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전,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에 보다 적극적인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신 북방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유라시아이니셔티브”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하여 기존 이명박 정부에서 난맥상(亂脈相)을 보이곤 했던 남북관계와 한러관계에 대해서 적지 않은 우려를 갖고 있던 러시아의 한국관계자들에게 큰 기대를 심어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상하지 못하였던 우크라이나사태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미국과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정치경제적 제재국면이 펼쳐지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미국 서방의 갈등은 아시아 동쪽 끝 한반도에까지 크고 작은 부정적인 영향들을 끼쳐오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국제정세 속에서도 우리 한국정부는 그 동안 매우 현명하게 상황에 대처해 오고 있었다. 러시아와 미국서방의 대립국면에서도 최대한 국익을 손상(損傷)시키지 않으면서 동북아의 중견국가로서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해 나가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는 공식 비공식적으로 자주 한국측에 우크라이나사태 이후에 미국과 서방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한국이 참가하고 있지 않은 점에 대해서 고마워하는 마음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각계각층 인사들은 요 근래 지속적으로 이번 승전기념행사에 한국 대통령이 참가하는 대해서도 큰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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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행사참석 필요성과 이것이 가질 수 있는 의미에 대해서 크고 작은 논란들이 계속해서 일고 있다.
이 논란들을 보면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대비된다. 행사참석에 대해서 찬성하는 쪽은 국제질서와 동북아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실체로서 러시아를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반도에서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날로 커가는 러시아와 중국 등 대륙세력과의 관계강화가 한민족의 통일과 유라시아대륙 진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행사참석을 거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는 사람들은 미국 서방에 의해 국제질서의 교란자(攪亂者)로 낙인(烙印) 찍힌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한국도 어떻던지 간접적으로라도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세계체제의 중심국가인 전통적이고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의 한국대통령의 행사참석에 부정적인 입장을 먼저 고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하다 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한반도 주변 4대 주요국가와의 균형 잡힌 외교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제이다. 그래서 박근혜대통령도 미국과의 전통적인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유라시아진출을 새로운 국가과제로 설정하고 유라시아이니셔티브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하였을 것이다. 미국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며 한국의 전통적인 우방국가이다. 하지만 오랜 친구와의 좋은 관계에 못지않게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한. 러 관계는 1990년 수교 이후 꾸준히 정치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어 왔다. 양국의 교역량은 약 240억달러에 이르고 있고 작년에는 양국의 인적교류 활성화를 위하여 역사적인 단기사증비자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양국정부는 2014년과 2015년 두 해를 양국국민들의 상호방문의 해로 선포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순항을 거듭해 가던 한러 간의 상호신뢰와 우호관계가 우크라이나사태로 시작된 미국 서방의 제재국면이라는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동으로 양국관계에 모두 본의가 아니게 큰 어려움들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한러관계는 한국대통령의 모스크바 전승기념행사 참석여부 결정이라는 암초(暗礁)를 만나게 되었다.
러시아는 올해에 70주년을 맞이하는 이번 행사를 2차 대전 참전용사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 마지막으로 개최되는 대규모 국제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역사가들이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바와같이 독소전쟁에서의 소련의 승리가 없었다면 2차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는 것을 기약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2차 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가 없었다면 한반도의 해방도 역시 있을 수가 없었다. 이 뿐만 아니라 당시 소련군은 한반도의 해방을 위해서 한반도 내에서 일본군과 직접 전투를 치루었고 결코 적지 않은 희생(犧牲)을 내기도 하였다.
러시아는 이번 기념행사에 가급적으로 세계각국에서 많은 정상들이 참석해 주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다양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한반도의 남북정상도 초청한 것이다. 하지만 남북한 정상은 둘 다 아직도 행사 참석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만약에 남북의 정상이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모스크바에서 잠시라도 만남을 가질 수 있다면 이 또한 결코 작지만은 않은 남북관계 개선의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5월 9일 기념행사 때까지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미 러시아에 행사 참석여부에 대해서 통보해 오고 있다. 한국이 아직도 러시아 측에 행사참석여부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고 여전히 좌고우면(左顧右眄) 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은 러시아와 국제사회에서 보더라도 그리 좋아 보이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러시아는 대국이다. 그들이 대통령의 행사참석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서 한국이 가질 수 있는 어려운 입장을 모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동맹국 미국도 우리나라의 이러한 난처한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에서 행사참석이 필요하다는 정책적 입장을 가지면 러시아에 참석을 통보하고 미국에게 양해를 구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행사참석이 여러 가지 여건상 어렵다는 판단이 서면 부득이한 사정을 러시아에 미리 알리고 마찬가지로 양해를 구하면 될 것이다. 필자는 한국이 대통령의 행사참석에 대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던지 한국과 이미 깊은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러시아와 미국 정도되는 강대국이 그것을 이해하고 양해해 주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항상 주변의 한국 분 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 “러시아가 역사상 이른바 선진국이었던 적이 있었는가에 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역사상 강대국이 아니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그렇다”라는 점이다. 러시아는 과거에 그랬듯이 현재에도 한반도를 포함하는 동북아와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발언권과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필자가 그 동안 모스크바에 살면서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러시아인 들도 한국인과 같이 정서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만일에 박근혜대통령이 행사참석에 따를 수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무릅쓰고, 러시아가 중요하게 기념하는 이번 행사에 참석한다면 지금 미국과 서방의 제재로 고립감(孤立感)을 크게 느끼고 있는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러시아국민들은 가슴 뜨겁게 환대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인들 모두는 한국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매우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듯이 대통령의 기념행사 참석은 현재와 미래의 한 러 관계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안녕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으로 필자는 믿는다. 그리고 더불어서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거주하고 생활하면서도 최근 5년이 넘도록 한국대통령의 방문을 맞이 해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스크바한인사회와 고려인사회에서도 박근혜대통령의 모스크바방문은 크게 기대되는 이벤트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