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과학을 배우지 않죠”
다큐멘터리 PS Dance의 선생님 중 한 명인 Michael Kerr의 인터뷰다.
그렇다. 어떤 아이들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 과학을 공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과학자가 되기 위해 과학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다. 무용(舞踊) 칼럼에서 왜 이렇게 과학 이야기를 할까? 무용수업 또한, 전문적인 무용수를 양성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미국의 모든 학교 교과과정에 무용 수업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무용수업을 교과과정으로 다루고 있는 학교장과 선생님, 그리고 학생의 모습은 그렇지 않은 학교와는 어딘가 모르게 달라보인다.
이하 photo by 백평훈
지난 여름, PS Dance라는 다큐멘터리 필름이 나왔다. 그리고 미국의 방송채널 THIRTEEN에도 소개되었다. 무용수업이 어떻게 학생들의 생각과 태도,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인터뷰로 다큐멘터리를 이끌어 나가는데,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무용이라는 교육은 실로 놀랍다.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켰고, 서로를 변화시켰으며,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는지에 대한 인터뷰를 보면서, 사회에서 예술 교육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PS Dance의 호스트를 맡은 Paula Zahn도 언급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무용을 그저 수많은 스텝(steps)들로 혹은 발레, 현대무용, 컨템포러리 댄스, 그리고 전통무용 정도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무용 ‘교육’이라는 것은 더욱 큰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무용 ‘수업’과 무용 ‘교육’에 차이점이 있다. ‘움직임’ 이라는 것이 공통적 요소이지만, 무용 수업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동작을 모방(模倣)하고 배우는 것으로 우리가 보통 알고있는 전통적 방식이라면, 무용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배움을 스스로 찾아가는 가이드적인 선생님의 역할이 필요한 수업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뉴욕 맨하탄PS 89 Liberty School은 필자가 뉴욕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참관수업을 직접 들어본 곳이기도 한데, “사회에서 좋은 시민, 학교에서 좋은 교우관계를 가지는 것”이 예술 수업에서 학생들이 얻었으면 하는 것이라고 이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말한다. 예술은 지성과 연관이 없는 분야가 아니다. 그러나 지성보다도 감성. 그리고 공감(共感) 능력을 길러주는 좋은 도구가 된다. 예술교육은 언제나 ‘사람’에 집중하고 있다. PS 89를 다니는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무용 교육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표출하고, 자유하며, 상상력을 펼칠 수 있고 감정과 그 것에 대한 반응에 대해 배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행복하단다. 안타깝지만 요즘 아이들의 입에서 듣기 힘든 말들을 인터뷰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교육 환경이길래 아이들로 하여금 이러한 말들을 들을 수 있었을까?
무용실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넓은 공간과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일 것이다. 그런데 무용실의 거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무용수업이 이루어지는 이 공간은 음악으로 가득찼고, 선생님은 움직이지 않고 말로써 아이들이 움직이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곳은 초등학교다. “바닷속을 걷는다고 생각하세요. 바닷속에 무엇이 있을까요? 누군가는 해초도 되어보고, 누군가는 물고기도 되어보고..” 아주 기본적인 상황들을 학생에게 주었다. 학생들 어느 누구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졌다. 바닷속의 해초가 되어 한들한들 움직여 보기도하고 물고기가 되어 헤엄치기도 한다. 모두에게 똑같은 명령어가 주어졌는데 누구하나 같은 모양으로 움직이는 아이들이 없다. 그것이 우리의 본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수업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교과목들과 연계된다. 예를 들어 역사시간에 배운 역사적인 인물들이 무용 수업시간에 등장한다. 이것은 학교측의 노력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다. 선생님들의 노력의 성과다. 아이들은 앉아서 책을 보며 배웠던 역사를 무용시간에 스스로 움직이며 그 시대의 태도, 문화들을 배운다. 그렇게 직접 움직이며 배운것들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으며, 나와 상관없는 한편의 역사로 치부(置簿)되지 않고 나의 것이 된다.
브루클린의 P.S. 315 의 무용수업은 어떨까?
서로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상대방에 예의를 갖추어 ‘조언’해 주는 수업이 주를 이룬다. 비판이 아니라 인정하고 도와주는 방법을 배운다. 친구의 좋은 점을 발견해 주고, 드러난 부족한 점은 어떻게 하면 더 좋아 질 수 있는지 유연한 표현 방법으로 제안한다. 이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라고 한다.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무조건 배척(排斥)하지 않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피드백을 주는 반복적인 연습은 전반적인 학교생활 뿐만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브루클린의 New Voice School은 중학교이다. 이 학교의 무용선생님은 중학생들이 고등학교 진학 등, 많은 변화를 앞 두고 두려움으로 잔뜩 움츠려있는 것을 알고있다. 그래서 무용수업에서 만큼은 ‘실수’가 없고 ‘기회’만 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생들의 인터뷰에서도 “우리 수업에서는 ‘이렇게 해!’라는 명령이 없어요. 선생님은 우리에게 생각할 어떤 것을 주는데 우리가 그것을 스스로 해내면서 자연스럽게 그 과정 속에서 배워요.” 라고 했다. 실제로 학기가 시작될 때 학급에서 따돌림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따돌림’에 관한 무용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룹을 나누어 각자 따돌리는 자, 따돌림을 당하는 자로 역할을 맡아 표현하게 하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했는데, 인터뷰에서 학생이 이야기했다. ‘We need each other.” 이제는 서로가 필요한 존재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더이상의 따돌림은 없다고 한다. “세상을 향한 관점을 바꾸어 주어요!” 라고 말하는 학생의 눈빛은 빛이 났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화면 속의 아이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이에 선생님은 “It’s not Dance. It’s a state of mind.” 라고 말한다.

교육. 궁극적으로 ‘교육’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밝은 미래’에 있다. 적어도 PS Dance에 나오는 무용교육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 하다. 전문적인 예술가를 양성하는 예술학교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예술학교를 나온다고 해서 모두가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춤을 추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길을 걷는 학생들도 많다. 그렇지만, 무용수업을 경험했던 학생들의 삶은 비교적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들은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이야기한다. 춤을 추기 위해서는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해야하며 책 또한 많이 읽어야 한다. 춤을 경험한 학생들은 앞으로 무대에 서는 일을 하지는 않지만, 혹은 전혀 관련 없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디에서든 항상 춤을 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학생들이 이러한 사고를 할 수 있는 학교의 환경은 어떻게 조성 되었을까?
미국의, 특별히 뉴욕의 무용 선생님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워크샵을 가지고 교류하며 서로를 통해 배운다. 나의 특별한 아이디어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나눔으로서 더 많은 학생들이 좋은 기회를 얻고 누릴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선생님들은 정기적 워크샵을 통해서 서로에게 아주 큰 신뢰를 갖는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의 삶을 풍성하게 공유할 줄 아는 선생님들을 통해,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나누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사람들간의 관계는 수 많은 이유들로 인해 계속해서 단절되어 간다. 서로를 불신하고 뜻이 맞지 않으면 공격하는 시대로 치닫고 있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버려야만했던 예술교육. 그 중요성을 PS Dance다큐멘터리를 통해 다시금 재확인 해 볼 필요가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어른들이 변화 되어야 하고, 미래의 어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변화 되어야 한다. 배려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 무용교육을 통해 지성과 함께 감성을 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http://www.thirteen.org/programs/thirteen-specials/#ps-d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