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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워싱턴워치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2006년 한국 인사로는 처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상원의원 시절 단독 인터뷰했고 미 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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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희..1.5세 첫 연방하원의원 만들자

글쓴이 : 김동석 날짜 : 2011-05-16 (월) 22:11:47

2006년 1월, 뉴저지주에서 뉴왁 다음으로 큰 광역도시 에디슨시에 한인이 시장으로 취임(就任)을 했다. 미 본토에서 선출직 시장으론 최초의 한인시장이라고 한국 내 언론에서도 떠들썩했다.

36살의 한인 1.5세 최준희(Jun Choi)씨다. 12년 동안 시장직을 독점해 온 뉴저지주 민주당의 거물인 ‘조지 스파도로(George Spadoro)’ 현직을 예상을 뒤엎고 꺾었다. 아시안계가 어떻게 광역시의 수장이 되겠는가? 라는 백인들의 냉소(冷笑)와 조롱(嘲弄)을 오히려 선거판의 인종차별 이슈로 만들어 버렸다. 현직과 그를 둘러싸고 있던 에디슨시 민주당의 터줏대감들을 전국적인 미디어를 통해서 인종주의자로 몰아쳤다.

전국의 아시안계 인권활동가들이 에디슨시 선거판에 몰려들었다. 뉴욕타임즈, 유에스에이투데이 등 유력한 일간지들이 이를 심각하게 다루어 보도했다. 미디어가 집중 된 틈을 타서 에디슨시의 장기집권 세력들의 부패와 무능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시민들을 선거판으로 끌어냈다.

정치독점 세력들의 위세에 주눅이 들어 선거 때마다 거수기(擧手機) 노릇만 하던 일반 시민들이 기회가 왔음을 알아차렸다. 경찰의 횡포에 시달리던 시민들이 한국인 최준희 후보에게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 최준희는 당 밖에서 만들어 낸 정치세력을 당내로 끌어 들여 시장직을 움켜쥐는데 성공했다. 민주당 소속이지만 당내에선 소수로 권력을 잡았다. 그야말로 에디슨시의 개혁과 변화를 부르짖으며 시장에 취임을 했다.

나중에 그렇게 평가됐지만 2008년도 오바마의 백악관 입성이 에디슨시의 최준희와 닮은꼴이란 이야기가 생겨나기도 했다. 2009년 1월 변화와 희망을 슬로건으로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은 전국의 70명의 시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프로그램에 7번째로 최준희 시장을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새 시대에 새 대통령을 요구한다고 강조하면서 1993년 대통령에 취임한 ‘빌 클린턴’은 민주당 대통령이면서 당의 울타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어떤 때엔 공화당보다도 더 우파정책을 취하는가 하면 어떤 때엔 시민사회 좌파들도 언급하지 못할 정도의 좌파정책을 취하기도 했다. 좌든 우든 국민들의 인기에 부합(附合)하기만 하면 되었다.

인기가 높은 쿨한 대통령으로 8년을 지내는 동안 민주당의 정통파들 간엔 당의 정체성 논란이 일었다. 2000년 대선전에 당의 정체성을 부르짖으며 ‘앨 고어’를 위협 했던 인물이 ‘빌 브래들리’ 후보였다. 빌 브래들리를 이어간 것이 2004년 돌풍을 일으킨 ‘하워드 딘’이었고 그러한 맥락을 이어서 마침내 민주당의 정통성을 회복하며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 것이 2008년 오바마의 대선승리였다.

최준희 시장은 일찌감치 선출직 정치인으로의 꿈을 꾸면서 2000년도 20대의 나이에 ‘빌 브래들리’ 캠프에 뛰어 들었다. 그는 일찌감치 민주당의 흐름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빌 브래들리’ 는 최준희의 정치 스승이다. 2005년 시장선거 때엔 ‘빌 브래들리’가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주기도 했다. 브래들리는 당시 초선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최준희의 선거지원 유세로 에디슨시로 불러오기도 했다. 그 유명한 2005년 9월, 오바마의 최준희 지원유세다.

당시 에디슨시는 뉴저지주에서 가장 무능하고 부패(腐敗)한 민주당 권력으로 악명높았다. 외부 신인이 시장이 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아야 할 판이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같은 당의 현직시장이 예비경선에서 패하고는 본선거전에선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겠는가. 결과는 당 밖의 대중적인 지지로 아슬아슬하게 최준희의 당선이었다.

최준희는 망설이지 않고 개혁의 칼을 들었다. 만 2년 동안의 경찰노조의 협박과 회유에 아랑곳하지 않고 비대해진 경찰조직을 절반으로 감축했으며 무능한 공립학교 교사들을 정리해서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성공했다. 개발사업의 부정과 부패를 척결(剔抉)해서 최악의 시 예산을 정상화 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당내 기득권 세력들이 똘똘 뭉쳤다. 그럼에도 최준히는 2009년 재선시장에 도전 할 때 당권파들로 부터의 야합(野合)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결국 그는 재선을 위한 예비선거전에 실패했다. 지역신문에서 ‘작게 지고 크게 이기는 최준희 시장’이란 기사를 쓰기도 했다. 10년 만에 주지사직을 탈환한 공화당의 크리스 크리스티 주지사는 취임 일성으로 에디슨시의 개혁이 모델이란 발언을 했다. 크리스티 주지사는 최준희에게 고위직을 제안하며 함께 일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2010년 중간선거전에서 처절하게 패한 민주당은 일찌감치 2012년 선거 전략을 짰다. 전국민주당위원회는(DNC)는 선거대책위원장에 뉴욕의 유태계 6선의원인 ‘스티브 이스라엘(Steve Israel)’의원을 선출했다. ‘낸시 펠로시’ 원내대표, ‘스탠리 호이어’ 원내총무, ‘제임스 클레이번’ 수석부총무와 함께 이스라엘 선거대책위원장은 2012년 선거전의 전략지역을 선정했고 반드시 하원의원으로 당선시켜야 할 후보들을 50명 선정했다.

3월 초순부터 이들을 순서대로 워싱턴으로 불러 들였다. 최준희 시장이 첫 번째 4명중의 한명으로 발탁이 되었다. 연방정치권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민주당 본부의 눈치를 살피던 최준희에겐 이보다 더 큰 행운은 없었다. ‘낸시 펠로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최준희에게 뉴저지주 제7지역구에 출마할 것을 권유했다. 에디슨시를 포함하는 뉴저지주 제7지역구는 지난 15년 동안 공화당지역이었지만 서서히 민주당 표밭으로 변하고 있는, 그래서 지난 2008년 대선전에선 오바마가 매케인을 이긴 지역이다.


지난 4월 29일 미국내 거의 유일한 한인정치참여 풀뿌리 운동단체인 한인유권자센타의 창립 15주년 행사의 초청연사로 참석한 최준희 씨는 행사직전 특별기자회견을 갖고서 2012년 연방하원 선거전에 뉴저지주 제 7지역구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한인 1.5세와 2세를 막론해 연방의원 도전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1990년대 캘리포니아의 김창준 의원은 1세 의원이었고 이번 최준희의 도전은 스스로 주류정치권에서 훈련받고 도전하는 가장 모범적인 첫 사례가 되는 일이다. 하원 진입에 성공하면 동부지역에서 아시안계로는 최초의 연방의원이다. 한인인구의 3배가 되는 중국계에 앞서서 연방하원에 한국인이 먼저 진입을 하는 셈이다.

미국의 연방하원의 평균 지역구 인구는 약 70만 명이다. 소수계 활동가들 사이에선 ‘연방의회에 한명이 있으면 90점이고 한명이 없으면 0점이다’란 말이 있다. 한명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535명의 연방의원 중에서 한명의 동료의원의 요청을 거부할 의원은 한명도 없다는 것이 워싱턴 의회의 불문율(不文律)이다. 한명이 무엇이든 한다는 것이다.

연방하원에 도전장을 내면서 최준희는 전문가의 눈으로 2012년 나의 도전은 ‘Wonderful Opportunity, The Best Chance’ 라고 했다. “에디슨 시장직의 성과를 중앙정치권에서 인정하고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고 하면서 “미국과 민주당에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나는 21세기의 더 나은 미국을 위해서 연방의원에 도전한다”고 출마를 선언했다.

후보가 되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지역에서 중앙당으로부터 먼저 출마권유를 받았다는 것은 그 스스로의 말처럼 ‘Wonderful Opportunity’ 이다. 이제부터 관건(Key)은 한인커뮤니티의 모금이다. 분단국가 출신의 한국인들에겐 더구나 연방의회 이슈가 많다. 아시안 코커스 의장인 ‘마이크 혼다’ 의원이 모금이 순서라고 말했을 때 필자는 그것을 무조건 문제없다고 했다.

2008년, 루이지애나에서 베트남계의 ‘조 카오(Joseph Cao)’씨가 공화당 후보로 연방하원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전국의 베트남 출신 이민자들이 흥분했다. 그들은 자국계가 연방의원이 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모금운동을 펼쳐서 5개월 만에 2백여만 달러를 모았다.

그러한 지원에 힘입어서 ’조 카오‘는 공화당 후보가 되었고 11월 선거에서 연방하원에 당선되었다. 현재 아시안계 연방의원은 10명이다. 상원이 2명, 하원이 8명인데 일본계는 5명이고 중국계가 2명이다. 한인사회가 더 이상 뒤처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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