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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2006년 한국 인사로는 처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상원의원 시절 단독 인터뷰했고 미 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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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반대하는 H형에게

글쓴이 : 김동석 날짜 : 2011-11-13 (일) 13:59:27

H형!

실로 20년 만에 불러보는 이름입니다. 20대 초반인 그때 H형과 나는 틈만 나면 끝없는 토론과 논쟁을 이어갔지요.

주제의 초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자본주의의 노폐물(老廢物)이 순화 될 정도로 인간이 교육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시스템을 ‘평등’이란 관점에 맞춘 권력에 합의를 할 것인가? 였습니다.

지식인 행세를 하는 경우라면 당시의 빈곤문제(빈부격차)의 원인을 제국주의(강대국의 식민주의)로 경멸을 했지만, 사실 H형이나 나나 가난한 환경에서 좀 튀어 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같은 형편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론 사회의 계급문제에 가장 큰 불만이었습니다.

H형의 그 물과 불을 가리지 않는 열정과 노력에 매료되어 사실, 지금까지도 H형의 표현방식과 어휘 동원능력이 머리에 생생합니다. H형이 그러한 입장과 관점을 굽히지 않을 줄은 짐작했지요. 한국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진보적인) 오피니언 리더가 된 H형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수년전에 그 옛날의 교정(校庭)에서 우리는 꼭 25년 만에 만났습니다. 소주잔을 주고받으면서 H형과의 20년 만의 만남 때에 내가 고백했던 “H형의 명성때문에 모국어를 떠난 내 현실이 늘 긴장의 연속이오..! ” 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더구나 어제와 오늘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덕분에 마치 옆에서 논쟁을 이어가고 있는 듯 했습니다.

H형 !

며칠전 한미간 FTA에 대한 나의 입장과 실천을 놓고서 한국의 진보적인 시민사회와 좌파 정치권에서 큰 논란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도 당연히 그쪽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침묵을 지켜나갈 줄 알았는가봅니다.

 

www.ko.wikipedia.org

미국의회를 상대로 FTA지지운동을 주도한 나를 놓고서 “FTA 민족반역 5적중의 한사람”으로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의견을 낸 그룹의 한 가운데에 H형이 있는 것도 알았습니다.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시대의 변화가 빠르지만 우정은 그대로구나..하면서 반갑게 만났던 서울이 생각났습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과 의견의 차이가 우정을 우선했다는 우울함을 숨길수가 없어서 뉴욕의 가을 문턱에서 한자 쓰게 되었습니다. H형에게 섭섭하다는 마음을 전하려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그것보다는 H형이 사회의 흐름을 좀 더 냉정하게 봤으면 하는 생각이 먼저입니다. 우선, 한.미간의 자유무역협정이 왜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에 관해서입니다.

H 형!

우리가 만났던 1970년대 말, 그때에 우리는 지적인 호기심에 두 눈이 번뜩번뜩 거릴때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학교)교정은 10월 유신이란 초법적인 군사권력 하에 정복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과연 용기였는지는 모르겠는데... H형도 나도 감옥까지 드나들 정도로 미련에 가까운 용기를 냈었습니다.

나는 기억에 생생합니다. 유행병 같았던 ‘사회구성체논쟁’에서 H형이나 나나 두 말 없이 동의했던 “사람은 현실이 기본이다. 일상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가장 정직한 요구다” 였습니다.

H형! 당시, 운동권 논쟁중 가장 높은 수준의 이론이었던 사구체론에 나는 아직도 충실합니다. 모국어를 떠난 미국서의 거의 30여년, 이 논리는 나를 실존적으로 담보(擔保)하고 있습니다.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지금 나는 한국인이 아닙니다. 미주동포가 한국을 위한 지원이나 보조의 역할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미주한인들은 미국에 세금을 내는 미국 실정법하의 미국시민이 우선입니다. 한국인이 아니고 한국계미국시민(Korean American)입니다. 미국시민이 다른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면 그것은 실정법하에도 적용되는 불법입니다. 사실, 미국과의 FTA에 관한 한국내의 논란은 그것은 내가 잘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내의 문제를 참견하는 것에 H형이 불쾌하다고 했던 것처럼 미국서의 정치적인 활동에 한국에서 SNS를 통해서라도 무어라 하는 것은 같은 수준에서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주동포의 입장에서 한미FTA는 경제이슈 이전에 한인들이란 집단의 생존과 안위에 관련한 중대한 일입니다. 2001년 그 참혹한 9.11테러를 현장에서 겪고서 소수계는 다수 백인들의 손에 단숨에 날아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경험했습니다.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는 미주동포들에겐 생존의 문제입니다.

 

나는 H형이 미국의 정치와 사회에 관해서 오랫동안 연구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FTA에 관한 나의 입장과 실천을 그렇게 간단하게 평가해 버리는 것에 당황하고 놀랐습니다. 나에 관한 당황함이 아니고 H형의 신중함을 내가 모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마도 H형의 자리가 그렇게 본인을 포로(捕虜)로 만들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노무현대통령 때에 한미관계는 정말로 불편했습니다. 그것이 한국이란 주권국가로써의 일이라고 이해되기는 하지만...미주한인들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한미관계가 틀어지면 이곳저곳에서 한인들이 테러를 당하는 위험이 생기게 됩니다. 미주한인들은 한국을 위해서 일하라는 한국의 에이전트들이 아닙니다.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엔 미국의 편에 서야만 하는 미국의 시민입니다. 한국이냐, 미국이냐의 선택은 어머니냐 아버지냐를 선택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H형 !

FTA는 한국과 미국을 두 개의 나라지만 몸통을 하나로 만드는 수준의 관계입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겐 논란의 여지가 많겠지만 미국내 한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주 극소수, 여기가 미국이지만 한인 타운에서만 살아가는 몇몇의 한인들은 “FTA 반대다 우리나라에 불리하다...” 라고 합니다. 그때에 우리나라는 ‘한국’이라 합니다. 숨겨야 할 불법입니다. H형이 옛날의 우정을 생각한다면 그 우정은 한국과 미국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논리를 개발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1992년 LA의 폭동으로 한인들이 쫄닥 망하고서는 한인커뮤니티의 (권리)이익에 충실하는 것이 나의 시대정신이 되었습니다. 한미FTA를 위해서 연방의원들을 찾아다니며 동의해 줄 것을 호소하고 설득하고...그렇게 했던 나의 행위는 절대로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한미FTA가 미국내 한인커뮤니티의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이익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한미FTA가 한동안은 미국의 정치권에서 미국에 불리하다고 판단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때엔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토론토의 G20에서 오바마대통령께서 FTA가 미국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발언하고서야 우리가 나서게 되었던 것이 그래서였습니다.

H형 !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고서, 꼭 20년 만에 서울을 갔습니다. 서울이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에 서러웠던 것이 아닙니다. 나를 반겨줄 것이라 기대했던 사람들이 20년 만에 찾아간 나에게 “미주동포는 저만 잘 살기 위한 이민이었기때문에 매국의 성격이 있다, 중국이나 중앙아시아의 이민은 독립운동 이민이다..” 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민주화운동의 명망가(名望家)들이 뉴욕을 오갈 때에, 현장을 떠나있다는 죄책감에 그분들을 위해선 무엇이든 했었습니다. 서울은 바로 그러한 분들의 세상이었습니다. 호텔에서 움직이지도 않다가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사회. 정치적인 철이 들었고 가장 정직한 사회 운동가가 되었습니다.

H형 !

2007년, 연방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때에 H형은 오히려 나보다 더 흥분하고, 환호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우리가 만났던 20대 때나 시대정신에 충실하려는 나의 의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H형에게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한국계미국인입니다. 나는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회적 소수로 태어난 나의 아들에게 (역할론적으로)예의라도 갖추어야 하겠다”는 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한국을 위해서 FTA를 반대하고 저지하라는 그런 기대는 나에겐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이 (FTA반대세력의 주장대로) 한국을 위하는 일이라도 한인커뮤니티에 이익이 아니라면 나는 그 일에 나설 용의가 없습니다. ‘민족역량구축’이란 큰 차원에서 민족성원끼리 우리가 연대의 대상임은 분명하지만 미주동포는 한국에서 파견한 한국을 위한 에이전트가 아닙니다. 민족발전을 위한 하나의 주체역량(主體力量)입니다. 이것은 미주한인들을 사회.정치적으로 규정하는 가장 기본이고 핵심입니다.

H형 !

SNS를 통해서 H형이 나를 그렇게 몰아붙이니까, 뉴욕의 가을이 우울합니다. 단풍이 없는 가을이 왜인지 알 것 같습니다. H형! 20대때에 H형이 나에게 한 말처럼 공부하는 일과 철드는 일은 정말로 별개인가 봅니다.

뉴욕에서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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