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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락의 한반도중립화
박정희 유신독재가 노골화한 70년대초 도시산업선교활동을 하며 반독재 반유신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투옥돼 고초를 겪었다. 도미후에도 민초들을 위한 목회의 길을 걸으며 밝은한인사회캠페인과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한반도중립화통일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뉴욕흥사단 회장 역임, 한반도중립화통일운동본부 상임대표. 2012년 CMP 선정 올해의 아시안자원봉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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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밀양아리랑’

글쓴이 : 김경락 날짜 : 2013-02-19 (화) 12:59:39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듯이 날 좀 보소

※ 후렴 -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영남루 명승을 찾아가니 아랑의 애화가 전해 있네

밀양의 아랑각은 아랑넋을 위로코 진주의 의암은 논개충절 빛내네

저 건너 대 숲은 의의한데 아랑의 설운 넋이 애달프다

아랑의 굳은 절개 죽음으로 씻었고 고결한 높은 지조 천추에 빛난다 "

 


www.ko.wikipedia.org

 

도산 안창호 선생이 17세 때 청일전쟁(1894-95)이 일어났다. 평양에서 일본군과 청국이 전쟁하는 것을 보고 그는 의아한 생각을 가졌다. 일본과 청국이 싸우면 싸웠지 왜 한국 땅에 와서 싸우는가? 여기서 얻은 결론은, “그것은 우리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다. 타국이 마음대로 우리 강토에 들어와서 싸움을 벌이는 것은 우리나라가 힘이 없는 까닭이다. 힘이 없고 이름만 있는 한국, 그렇다 힘이다. 힘을 기르자. 먼저 힘을 기르자.” 도산사상은 힘을 기르는 사상이다.

 

민족의 스승 도산 안창호는 어라한 확고부동한 민족 경륜의 사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독립과 번영 그리고 구국이론과 방법이 뚜렷했다. 그 실천적 방법이 민족의 힘 기르기 전략으로 1913년 5월 13일 San Francisco에서의 Young Korean Academy(후에 흥사단) 조직이었다. 그는 감전적 흥분에 휩싸이지 않고 구국의 이론과 방법을 연구하여 독립운동의 길을 열었다.

 

그의 요지부동한 구국사상과 확고한 신념은 당시 실망에 빠진 동지들에게 언제나 밝은 희망을 주었고, 방향을 상실한 국민들에게 명확한 미래를 제시해 주었다-힘을 길러 외국인들에 우리 땅에서 싸움질 하지 못하게하는 힘있는 민족으로 양성하는것이 민족이 이룩할 급선무로 믿었다.

 

1937년 흥사단 자매기관인 동우회(同友會) 사건으로 재판장에 섰을 때 검사가 “민족운동을 그만 둘 생각이 없는가?” 질문할 때 도산은 “나는 평생에 밥을 먹는 것도 민족을 위해서요, 잠을 자는 것도 민족을 위해서다. 내가 숨을 쉬는 한 민족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라고 답변했다.

 

안창호는 서로 사랑하는 민족이 되자고 강조한다.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차오? 훈훈한 기운이 없소?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 겠소.” “미약하나마 동포끼리만은 무저항주의를 쓰자. 때리면 맞고 욕하면 먹자. 동포끼리만은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고 오직 사랑하자.” “서로 사랑하면 살고, 서로 싸우면 죽는다.” “세상에 마음 놓고 믿는 동지가 있다는 것처럼 행복한 것이 또 어디 있으리요.

 

민족의 노래가 된 아리랑. 나라를 잃은 한민족이 애환을 가장 많이 실어 부른 노래인 아리랑은 민중의 한 맺힌 본 마음을 대변한다. 아리랑의 어원은 알영, 아랑, 아리랑(我離郞)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정확한 의미는 우주를 한알로 보고 (한얼), 모든 생명체를 그 씨알로 보아 사람도 알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랑은 알이랑(한알과 더불어), 아라리요는 알알이요(각자가 씨알)의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구성진 곡조의 '밀양 아리랑'은 우리나라 4대 아리랑 중 하나로 빠른 리듬으로 내어 지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www.ko.wikipedia.org

 

문필가 청오(靑吾) 차상찬(1887~1946)은 잡지 '별건곤(別乾坤)' 1928년 8월호 '밀양의 7대 명물, 구슬픈 밀양 아리랑'에서 "어느 지방이든지 아리랑 타령이 없는 곳이 없지만 이 밀양의 아리랑 타령은 특별히 정조가 구슬프고 남국의 정조를 잘 나타낸 것으로 지금은 전국에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고 소개했다.

 

1926년 음반으로 발매된 당시에도 전국적으로 불리던 '밀양 아리랑'은 해외 독립운동 진영에서는 항일민족 운동가인 '역사의 노래'로 불렸다. 1926년 9월29일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이 개봉되기 하루 전 전단 1만매가 압수당했다. 개봉도 되기 전에 주제가의 한 절인 '문전의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동량의 쪽박이 왠일이냐'가 불온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대중적인 밀양아리랑은 저항성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사용됐고 중국이나 일본의 동포사회에서 민족해방운동과 함께 했다.

 

이러한 항일성에 동화돼 밀양아리랑은 곡조의 경쾌함보다 저항성에 더 직접적인 방점을 찍게 된다. 1930년대 중국과 러시아령 지역에서 불린 '독립군 아리랑'과 1941년 임시정부 광복군 군가 '광복군 아리랑', 한유한 작 가극 '아리랑' 등이 대표적이다. '독립군 아리랑'은 영천 아리랑과 밀양아리랑 곡조로 각각 불려졌다. 전자는 1920년대말 조국을 떠나는 이들이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1950년대 6.25동란 때 미군은 인민군과 중공군을 구별하기 위해 아리랑을 활용했고, 중공군은 국군과 인민군의 구분을 위해 밀양아리랑 곡조의 '파르티잔 유격대 아리랑'을 불렸다. 또 1960~ 70년대 반전문화 속에서 영어권 지역은 아리랑을 반전음악으로 활용하기도 하는 등 밀양아리랑은 세계 속에서 불려졌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현장에서는 '신 밀양 아리랑'과 '통일 아리랑' 등으로 연주됐다. 노동가로도 기능했는데 '노가바', 즉 노래 가사 바꿔부르기의 선두가 되었다. 2행 1련의 두 줄 후렴 형식에 행진곡풍의 곡조가 노가바의 전형이 되게 했다. 이처럼 시대적 상황과 함께 세계적으로 불려졌던 다양한 버전의 밀양아리랑이 처음으로 신나라레코드를 통해 음반 '영남 명물 밀양 아리랑'으로 나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백두산 덜미에 해 저물어간다.

 

아리랑이 보여주는 그 놀라운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가 모르고 있는 또 다른 의미는 없을까?

 

기쁠 때 부르면 굉장한 신명으로 모두를 하나 되게 하는 축가가 되는가 하면, 슬플 때 부르면 그 어떤 노래보다 더 스산하고 비장한 노래인 아리랑!

 

또 다시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의 그 놀라운 민족적 응집력- 그 진정한 힘의 원류인 아리랑! 그러면서도 상상 하기도 힘든 고통을 이기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아리랑!

 

혹, 이 민족을 지키는 신께서, -민족의 꿈과 희망을-그 암묵적 계시를 아리랑에 담은 것은 아닐까?

 

눈을 고요히 감으면, 우리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겪었던, 그 척박하고도 징그러운 환경-그 곤한 삶의 질곡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을 더 놓고 싶었던 삶의 끈을, 끝내 놓지 못하게 한 보이지 않는 힘이 ‘아리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오. 에서 "고개"의 의미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잘 쓰는 "이번이 고비"라는 말은 '위기'라는 말과 함께 쓰이는데, 위기라는 말은 의학용어로 '중대한 시점'이라는 말로, 그 고비만 넘기면 한 숨을 놓아도 된다는 뜻이다.

 

"아리랑"에서의 "고개"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이 고개만 넘으면, 이 순간만 참으면 그 다음 부터는 편안한 내리막 길이다"라며 희망을 갖고 참으로 견디기 힘든 순간순간들을 견디게 하는 정신적 버팀목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초월적 힘을 갖고 있는 신령스런 부적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흔히들 우리의 국민성을 모래알 같다고 한다. 모래 그 낱 알갱이처럼 결코, 쉬 뭉쳐지지 않는, 강한 개성과 뛰어난 자질들을 갖고 있는 한민족!! 너무 출중한 능력들이 있어서가 문제인 민족!! 그래서 그 만큼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조정하기가 힘든 민족!! 그런 복잡한 문제를 한 순간에 없애고, 한 순간에 하나 되게 하는 마법과 같은 노래 아리랑!! 그 놀라운 힘의 원천인 아리랑!!

 

중국과 일본의 노골적인 역사 왜곡과 주권침탈에 의연히 맞서기 위해서라도, 아리랑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잠자는 민족혼을 일깨우자.

 

아! 아리랑~ 홀연히 일어나는 바람일까? 정녕코 만질 수도 볼 수 없는 바람인가? 가슴 뜨겁게 흔들어 놓고 지나가는- 민중의 응집력 아리랑! 아리랑은 통일행진곡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31:01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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