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엄마, 한국에서 그리운 가족들 만나고 맛있는 음식 잡숫고 계세요? 화사한 꽃구경하고, 계곡에 가서 발 담그고 재미있게 놀고 계시죠?
남은 가족이나마 이 세상을 등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나러 가신 내 엄마, 5월 13일 오늘은 미국에서 제일 많이 꽃이 팔리는 어머니의 날(Mother's Day) 이예요. 우리도 꽃가게를 해 봐서 알잖아요? 얼마나 이 세상에서 엄마라는 존재를 사랑하고 존중하는지.
엄마, 그런데..은주는 참 슬퍼요. 너무나 마음이 슬퍼서...장사익씨의 노래 ‘찔레꽃’ 에서 느끼는 것처럼...너무나 슬퍼요. 학교를 이틀이나 못 갔어요. 저를 좋아하는 학생들도 많이 슬퍼하고 있을거에요..
엄마, 기억나요? 저를 10달 동안 태중(胎中)에 고이 두고, 소중하게, 예쁜 생각만 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저만 생각하고 애지중지해서 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엄마...저를 잉태 하기전부터 엄마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요.
엄마, 기억나요? 제가 2살 때 홍역(紅疫)을 앓는데...열이 펄펄 끓어, 오빠따라 저승에 보내는 줄 알고 지극정성으로 물고 빨고, 씻기고 안고 먹이고 기어코 낫게 해주셨지요.
제가 피부병에 걸려, 피고름이 온 머리에 두드러기처럼 솟아 올랐을 때, 엄마는 역겹다 안하시고 피고름을 하나하나 빨고 짜서 내 몸을 깨끗하게 만들어주셨지요.
엄마 기억나요? 제가 어릴적 큰 신발을 신고 왔다갔다 하곤 했잖아요. 아빠 slipper 를 신고 돌아다니다가 그만 넘어졌는데 귀가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는데..갈라진 귀 살을 천에 돌돌 감아서...저를 포대기로 업고 수원 병원까지 울면서 뛰어 가셨지요? 아직도 귀에는 찢어진 흉터가 남아 있지만..엄마가 날 업고 뛰어가지 않았으면...피를 너무 흘려서 죽을 뻔 했다죠?
엄마, 기억나요? 제가 3살쯤...할머니가 저 몰래 이모할머님이랑 서울 놀러가신것을 알고..저를 속였다고 세살백이가, 땅을 치고 울었던 것 말예요? 엄마가 저를 몇 시간이나 업어서 달랬잖아요. 그렇게 울다 떼쓰다 그냥 엄마의 포근한 등뒤에 업혀서 잠이 들었죠.
엄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의 딸이,
홍역으로 가망없다 했을때 지극정성으로 살려낸 딸이,
피부병으로 흉칙한 피고름을 입으로 일일이 빨았던 딸이,
귀가 찢어져 피를 철철 흘릴 때 업고 뛰어가 살려낸 엄마의 생명보다 소중한 딸이,
11살 때 강제로 이역만리에 끌려가 매일밤 수많은 놈들이 겁탈하고 내 배위에서 담배를 피며 껄껄대는 지옥같은 세월을 겪고 모진 목숨 살아났더니 그놈들이 엄마 딸을 창녀라고 부른다면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만일 그런 일을 당했다면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엄마의 찢어지는 마음이 들린다. 통곡하는 엄마의 피나는 발톱들이 보인다. 엄마의 눈에서 피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게 보인다.
엄마, 난 정말 피가 마를 것처럼 슬펐어. 그리고 헛구역질이 나오면서 온 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막 아팠어. 그리고 나도 엄마로서..만일 내 딸들에게 이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다면 내가 이 세상에 지탱할 수 있을까...
강간을 수천번 당하고...영혼을 잃고 해매고 다니는 폐인(廢人)으로, 산송장으로 변해 살고 있는 엄마의 딸을 누가 창녀라고 한다면..그리고 강간을 당할때 enjoy 를 했다고 누가 말을 한다면..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엄마, 기억나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주일 아침에 높은 구두를 신고 교회로 걸어가고 있는데 (동네 미국교회) 어느 이상한 남자가 아랫도리를 벗은 채 차를 타고 날 계속 쫒아온 일? 그 사람의 아래를 보고 기겁을 해 막 뛰어가서 골목으로 숨었다가 간신히 교회에 간 일? 그후로는 높은 구두도 절대 안신고..아침에 혼자서 교회로 걸어가지도 않고..그리고 그 충격으로 인해...한동안 그 남자와 비슷한 사람 (빨간머리 백인)을 보면 경기(驚氣)를 일으킨 것?
그런데...상상을 해봐. 나는 나체의 남자만 보고도 기겁을 해 도망갔는데...그 어린 소녀들이 어느날 헌병이, 경찰이, 혹은 취직시켜준다며 납치해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어디론가 실려가 짐승우리같은 곳에서 수도 없이 나체의 남자들에게, 당하고 또 당하고 피투성이로 죽어가는 모습을...
엄마 정말 원통해. 그렇게 끌려간 소녀들이 20만명이 넘지만, 살아 남은 사람은 몇만명도 안되고, 망가진 심신으로 고향도 못가고 시집도 못가고 쓸쓸히 돌아가신 할머니들, 이제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몇십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오늘날 문명국, 선진국이라는 일본정부는 강제로 끌고 간 위안부는 단 한명도 없고 그분들을 창녀라고 매도하다니. 이런게 바로 벼락맞을 일 아닌가?
더 한심하고 분통이 터지는 것은 며칠전 신문에 나온 사진이야..어떤 한인단체 지도자들이 기림비를 찾아 왔는데..사진기자를 향해 포즈(pose)를 취하면서...손을 들고 "아자~화이팅(?)"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전 잠시 착각 했어요...운동경기를 보러 와서 "아자!..가자!..." 하며 승리를 다짐하는건줄 알았어. 아니 일본군에게 강간 당하고 죽은 영혼들을 기리는 기림비 앞에서 "아자" 하며 사진을 찍는게 대체 어느나라 법도야?
만일 미국에 어느 rape victim hotline 에 가서 "아자!" 하고 주먹을 쳐들고 사진을 찍었다면 아마 그 사람들 큰 봉변을 당했을거야. 숙연하게 참배를 해도 시원치 않은데 환하게 웃고 주먹을 흔들며 아자~를 해?
이건 문화차이가 아니라...인간 됨됨이의 차이가 아닐까..X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못하고 카메라만 들이대면 “아자!” 하는 사람들. 뭐가 신이 난다고 웃는 얼굴로 "아자" 하고 있는 것이야? 설사 그걸 기자가 시켰다고 해도.. I couldn't believe my eyes. 너무나 부끄러웠어.
엄마, 왜 세상은 이렇게 모든 것이 흐리멍텅할까. 내가 가르치는 Harlem 에서는, 그리고 부자집 아이들이 다니는 Scarsdale, Greenwich, CT, 에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마약을 복용한다고 하는데...부유층이고 서민들이고 마약(痲藥)을 복용하는 아이들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고 하는데...그 사람들은 현실을 clear 하게 보면 너무나 아프기에...마약으로 세상을 흐리멍텅하게 보려는 것일까....난 마약도 복용하지 않았는데..왜 이렇게 인간세계가 흐리멍텅할까? 엄마는 알아요? 왜 이렇게 인간세상이 흐리멍텅한지?
엄마, 난 이 갈대들처럼...그냥 바람이 부는대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다가 그냥...이 세상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하는지...꼿꼿이 서서...싸우고 부러지고 또 뿌리채 뽑혀 이 세상의 종말론을 현실화 해야 하는지...내 마음을 바람에 날리고 싶어져.
엄마, 이제 슬픈 얘긴 그만할께..좋은 추억거리 많이 만들고, 모국의 공기 많이 마시고...또 이모들과 이야기 많이 나누고 환한 모습으로 돌아오세요.
엄마를 보고싶은 딸 은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