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습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기 전날이었죠.
빈자(貧者) 예수의 나사렛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인 가리봉은
눈발이 곧 쏟아질 듯 하늘이 흐렸습니다.
병들고 지친 타국 나그네들을 위해
가리봉 언덕배기에 세운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
얼굴이 싯누렇게 뜬 중국동포 사내가 찾아왔습니다.
작달막한 이 사내는 자신을 간암 환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유(兪)씨 성을 가진 쉰 살의 깡마른 이 환자는
지난해 7월 입국해서 간병인으로 일했다고 했습니다.
이틀은 간병하고 하루는 쉬는 형태로 일하면서 일반 환자는
하루에 6만원, 중환자실 환자는 7만~7만5천원을 받았답니다.
그런데도 집세 낼 돈이 없어 쉬는 날은 사우나에서 지냈답니다.
간병으로 벌어들인 돈을 병원비와 약값으로 다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부터 복수가 차고 통증이 심해지면서
간병 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게 되자 노숙자로 떠돌다가
동포들의 안내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을 찾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 또한 간암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도움 받을 수 있는 큰 병원으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유씨를 보낸 안타까운 마음을 떨치고서
연말을 보내고 있는데 그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돈 한 푼 없는 그를 받아줄 병원과 기관이 한국에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난감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했습니다.
황달증세가 더 심해져 다시 찾아온 유씨를 맞이한 이기병 선생!
외국인노동자 환자들 사이에서 슈바이처로 불리는 이 선생님은
복수에 찬 물을 빼고, 진통주사를 놔주고, 알부민 링거를 놓는 등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과 최선을 다해서
유씨를 치료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간암은 간단한 병이 아니니까요.

유씨는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간암으로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형과 동생 또한 간암으로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아내와는 이혼했다면서 어른 고아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아인 우리가 고아인 유씨를 버려야 되겠습니까.
유씨의 마지막 바람대로 고향 길림으로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유씨의 항공료는 이름도 빚도 없는 한 장로님이 도와주었습니다.
지난 1월 4일
고향 길림으로 돌아가는
고아 유씨는 휠체어에 탄채
코리안드림의 나라를 힘겹게 빠져 나갔습니다.
출국장을 통과하는 유씨와
마지막으로 나눈 인사는 이렇습니다.
"부디, 건강을 되찾아서
한국으로 다시 돈 벌러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