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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Quentin Kim)의 음악
피아니스트, 작곡가. 쥴리아드 학교 음악예술박사. 1999년 그레이스 웰시 국제 피아노 콩쿠르 대상, 2004년 중앙 음악 콩쿠르 우승(피아노). 2009년 워싱톤 국제 작곡가 콩쿨 장려상 수상. 출시음반 <낭만 담화>, <쏘나타 앨범>. 뉴욕 연주예술가협회(NYCA) 회원.미국에서 15년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활동하다 2011년 부산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피아노 교수로 위촉되어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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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통한 인간의 구원

글쓴이 : 김정권 날짜 : 2013-10-07 (월) 21:34:53

 

 

지난 10월 1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NNSC) 스위스클럽에서 세 명의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가졌다. 그곳이 바로 남북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곳이라는 사실이, 분단국가에 사는 한 음악가에게 어떤 감정에 짓눌리게 하였다.

 

그 장소가 부여(附與)한 어떤 감정은 내가 그곳에 있는 동안 내내 나를 감싸서 숙연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종전이 아닌 휴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하고서 이에 기인한 감정이 나를 억눌렀던 것인데, 그것이 공포일지, 분노일지, 아니면 슬픔일지 그것조차 확실히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짧은 피아노 연주는 끝났던 것 같다.

 

 


▲ 지난 1일 판문점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 첼리스트 강혜지 테너 김세일과 함께.

 

 

공포스러운 현실을 눈앞에서 겪고나자 예술을 할 수 있었던 나의 상황을 생각하며 고국 대한민국에 감사하게 된다. 나라를 건국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서 오늘날이 있게 해준 분들이 바로 대한민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고, 한 음악가가 그 예술세계의 근간(根幹)을 고국에 둘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피아니스트로서 작곡가로서의 나는, 예술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救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구원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라도 인간이 영혼만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영혼의 자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예술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말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이란 것이 만일 진짜 육체적으로 ‘살아남기’위한 사투(死鬪)의 단계라면 고통에 처한 그들에게는 ‘예술에 대한 고찰’ 따위는 한심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으리라는 사실이 나를 공포스럽게 한다.

 

삶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 갖추어진 사람들은, 삶의 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사소한 일도 온갖 고민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고민은 그를 좌절하게 하고 상황에 따라서 ‘사회에서의 억울함’이나 ‘실연의 아픔’ 같은 것들은 그를 자살로 이끌기까지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차원에서의 삶과 죽음의 투쟁은 매우 배부른 고민이다. 그들에게 죽음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듣게 되는 북한 주민의 실상은 선택이 결여된 생존의 문제이다. 삶을 연명(延命)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펼쳐지는 상황 속에서 예술이 과연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하는 궁극적인 고민이 나를 괴롭힌다.

 

 


▲ 이 그림은 '북한인권제3의 길'에서 출판한 '전거리교화소(12교화소)'에 실린 삽화입니다.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라는 작품인데,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 벌어지던 시기 유태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생존의 이야기이다.

 

 

스필만은 게토에서 생활하다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서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간신히 벗어나 이곳저곳을 숨어서 전전하며 생존하려고 몸부림친다. 작품 속에서 보면, 빵이 없어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피아니스트에게 더 이상 예술은 구원처를 제공하지 않는 듯 보인다. 눈앞에 피아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각되는 것을 두려워 한 그는 건반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마음속으로만 피아노를 연주한다. 종전이 다다를 무렵, 빈 집에 숨어있던 스필만은 독일 장교에게 붙잡히게 되는데 그 앞에서 쇼팽의 곡을 연주하고 살아남게 된다. 그의 연주가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어 살아남게 되었다는 식으로 보일 수 있는 이 마지막 사실만으로 우리는 과연 예술이 그를 구원했다고 할 수 있을까.

 

 


 

 

독일 장교가 쇼팽을 듣고 스필만을 살려준 사실이 꼭 그의 연주에 감동을 받아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진짜 스필만의 연주가 훌륭해서 그를 자극했을 수도 있지만, 연주된 바로 그 곡 쇼팽의 ‘발라드 1번’이 장교에게 특별한 추억이 있어서 그를 자극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추위와 고통에 빠진 초라한 스필만의 연주가 너무 엉망이어서 오히려 인간적 연민을 느끼게 했는지도 모르고, 그냥 종전이 가까워진 시기가 되어 장교는 더 이상의 살육(殺戮)에 염증(厭症)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피아노 연주가 그 장교에게 어떤 인간적 감정을 일깨웠다는 사실이다. 예술의 위대한 점이 그런 것 같다. 예술은 인간의 감정으로부터 나와서 창조된 것이지만, 반대로 예술이야말로 인간을 살게 만들고 인간을 인간답게 빚어내는 역할은 한다는 점이다.

 

예술이 과연 인간을 구원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서 모순(矛盾)에 빠진 나는, 평생을 힘들게 살고 오랜 시간 병석에 누워계신 우리 할머니의 모습에서 희미한 힌트를 얻어 보고자 했다. 할머니 세대가 그러하셨듯이 함경도가 고향이신 할머니께서는 6.25때 내려와서 평생을 힘들게 사셨다. 당연히 클래식 음악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셨던 할머니께서 항상 의지했던 것은 고복수(高福壽)와 백년설(白年雪)이 부른 흘러간 옛 노래들이었다. 힘들 때마다 당신을 지탱해준 것은 그런 멜로디들이었다.

 

 


                  ▲ 고복수(1936년)

 

 

 

내가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부르신 고복수의 ‘짝사랑’이란 곡을 녹음한 것이 있었다. 그때는 녹음테이프를 산 것이 신나서 이것저것 녹음했던 것 같다. ‘아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되는 노래를 무반주로 부르셨는데 중간에 음도 틀리고 잘 부르신 것이 아니었는데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몇 마디 노래 속에 이상하게도 할머니의 인생 굴곡(屈曲) 때문에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고 듣는 것만으로도 슬퍼서 감당이 안 된다. 마치도 할머니 슬픔의 세월을 1분짜리 노래 한곡에서 엿본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할머니께서 고복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삶의 고통을 이겨내셨고 당신의 영혼은 자유로우셨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한 명의 예술가로서 피아니스트로서 나는 예술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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