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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락의 한반도중립화
박정희 유신독재가 노골화한 70년대초 도시산업선교활동을 하며 반독재 반유신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투옥돼 고초를 겪었다. 도미후에도 민초들을 위한 목회의 길을 걸으며 밝은한인사회캠페인과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한반도중립화통일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뉴욕흥사단 회장 역임, 한반도중립화통일운동본부 상임대표. 2012년 CMP 선정 올해의 아시안자원봉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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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의 비밀격문에서 밝힌 혁명사상 <下>

글쓴이 : 김경락 날짜 : 2015-07-16 (목) 11:31:23

 

흥사단 창립의 목적은 도산 선생의 말씀에 의하여 192928일 도산 선생이 미주에 있는 흥사단 단우들에게 보낸 비밀격문(지령)에 이미 분명히 제시했다. 이 비밀 지령은 주요한 단우와 김윤경 단우를 비롯하여 당시 수뇌급 단우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김윤경 단우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도산 선생의 격문이 동우회 사건의 주요 증거품 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격문 때문에 도산 선생께서 1935년 대전 감옥에서 가출옥 된지 28개월 만에 재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200 여명의 흥사단 단우들 도 함께 구속되어 49명이 기소되고 57명이 기소유예, 75명이 기소중지로 석방되었지만, 도산은 일제의 혹독한 심문과 탄압으로 인해 얻은 중병으로 1938310일에 경성 제국대학 병원에서 옥사(獄死)를 하셨다.

그런데 도산이 19383월 별세한 후에 이 비밀 지령의 격문 전문은 2006년 초반까지 은폐 된 채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이창걸 교수의 논문에 처음 인용하면서 세상에 공개되었다.흥사단을 창립 한 이유는, “흥사단은 우리 민족 전도 대업의 기초를 준비함이 목적이 있다. 즉 민족의 구국 광복 하는 혁명의 대업이다. 모두가 (구국 광복하는) 혁명을 중심으로 한 투사의 인격을 훈련 하고 혁명 투사의 결합을 위해 성립한 단체이다

 

비밀 격문의 중반에 도산 선생의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나는 흥사단은 (구국 광복하는) 혁명을 중심으로 하는 훈련단체가 되고,혁명당(대독립당-구익균 원로단우(104)가 재창당한)은 별도로 조직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 흥사단은 평범한 수양을 위한 수양단체로 흘러 서는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국 광복하는) 혁명을 중심으로 한 투사의 인격을 훈련 하는 훈련기관임을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상기 격문에 도산 선생이 주장했듯이 흥사단은 민족의 구국광복 하는 혁명의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 투사의 인격을 훈련하고 혁명투사의 결합을 위해 성립한 단체임이 분명하다. 그 당시 수양 동맹회”, “동우구락부”. “수양동우회처럼 수양이라는 용어는 구국광복하려는 의지를 숨기기 위함이며, “민족 전도 대업민족의 신흥역량을 증장케 함이라는 단어도 이러한 맥락에서 그 본뜻을 위장하여 국내외에서도 일본의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하려는 도산선생의 원대한 뜻임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립협회 초기멤버오른쪽맨끝 안창호.jpg
공립협회 초기멤버 오른쪽끝이 안창호선생

 

이처럼 흥사단 청립의 목적이 민족 구국의 혁명투사의 인격을 훈련하고 혁명투사의 결합을 위한 훈련기관임 도산 선생께서 밝혔다. 이에 대한 증거로는 도산 선생의 독립운동 방략도에서 그 단초를 확인할 수 있다.

1910년경 미국에서 도산 선생의 자필로 기록된 독립운동 방략도에서 제시된 내용인, ‘기초단계 (단결, 정신력), 진행준비 단계(학업단, 실업단), 완전준비 단계(인재, 재정), 진행결과(신정체조직, 독립전쟁), 완전결과(조국증진, 조국광복)’를 검토해보면 도산 선생의 독립운동은 흥사단을 창립 하기 이전부터 민족의 독립과 새로운 민주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수립했음을 알 수 있다. 즉 도산 선생은 이 독립운동 방략대로 한 치의 오차없이 30년간을 추진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이 다른 독립운동가와 다른 점인 것이다.

 


1915_peoples_association_annual_convention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R11이승만 가운데단상 안창호.jpg
1915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2) 도산 안창호의 혁명사상 왜곡과 흥사단 운동의 변질

불행하게도 흥사단의 역사를 살펴보면, 도산 선생의 후예들은 선생께서 창립한 흥사단의 목적과 도산의 혁명사상을 단우마다 다르게 인식하였든가 아니면 시대적 상황에 따라 자신들의 기득권과 생존을 위해 교묘하게 이용하여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도산의 제자들은 자신의 출세와 생존을 위해 도산 선생의 혁명사상과 유지(遺志)를 축소하든가 철저하게 왜곡시켰다.

그 사례를 제시하면, 첫째 1938년 도산 선생께서 별세한 이후, 19292월 보낸 비밀 격문 전문 을 은폐했다는 사실, 둘째 19225월에 발표한 춘원 이광수의 사이비 민족개조론’, 셋째 1938818일 친일파 단체인대동민우회에 입회를 선언한 성명서에 가입한 13명의 단우를 제명 및 출단한 사건, 넷째 1947105일 약법수정 사건(6: ‘흥사단은 정치적 활동에 관여치 아니함조항 삽입함), 다섯째 1948621정치행동에 관한 성명서발표, 여섯째 1945년 이후 친일행위를 한 단우(이광수, 주요한 등)에 대한 단죄를 철저하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도산 선생의 전기를 집필하게 한 행위, 일곱째 19679월 흥사단 모태인 서울시 명동 소재 대성 빌딩 매각과 용인공원 사업실패 고소 사건, 여덟째 1980년대 후반 흥사단 아카데미 활동의 중단 사태, 아홉째 200812월 약법 개정시 도산의 대공주의 사상삭제사건(당시 이사장 박인주, 약법 특위위원장 강용찬) 등이다.

김윤경 단우는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도산 선생의 격문이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으며, 이를 동우 회 사건의 증거로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흥사단 50년사'에서 '동우회수난기'를 집필 하면서 '도산 선생의 격문' 전문을 누락했고, 193810월에 발행된 '흥사단보'에는 '도산선생 유훈'으로 변조된 내용으로 12항목의 '유훈의 계명(戒銘)'으로만 소개되어 있다. 주요한 단우 의 '안도산전서'에도 '도산 선생의 격문' 전문이 누락되었으며, 이광수의 '도산 안창호'에서는 도산 선생을 중국의 관상가의 말을 인용해서 인정이 너무 많아 훌륭한 혁명가가 될 수 없다는 식으로 비하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광수의 저작인 '도산 안창호'1990년대 까지 전 국민에게 판매하였으며, 또 이를 영문판으로 번역하여 흥사단본부 이름으로 발행(2004, 이사장 김소선 )했다는 점이다.

주요한은 1925년 대학을 마치고 중국에서 귀국했으며, 19267월경 도산 선생과 흥사단 개조 문제로 상해에서 직접 논의를 한 단우 중의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도산 선생의 격문' 전문을 '안도산 전서''흥사단 50년사'에 고의적으로 누락시켰으며, 이 격문의 내용을 도산 선생의 기본적 민족성 훈련혁명투사 양성 기관과의 사이에 확연한 분간을 내리지 못했다고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1947105일에 개정된 약법 내용의 핵심은 흥사단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제6조 조항을 삽입한 것이다. 이 약법개정은 장이욱 국내위원부 위원장의 주도로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1946929일 제1차 국내 대회 마치고 발표한 '행동강령''동포에 고함'에 이미 흥사단의 정치참여 불가함을 고수하자는 취지로 선포되었으며, 19472월에 국내위원부 위원장 장이욱 이름으로 흥사단 의사부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 청원서 두 번째 안건이 약법수정 초안의 건이었다.

당시 장이욱 단우는 국립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학장(19468~ 1948)이었으며, 19485월에는 서울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1948621'정치행동에 관한 성명서'가 국내위원부 이름으로 발표된다. 이 시점에 장이욱 단우는 서울대학교 총장직에 있었으며, 흥사단 의사부장이었다. 바로 이승만 정권이 집권한 이후 사임강요를 받고 동년 11월에 총장직을 사퇴하였다. 이 때 흥사단 국내위원부는 위원장 김윤경(1946), 장이욱(1947), 의사부장 장이욱(1948), 이사부장(이용설), 심사부장(이강)이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장이욱 단우는 1947년 서울대 사범 대 학장에 재직하면서 흥사단의 책임을 맡은 위원장이었다. 주요한 단우도 국내위원부 위원이었으며, 1949년도와 1953년도에 이사원을 역임하고, 1954, 1957년과 1964년 이사부 부장을 맡아 사실상 상기의 두 단우가 흥사단을 자신의 이념에 맞도록 주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상기와 같은 흥사단의 약사를 살펴보면, 대표적으로 장이욱과 주요한 두 단우 중심의 편협한 흥사단 인식과 개인적인 잘못된 판단에 의해 흥사단의 미래는 도산 선생의 유훈과는 반대방향 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미군정기간 동안 장차관급의 고위관직에 재직한 20여 명의 흥사단 단우들, 이승만 정권에서 고위관직에 재직했던 20여 명의 단우들 자체에서도 흥사단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들의 대부분이 도산이 직접 키운 제자들이었으며 광복 후 흥사단을 주도했던 간부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도산 선생께서 제시했던 민족 구국의 흥사단의 미래상이 해방 후 도산의 제자들에게 와서는 소시민적 안일과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집착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오욕(汚辱)의 흥사단사에 대해 철저한 자성(自省)과 역사인식 의 대전환이 전체 단우들에게도 시급히 요구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흥사단이 정치에 중립을 지킨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양심적인 개인별 단우들에게는 정치훈련으로서의 정치교육을 적극 실시한다. 1946926일 발표한 '행동 강령'은 이율배반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고관대작(高官大爵)을 역임했던 선배 단우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쉽게 유지하려고 의도적으로 약법수정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도산 선생의 민족의 독립과 복지사회건설에 대한 원대한 꿈을 하루아침에 포기하고 흥사단의 위상을 스스로 위축시킨 결과를 초래하였다. '행동강령'에 제시했던 개별 단우에게 정치인의 소질배양과 대중적 정치적 책임완수의 자격연마는 무실정신에 어긋나는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아울러 진정한 민주주의적 정치훈련도 단우들에게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

흥사단 단우 중에서 친일을 한 단우들(이광수주요한)을 철저하게 격리하고 단죄를 하지 못한 채 흥사단 활동을 하다보니 도산 선생의 명예와 흥사단에 엄청난 폐해를 끼치고 말았다. 특히 해방 후 이광수의 지속적인 흥사단 활동과 도산 선생의 전기인 '도산 안창호' 집필은 모든 국민들에게 도산 선생을 훌륭한 인격자요 민족계몽운동가, 교육자로만 인식하게 만들었고, 그 후에 나온 신일철의 논문(思想界, 19623월호)에서 도산 선생을 정치가도 혁명가도 아니며 민족 교화에 의한 범국민운동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함으로써 도산 선생을 한갓 교육자 민족 계몽운동가로 철저하게 비하하고 말았다. 또한 주요한 단우도 위와 같은 동일한 맥락 으로 '안도산 전서''흥사단 50년사'에서 도산 선생의 혁명사상을 누락, 혹은 잘못 기술 했다.

1997년에 최희송 단우 주도로 추진된 대성빌딩 매각사건과 용인공원 사업실패는 흥사단 단우들 자신이 스스로 대공복무의 정신을 망각하고 역사에 죄를 지은 셈이 되었다. 미래지향적이며 장기적인 시각으로 흥사단 발전상을 구상해야 할 주요 간부 단우들의 잘못된 판단과 공의회의 의결은 흥사단의 비약적인 도약의 기회를 깡그리 날려 보내는 셈이 되어 버렸다. 그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 것인가?

 

1980년대 후반에 발생한 흥사단 아카데미 활동의 중단사태는 흥사단을 이끌었던 임원진들이 스스로 흥사단의 목적의식을 망각하고 자신의 신변과 안일만 추구하다가 군사정권의 무력에 항복한 셈이 되었다. 흥사단이 민족사에 기여할 수 있는 원동력을 상실하였던 뼈아픈 역사의 오점이 되었다. 다른 한 가지는 흥사단을 수양단체로만 인식하여 광복 후 일본의 수양회라는 단체와 수년간 교대로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친목을 도모한 사례는 도산의 참뜻을 모르고 자행된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200812월에 개정된 약법사건은 그 당시 박인주 이사장은 많은 단우들의 사임 요청에도 불구하고 교육부 산하 평생교육진흥원장직을 태연하게 겸직하면서, 강용찬 약법특별위원회 위원장 중심으로 약법개정안을 준비시켰다. 그 후 공의회 석상에서 약법개정에 대한 논의와 철저한 심의도 하지 않은 채 도산의 창의적인 대공주의 사상을 모두 삭제하는 약법개정안을 일괄 통과시키는 잘못을 범하였다. 자신들의 글에서는 도산의 대공주의 사상을 극찬하면서도 약법에는 이를 삭제하는 파렴치(破廉恥)한 행위를 자행한 셈이 되었다. 이에 대해 임채승 단우와 본인은 개정된 약법에 대공주의 사상의 재삽입 요청과 감사회(회장 조재국)에 약법 개정(200812)의 합법성에 대해 심도있는 감사를 촉구한 바 있다.

상기와 같이 흥사단 운동은 몇몇 단우들의 개인적인 출세 욕심과 패거리식 단우활동으로 인해 흥사단은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종종 벌어지는 조령모개(朝令暮改)식 잦은 지부 규약의 수정과 약법의 잘못된 개정뿐만 아니라 시행규정과 규약 집행의 편법은 흥사단 운동의 본질을 교묘하게 변질시켜 왔다. 현재에도 이러한 양태는 진행 중에 있음을 말할 필요도 없다.

2013년에는 흥사단 창단 100주년을 맞이했는데, 100주년에 걸맞게 흥사단의 모든 단우들은 참된 도산 선생의 혁명사상과 올바른 흥사단의 정신을 제대로 복원시켜 먼 훗날 우리 후손들 에게 역사적인 심판을 받지 않는 흥사단 단우가 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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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흥사단 연례총회


또 한 가지 첨부하자면, 도산 선생의 연보에서 1930년 도산 선생께서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는 기사는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구익균 애국지사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독립당이 아니고 대독립당을 비밀리에 조직 중이었으며, 대외적으로는 대일전선통일동맹의 이름을 사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창당연도와 정당 이름도 학자마다 다르게 보고 있고, 일본 경찰의 첩보보고서 내용만 참고하여 쓴 논문에 의해 잘못 알려진 탓도 있다. 충분한 역사자료를 확인하여 이를 시정할 사항임을 밝혀둔다. *: 4343321일 이창걸 흥사단 진단 참조

오늘날 흥사단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흥사단 자체 투명성을 위해 임원들의 반흥사단행위 에 대해 2008년 단우 이창걸 교수의 연구발표문 참조

흥사단이 이처럼 침묵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모든 3회 임원들은 건전한 인격이 없는가! 지 삼육은 무엇이며,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의 4대 정신은 어디에 써 먹는가!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과 함께 촉발된 '촛불집회'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는 순수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시위모임이었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610'명박 산성'을 쌓아 시민과의 대화의 장을 포기하고, 평화적 집회와 시위를 억압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대내 외적인 잘못된 정책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견제를 하지 못하는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로서의 생명을 상실한 단체이며, 정부의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적인 어용시민단체임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시민단체는 현 정부(GO)가 시민들에게 일일이 못하는 부문과 일을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NGO)가 자발적으로 그 부문과 일을 시민의 입장에서 챙기고 보완하며 제도적인 개선을 통해 시민 중심의 복지사회건설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단체가 정부의 자금을 받든 가 정부의 산하기관으로 매수되었다면 그 시민단체는 현 정부에 대해 뼈아픈 비판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민단체의 중립성과 정체성에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흥사단은 바로 이명박 정부의 산하기관으로 오해받고 있으며, 흥사단 박인주 이사장이 정부 산하의 평생교육진흥원장직을 수행하는 이상, 흥사단은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혹독한 쓴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이를 미리 예측한 흥사단의 뜻있는 임원들(이창걸 포함)5개월 전에 미리 박인주 이사장, 반재철 공의회장, 박의수 심사회장에게 공개 질의와 박인주 이사장의 사퇴 및 해임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박인주, 반재철, 박의수 회장등은 모두 한결같이 '모르쇠'로 모든 단우들의 의견을 묵살 하고 현재까지 단우들의 대화와 소통을 하지않고 있으며, 임원의 책무를 저버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3회 임원들도 침묵과 방조를 하는 등 직무유기를 함께 하고 있다.

흥사단 내부에서 조차 대화와 소통을 거부하고 '모르쇠'로 견지하는 박인주 이사장과 공의회장, 심사회장, 3회 임원들이 존재하는 한,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권을 미국에 헌납한 이명박 정부에 무슨 비판과 쓴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 정부가 지난 610일 시민들의 촛불집회에 겁이 나서 광화문에 '명박 산성'을 쌓아 국민과의 소통을 차단했듯이, 흥사단 이사장, 공의회장, 심사 회장도 똑같이 흥사단에서 '3회원 산성'을 쌓아 단우와의 대화와 소통을 막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2008223일 개최된 공의회 회의록을 아직 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현재 흥사단 3회장은 공의회 회의록에 담긴 진실(회의록에 담겨있는 사실)을 은폐했기 때문이다. 진실을 숨기고 자의로 단우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동안의 내용은 단우게시판에 제시되어 있음 (223일 박인주 이사장 사퇴요구/ 226일 공의회장, 심사회장 박인주 이사장 판단에 위임한다고 직무유기/ 229일 흥사단의 속 내용과 병폐/ 314일 박의수 심사회장에게 보낸 공개 질의서/ 322일 박의수 심사회장 사퇴요구/ 326일 공의회장, 심사회장 공문/ 327일 박인주 이사장, 반재철 공의회장, 박의수 심사회장, 3회 임원 전체는 직무유기 및 약법을 위반함으로 스스로 단우의 자격을 상실했음)

현재 권혜진 단우가 촛불집회와 시위로 인해 조계사에서 농성 중에 있고, 흥사단 활동가협의회의 정상영 단우가 흥사단 이사회와 선배 단우들에게 <흥사단의 방향성과 침묵>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현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에 대해 흥사단 이사회를 비롯한 3회원 임원들의 현실인식의 정도는 상식의 수준이상으로 기대할 수 없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2008215일 박인주 이사장이 이명박 정부의 산하기관인 평생교육진흥원장직을 겸직해도, 이에 대해 3회원 수뇌부와 임원들은 한마디도 쓴소리를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미 흥사단은 정체성을 상실했으며, 3회원 수뇌부는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봄이 옳다. 다른 이유 를 제시하여 항변하려는 단우가 있겠지만, 많은 단우들은 지금의 흥사단 위상에 대해 마음 아프게 생각하며 남몰래 피눈물을 삼키고 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흥사단은 1) 바른 정치를 하도록 감시하며부강한 민주복지사회 건설에 주역 이 되는 것이고, 2) 복스런 새나라 건설에 방해가 되는 사회적 제반행위를 비판 견제하여 대한 민국의 영원한 등불이 되어야 하며, 3) 부강한 나라 건설에 역기능과 폐단이 되는 정책과 방향성 그리고 이념적 지향성을 대공주의정신에 입각하여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책무 가 있으 며, 4) 상기의 사항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단우는 인격 단결 공민훈련을 거쳐 대공 복무의 정신 으로 무장하여 국민의 행복을 위해 부단히 실천 노력하는 것이 흥사단의 정체성 (identity)이다. : 2008723冠山 이창걸 교수의 당시 한국흥사단 투명성을 위해 비판한것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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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뒷줄 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1919년 10월 11일)


   

(1) 민족적 自覺自信感

도산은 민족적 자각과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이 내용이 '동포에게 고하는 글' 가운데 나타난다. 그는 이 글에서 자기 민족의 현재와 장래, 소질과 天分에 대해 비관하고 불평하고 방관하여 민족적 열등감, 민족적 자기비하, 패배적 민족관, 허무적 민족관을 가질 때 민족의 힘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힘은 자신에서 생긴다. 이것이 자각될 때 힘을 얻는다. 이러한 것은 '主人論'에서 민족에 대한 주인정신론을 강조했다. 손님정신이 아닌 주인정신이 중요하다. 나는 민족의 참주인임을 자각하고 자신할 때 힘을 얻는다. 힘이 있는 민족이 되려면 세 가지 자본이 필요하다. 1)금전의 자본(경제적), 2)지식의 자본(정신적), 3)신용적 자본(도덕적). 이러한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동맹을 강조한다. 이는 공동목표를 위한 공동행동을 위한 필수적인 것이었다.

 

(2) 민족적 訓練 改造

훈련과 개조는 혁명적 행동을 준비하는 도산사상의 핵심이다. 그는 첫째도 훈련, 둘째도 훈련, 첫째도 개조, 둘째도 개조. 모든 위대한 것이 훈련의 산물이듯 훈련된 국민만이 훌륭하다. 그래서 그는 국민을 훈련하기 위해 일생 동안 학교를 3개 건립한 뛰어난 교육가다. 또한 국민의 힘기르기 교육과 병행하여 60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정치가요, 탁월한 선각적 사상가였다. 훈련을 통해서만이 개조가 된다고 믿고 개인훈련을 중시하면서 민족훈련을 실시했다. 도산은 특히 두가지 훈련을 강조했다. 하나는 인격훈련, 다른 하나는 단결훈련이었다.

 

그는 1930년대 인격혁명을 강조했는데, 건전한 인격은 세 가지 요소가 있다. 1)實務力行, 忠義勇敢, 용감의 4대 정신을 갖는 도덕적 성격, 2)기력이 강한 튼튼한 몸과, 3)한 가지 이상의 전문지식과 생산기능을 갖는, , 의 온전한 훈련을 전개했다. 도산은 또한 합동에 있어 두 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하나는 민족적 감정보다는 민족적 사업을 위해 합동하라. 다른 하나는 합동을 하려면 공통적 신용을 세워야 한다. 서로 믿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훈련은 개조를 낳는다. 특히 도산은 1)민족의 성격개조, 2)정신개조를 강조하며, 이런 개조는 나부터 시작하여 민족개조로 나가야 한다고 권장했다. 자기개조는 습관개조 혹은 성격개조에 초점을 두었다.

 

한국의 민족운동의 방법은 크게 네 가지. 1.무력행동파(의병활동, 무관학교 등) 2.외교파(이승만, 김규식 중심, 민족자결주의 영향이 큼) 3.공산주의자들의 민족운동 4.힘 기르기 실력 준비파(도산은 역점을 둔다) 도산은 민족의 힘의 사상이요 힘의 철학이다. 민족의 자주독립과 자력갱생의 실력양성운동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도산은 모든 방법을 활용하려 했다.

 

(3) 민족적 理想使命

민족훈련과 민족개조는 우리 민족을 최고민족으로 완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이 민족의 이상이요 사명이다. 도산은 민족완성이 그의 궁극적 목표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족성격이 민족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것. 위대한 민족성격의 세 가지 원리를 강조한다. 1. 4대정신(무실 역행 충의 용감), 2. 사랑의 원리, 3. 大公주의, 민족에 대한 봉사 원리. 첫째 원리. 務實은 속이지 말자는 것. 도산은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농담이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力行은 행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소극적으로 말하면 놀지말자, 일하자. 지행일치의 삶을 살자. 忠義는 충성과 신의의 합한 말이다. 勇敢은 비겁의 반대. 무슨 일이든 적극적이요 씩씩하고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다. 도산은 한민족을 용감한 민족으로 만들고자 했다. 도산의 둘째 원리는 사랑. 그는 진실을 가장 강조하고 다음으로 사랑을 강조했다. 즉 민족이 서로 사랑하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그의 이상이었다. 셋째 원리는 대공주의사상과 민족의 대한 봉사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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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를 방문한 이상재, 윤치호와 함께 달리기 경주 (오른쪽 두 번째가 도산)


 


(4) 통일운동의 대외적 전략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방법으로 일본을 선택하도록 버려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실수다. 그리하여 미국으로서 중국의 성장이 우려할 만한 것이듯이 일본의 재무장 등장은 아시아의 불안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한반도 통일을 방해하고, 또한 앞으로 미국에게도 또다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하여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 제국을 연결하는 한반도 통일을 위한 전략적 리더쉽이 필요한 때이다.

 

유럽과 러시아는 하나의 종속변수로 내려 앉았다. 모든 지식인들조차 거품같은 인기 영합 의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현재 눈앞의 작은 이익을 추구하여 미래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우리자신의 것이 소중한 가치를 지녔다는 자긍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안창호 선생의 대공주의에 입각한 역사를 예시할 수 있는 감각과 전략적 사고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

현재 미국의 무기체제는 한반도에 지상군을 유지하여야 할 필요성이 과거와 판이하게 달라진 상황이다. 실질적으로 선제공격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세계유일의 국가로서 전 세계에 걸친 재배치(Transformation)는 오래전부터 예고되어 왔다. 미국은 새로이 성장하는 중국을 가장 큰 위협으로 상정하고 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미국이 지상군을 철수하느냐가 아니라, 아시아 신질서에 누구를 동반자로 선택하느냐의 문제에 집중된다. 거기에는 새롭게 조명받는 아시아태평양 시장의 동업자로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가에서 비롯한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상대방선택의 기준으로 신뢰(Trust)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명백하다. 특히 상인적(商人的 ) 사고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일시적 이해를 따라 강대국은 삽시간에 변해 왔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비추어, 우리가 아무리 미군철수를 부르짖어도 미국은 떠나지 못한다고...더구나 현재의 국제정세와 무기체제는 50년전의 상황과 너무나 많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우려는 현실적이다.

 

더욱이 67년간이나 서로 죽이고 미워해 온 민족분단의 부끄러운 역사를 딛고 남과 북의 정상이 한 자리에 만나 한민족 자구책을 긴급하게 논의해야 할 기로(岐路)에 서 있다. 같은 동족보다 더 우호적인 외국은 있을 수 없다.

 

이제 민족이 하나임을 확인할 때다. 이제 당리당략(黨利黨略)이나 개인적인 이권에 눈먼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지혜와 힘을 모을 때다. 말 그대로 상생(相生)과 합의의 정치를 할 때다. 홍익인간의 이념과 민족공동체를 실현할 한민족의 정신적 원리는 상생이다. 공동체적 삶의 오랜 전통 속에서 함께 살고 서로 살리는 지혜와 힘을 길러온 한민족의 정신과 문화 속에는 '서로 살림'의 원리가 배어 있다. 신라의 화백제도에서 보듯이, 인내와 신뢰 속에서 서로 만장일치로 합의에 이르는 힘과 지혜도 우리에게 있었다. 더 이상의 외국에 대한 괴뢰정치(傀儡政治)를 이제 그만 접어두고, 진실로 배달민족의 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눈을 뜨자!

 

 

안창호선생_말년 왼쪽에는 여운형, 오른쪽에는 고당 조만식. 여운형과 조만식은 안창호의 말년생활을 끝까지 곁에 있었다..jpg
 여운형과 조만식은 안창호의 말년생활을 끝까지 곁에 있었다 <이상 사진 www.ko.wikipedia.org>

 

이제는 당과 보스보다 나라와 민족이 더 크고 중요하다는 정치철학을 분명히 가지고 상생과 합의의 정치를 할 때이다. 이제는 더 이상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민족의 큰길을 가로막지 말자. 꾀로 정치하는 것은 나라의 도적이고, 꾀로 정치하지 않는 것이 나라의 복이라고 노자는 말했다. 지역감정과 당파주의와 민족분단을 조장해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던 지금까지의 민족반역행위를 이젠 그만 두자!

 

손해가 있을 지라도 민족을 파괴하는 지역감정과 당파주의와 민족분단을 극복하도록 서로 심혈 을 기우리자! 희생 당하더라도 노자의 말대로 나라의 도적이 지 말고 나라의 복이 되도록 너도 나도 헌신해 보자! 이 나라 이 민족이 밝고 따뜻한 삶을 누리려면 반드시 영구적인 편화를 누릴 수 있는 중립화통일을 성취해야 한다.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의 흥사단 정신으로 나라와 민족을 지킬 힘을 기르자. 그리하여 외국인 군대가 다시는 우리 강토에서 전쟁연습하게 허용하지 말고, 외국과 동맹을 맺어 내 동족을 살상하지 말자! 민주평화통일은 8천만 한민족(韓民族)이 자주권을 찾는 대업이요, 완전독립을 위한 통일운동은 10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흥사단에 맞겨진 꼭 이루어야 할 독립운동이요 시대적 사명이다!

 

* 이 글은 흥사단 창립 100주년을 맞 20135월에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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