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하면 보드카를 떠올린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추위를 견디려 40도 도수의 보드카를 들이킨다. 러시아를 바라보는 이방인(異邦人)들의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모습이다. 타인을 의식하는 한국인들이 모스크바에 오면 만나는 낯선 풍경이 있다.
손에 맥주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러시아인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손에 갓난아이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 담배를 피는 러시아 여성들을 보노라면, 이국의 풍경이 결코 상쾌하지만은 않다. 이런 러시아가 음주 및 흡연과의 전쟁을 시작한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이 세계 4위인 러시아가 또다시 음주 및 흡연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올해부터 '음료수'로 분류되던 맥주를 주류로 규정하는 새 법이 발효(發效)된 것이다. 새 법에 따르면 앞으로 면적 50㎡ 이상인 음식점·카페·상점 등에서만 맥주를 살 수 있게 된다.
일반 상점에선 오후 11시부터 오전 8시 사이에는 아예 맥주를 살 수 없고, 해변·공원·운동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도 금지된다. 그동안 러시아인들은 '키오스크'라는 길거리 간이 매점에서 맥주를 많이 사 마셨지만 앞으로는 이처럼 거리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앞서 2011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현 총리)은 음주를 러시아의 '국가적 재앙'으로 규정하며 지나친 음주를 규제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지난해 맥주에 부과하는 세금을 20% 인상한 데 이어 올해와 내년에도 각각 25%, 20%씩 인상하기로 했고 인터넷을 포함한 언론 매체를 통한 주류 광고를 전면 금지했다. 올해부터 보드카 가격도 전보다 36% 오른 0.5L(리터)당 170루블(약 6000원)로 인상됐다.
러시아가 술과의 전쟁은 언제부터일까. 짜르 정부가 무너지고 공산주의 혁명을 가져 온 블라디미르 레닌. 그는 술이야말로 공산주의에 병적 존재라며 보드카를 사적으로 만들면 중벌에 처하는 법령을 발효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밀주(密酒)의 생산 유통이 성행하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1990년대 개혁 개방 정책을 시행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도 대대적인 금주 운동을 펼쳤지만 실패로 끝났다. 이후 러시아에선 술을 어디서나 살 수 있게 됐다.
술 소비가 늘면서 평균 수명 단축과 함께 아동학대, 가정해체 등 각종 사회문제도 대두하고 있다. 술 좋아하는 러시아 사회의 어두운 면이다.
문제는 기호식품인 음주와 흡연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시간과 장소를 통제하는 법률 제정과 인간의 욕구를 통제하는 전근대적인 방식이라는데 있다. 이런 국가 통제가 당장에는 수치상의 변화를 불러 올수는 있지만 음주 및 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고 러시아 국민들의 건강 증진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장기적인 복안을 가지고 복지 시스템을 순차적으로 갖춰나가는 한편 청소년기 시절부터 지나친 음주와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는 교육을 실시하는 정책을 추진해나가는 것이 보다 현명한 대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