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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워싱턴워치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2006년 한국 인사로는 처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상원의원 시절 단독 인터뷰했고 미 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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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틀’에서 중국읽기-등소평을 배우자!

글쓴이 : 김동석 날짜 : 2010-07-19 (월) 05:48:45
 

1960년대 초반, 모택동(毛澤東) 주석이 공산당 중앙회의를 주재하면서 중요안건을 두고 기립표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유일하게 등소평(鄧小平)만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모택동은 반 농담으로 “일어선 키나 앉은 키나 별 차이가 없으므로 만장일치라고 합시다”라며 어물쩡 넘어가려 했다.

 

그때 등소평은 “나는 반대 합니다”라고 소리치며 책상 위로 올라갔다. ‘신’의 힘 보다 더 막강한 권력의 모택동이 안건을 포기하면서 “자네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네가 당과 인민을 살린다”라고 중얼거렸다.

1984년 4월, 중국을 방문한 레이건 대통령이 등소평을 찾아왔다. 키가 훤칠한 레이건이 악수를 청하자 등소평은 일부러 손을 아래로 내렸다. 등소평의 아래로 내린 손을 잡으려면 레이건은 허리를 굽힐 수 밖에 없었다. 등소평은 세계 최강을 과시하는 미국의 최고 권력자가 자기 앞에서 허리를 굽히는 장면을 12억 인민들에게 보여줘서 중국의 자존심을 세우려고 했었던 것이다.

중국 현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은 거인’ 등소평. 그의 키는 150센티에 불과했지만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누구보다 정확하고 멀리 내다보았다. 광대한 인구의 중국은 선사시대 이래 그 자체로 하나의 자랑할 만한 문명을 이루어 왔다. 철학. 문화. 예술. 사회적 기술 기술적 발명, 그리고 정치권력 등 모든 영역에서 고도의 선진성을 보여 왔다.

등소평을 위시한 중국현대화에 매진하는 중국 엘리트들은 약 1600년경까지 중국이 농업 생산성, 산업혁명 그리고 생활수준 등의 측면에서 세계를 이끌어 왔다고 주장하며 믿고 있다.

흑묘백묘(黑描白描)론을 노래하면서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해서 전력투구한 등소평은 중국이 위대함에서 몰락한 지난 150년간의 수치는 역사의 돌연변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공산당원들에게 인민에게 충실할 것을 촉구하는 자리에선 “지난 150년간은 지워져야만 하는 역사이며 역사적 가해자는 응징을 받아 마땅하다”라고 주장하곤 했다.

등소평이 지목하는 역사적 가해자는 영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이다. 등소평은 4개의 나라들에 대해서, 영국은 아편전쟁 이래로 중국의 품위를 수치스럽게 떨어뜨렸고, 일본은 약탈전쟁을 일으켜 중국 인민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 주었고 러시아는 중국의 영토를 지속적으로 잠식해 왔고 미국은 아시아에 들어와서 일본을 지원하고 중국의 대외적인 진출을 가로막았다고 비판했다.

등소평은 1989년 ‘강택민(江澤民)’ 에게 주석직을 넘겨주고서도 근 10년 동안 중국노선(방향)에 대해서는 일관성있게 지침을 제시했다. 등소평이 구체적으로 지목한 4개의 나라 중에 홍콩을 반환 한 영국과 영토침식을 중단하고 현저하게 위축된 러시아는 일정하게 대중국 관련 역사의 심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지만 일본과 미국은 아니다. 오히려 중국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국가가 일본과 미국이다.

1997년 2월 등소평은 인생을 마감하는 자리에서조차 일본과 미국을 입에 올렸다. “배타적이지 않는 방식의 지역지배는 (패권형태의)미국과 일본에 우월하다”라고 하면서 결국엔 중국이 역사적 위대함을 복원하게 될 것이라 했다.

1994년 8월 등소평의 남방순례 길에 공산당 지도부-현재 주석인 호금도(胡錦濤-후진타오)를 포함해서-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는 중국 전략에 대한 지침을 내렸다. 등소평은 고대 중국의 군사 전략가인 ‘순자(荀子)’의 예를 들면서 “일본의 야심분출을 철저하게 봉쇄 하면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미국의 힘을 빌려서 평화적으로 격퇴 할 것”을 주문했다.

이때의 등소평 지침을 기본으로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지정전략을 세워서 발표했다. 첫째는 패권주의와 세력 정치에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옹위할 것. 둘째는 신국제 정치.경제 질서를 건설할 것. 그렇게 두 가지다.

첫째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경제력 향상을 위한 중국의 노력에 종지부를 찍을 지도 모를 군사 충돌을 신중하게 회피하면서 미국의 우세를 점차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둘째는 현존하는 국제사회의 서열(序列)에 반대하는 국가들을 중국 중심으로 모아서 미국과 일본, 그리고 이에 결합된 서유럽 국가군에 집단적으로 대항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근 국가들과의 분쟁을 피해야 할 것을 지적했다. <당분간 한국과의 분쟁을 피하는 이유이다.>

천안함 사건을 국제사회로 들고 나와, 북한을 외교적으로 패퇴시키려고 한 한국정부의 전략에 차질이 왔다. 유엔에서 의장성명을 주도한 한국 측은 거의 억지로 “분명하게 북한을 규탄했다”고 발표 했지만 성명서에는 북한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한국정부가 자체 조사결과를 갖고서 의장 성명서에 북한을 명시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안보리의 결의안도 아니고 의장 성명서임에도 성공시키지 못한 것을 고려하면 중국의 영향력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음이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거기에 일본을 결합한 강도가 중국의 버팀을 돌파하지 못하는 세상이 왔다. 그래서 일본도 대중국 전략을 새롭게 궁리하고 있다. 이 판에 한국도 ‘미친년 널뛰듯’하는 국내 정파 간의 아귀다툼과는 별개로 민족역량 구축이란 차원에서 새로운 전력과 전술을 궁리했으면 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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