프의 유명한 노작(勞作) <체르노빌 노트>를 비롯한, 여러 다큐멘터리들도 참사의 원인을 직원에서 찾는 입장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기타 여러 전문기관에서 사고의 원인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진행되었다.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의 자문기구인 국제원자력안전그룹(INSAG)는 원자로 구조물 상의 심각한 결함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새로운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는 1986년에 내렸던 수많은 결론들을 불확실하다고 평가하였다.

 


현재 사고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원자로가 잘못 설계되었다. 이에 따라 원자로 자체가 많은 위험요소를 품고 있었다.

# 직원들은 위험성에 대해 정보를 제공 받지 못했다.

# 안전수칙을 위반하는 등 직원들은 여러 실수를 저질렀다. 이는 부분적으로 원자로의 위험성들에 대한 정보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 방어시설의 차단은 사고 전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따라서 피해의 확산을 방어시설 차단에서 찾는 논리는 문제가 있다.

구소련에서 진행된 처음 조사는 직원들이 수칙(守則)을 빈번하게 위반했다고 확신했다. 직원들이 몇몇 원자로 보호시스템을 차단했다는 점, 동력이 30MWt까지 하락한 이후에도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는 점, 반응작업 예비량이 허용치보다 적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원자로를 중단시키지 않았다는 사실 등이 대표적인 직원과실로 지적되었다. 이들 행동은 규정수칙과 조치를 위반한 것이며, 사고의 주원인으로 발표되었다.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의 보고서는 이런 결론을 재검토하였다. 이전에 위반으로 간주되었던 직원들의 행동 대부분이 실제로는 그 당시 규정에 부합하거나, 사고 전개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제 핵심사항으로 부각되는 것은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위반행위를 저질렀는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안전불감증 문화’에 젖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 개념을 체르노빌 사태 이후에서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난을 받아야하는 대상에 직원들뿐만 아니라 원자로의 설계자들과 원자력발전소 지도부 등도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보고서에서 주안점이 바뀌고, 사고의 주원인으로 원자로의 결함(缺陷)이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문가들은 직원의 미숙함 ․ 원자로의 특성에 대한 직원의 잘못된 이해 ․ 경솔한 행동 등이 사고로 이끈 중요한 요인들이었다고 간주한다.

몇몇 연구자들은 당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는 집단이기주의라든가 정당한 비판을 행정적 수단을 통해 무마하려는 행정편의주의 등이 만연해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던 여기자 L. 코발레프스카야의 글을 인용해보자.

“세상에, 사람들이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얼마나 양심적으로 일하며, 이곳에서는 도덕적 욕구가 얼마나 강하던지. 마치 당신이 다른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러 온 것 같아. 출세욕, 자리를 위한, 직위를 위한 투쟁.”

“노동자들에게는 양심적인 노동과 열정주의를 호소하면서... 자신들은 호텔에서 체코 변기들을 뜯어간다...”

“모두가 친구고 아는 사람들이다. 만약 한 사람을 비난하면 자초지종은 따져보지도 않고 모두가 당장에 그를 변호하려고 달려든다.”

사고의 또 다른 이유로, 허용치 물소비량의 초과를 불러온 순환펌프 고장이나 대직경 도관의 파열 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설’일뿐, 폭넓게 확산되지는 못했다.

 

체르노빌의 희생자들...

전문가들은 예전처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폭발이 얼마나 많은 사상자들을 남길지 정확하게 단정하지 못한다. 체르노빌 참사는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수백만 명에게 영향을 주었다. 수십 명이 사건 발발 30일 내에 사망했고, 수백 명, 또는 수천 명이 그 이후 몇 년에 걸쳐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사상자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지금까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조사기관이나 통계관청의 계산이 때로 지나치게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주목을 끄는 것은 희생자 수에 관한 자료들이다. 이들 자료가 제시한 통계수치는 제각각이다. 이것은 오염지역의 방사성물질을 정화(淨化)하는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후 체르노빌 참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자연사를 포함한 여러 이유로 사망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위험성이 숨어있다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방사능과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의 신체 사이에 영향관계를 밝히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방사능의 특성이다.

구소련 시대 연구자들은, 폭발 순간과 이후 몇 시간 동안, 체르노빌 발전소에는 제반 시설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기술직원과 소방경비대원을 포함하여 237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들 모두는 상당양의 방사능을 피폭 당하는데, 134명은 그 정도가 심각했다. 사고 이후 처음 3개월 동안에 28명이 사망했고, 이후 10년 동안 14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여기에 폭발 당시 제 4블록에 있던 3명(그들 중 한 명은 심장부전으로 사망하였다)을 사망자 명단에 추가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45명이란 숫자가 나온다. 그들의 죽음은 참사의 결과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2000년 유엔 방사능영향과학위원회가 배포한 자체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 수는 50명이다. 하지만 그 숫자 역시 대략적이다.

2005년 9월 국제원자력기구와 세계보건기구, 그리고 유엔 대표자들이 공동으로 발의하여 체르노빌 참사의 규모에 관한 포럼을 개최하였다. 여기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처리반원들 중 50명이 심각한 방사선병으로 사망하였고, 이후 9명이 갑상선암으로 죽음을 맞았다. 이들을 합하면 사망자 수는 59명에 달한다.

또한 여러 국제기구는 자체 연구조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방사능 노출로 인한 사망자 수를 3940명로 추산했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직원, 사고 이후 처리반원들, 오염지역 내 주민들, 그리고 소개된 사람들이 위험자 명단에 포함됐다. 사망자 수는 암이나 백혈병과 같이 방사능이 직접 사인(死因)이 되는 경우에, 피폭량의 정도에 따른 위험치를 통계학적으로 예상한 수치를 더하여 산출되었다.

 

폭발원자로 처리반원들의 숫자 역시 정확한 추정이 불가능하다. 참사 직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로 군인들과 예비군들이 급파(急派)되기 시작했다. 이후 지원자들도 오염정화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1986년~1987년, 파괴된 원자로 및 주변 지역의 방사능물질 오염제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수는 20만명에서 80만명까지 유동적이다. 유엔 소속 전문가들은 정식 처리반원들의 숫자는 22만7000명이고, 여기에 위험지역으로부터 소개된 이주민들이 지원자로 참여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백러시아, 우크라이나의 공식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6년 한 해 동안만 하더라도 20만명(러시아 처리반원 등록명부에 기재된 수는 18만7415명이며, 다른 자료에 따르면 17만9000명이다)이 처리반원으로 활동했다.

우크라이나 보건성은 1994년까지 방사능의 영향으로 12만4000명이 사망했다고 추산한다. 2003년 동안에만도 532명의 우크라이나 처리반원들이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여파로 사망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60만명 이상이 다량의 방사능 피폭을 당했다(다른 자료에 따르면 58만6000명). 처리반원들 외에도, 프리퍄티시(市)와 그 외곽 지역 ․ 지토미르 ․ 체르니고프 ․ 키예프州 등 사고지점 30킬로미터 내의 소개 지역에 거주했던 이주민 11만6000명(이주민 수는 11만5000명에서 13만5000명까지 유동적인데, 이는 오염지역에서 몇 단계에 걸쳐 주민들을 소개한 것과 관련된다)과 가장 심하게 방사능에 오염된 지역의 거주민들 27만명을 합한 수치이다.

 


▲ 이상 사진 www.moskvanews.co.kr

국제원자력기구는 1996년 현재 ‘금지구역’이 확대되고 있으며, 규모는 4300제곱m에 달한다고 밝혔다. 2003년 <이즈베스티야>의 보도에 따르면, 거주위험지역은 2540제곱m이며, 65개 마을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체르노빌 지역에는 23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방사능 통제지역에도 16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오염된’ 지역에서 약 400만 명이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이주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노인들은 자신의 터전을 지키며 선조들 곁에 묻히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들은 단지 갈 곳이 없다. 여권을 대신한, 체르노빌 출신증명서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아니면 제한하고 있다.

스스로 체르노빌을 선택한 정착민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왜냐하면 소련해체 이후 곳곳에서 직면해야 했던 가난과 굶주림보다 백러시아의 ‘보이지 않는’ 방사능 위협을 선택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下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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