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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워싱턴워치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2006년 한국 인사로는 처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상원의원 시절 단독 인터뷰했고 미 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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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하원외교위원장 일리에나 로스-넷트넨과 한인사회의 인연

글쓴이 : 김동석 날짜 : 2010-11-22 (월) 10:06:06

플로리다 제18지역구는 마이애미를 포함하는 미국 대륙의 최남단이다. 70만 정도의 인구중에 남미계가 65% 를 넘고 있는데 거의 모두 쿠바계다. 1960년대 카스트로 혁명정부를 피해서 배를 타고 탈출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카스트로 혁명정부에 대항하는 공동의 정치적인 목표를 갖고서 스스로 똘똘 뭉쳐있다.

그들은 1980년대 들어서면서 그들 스스로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을 만들어 냈다. 쿠반 커뮤니티에서 교육자(공립학교 교사)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일리에나 로스-넷트넨(Ileana Ros-Lehtinen) 씨를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으로 당선시켰다.

그녀는 8살안 1960년 가족과 함께 쿠바를 탈출하여 마이애미에서 자라났다. 당시 30세인 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은 이민자 가정의 자녀교육에 관심을 갖고 의정활동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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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제18지역구의 민주당 현역의원이 갑자기 사망했다. 전국의 쿠바계 미국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일리에나 로스-넷트넨‘을 18지역구 보궐선거(補闕選擧)에 출마시켜, 전국적으로 모금운동을 통해서 그녀를 연방하원에 당선시켰다. 전국의 쿠바계에겐 민주당, 공화당이다 구분이 없었다.

히스페닉계중에서 가장 우수한 커뮤니티인 쿠바계가 스스로 뭉쳐서 ’일리에나 로스-넷트넨‘을 연방하원에 입성시킨 것이다. 쿠바계로는 최초의 연방의원이고 남미계 최초의 여성연방의원이었다.

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의 정치적인 기반은 플로리다의 쿠바계 커뮤니티이고, 사명은 카스트로 혁명정부를 반대해서 탈출한 미국내 쿠반계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일이다. 그녀는 그러한 자신의 의지에 대해서 숨기지 않고 목소리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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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중간선거전에서 공화당은 1994년 40년만에 탈환(奪還)한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12년 만에 다시 민주당에 돌려주고 말았다. 선거에서 진 정당의 지도부는 대대적으로 교체된다. 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은 워싱턴 의정활동의 1차 목표인 외교위원회의 지도자가 되는 기회를 포착했다.

외교위원회의 가장 거물인 공화당내 서열1위, ‘헨리 하이드’의원이 은퇴를 선언했다. 외교위의 랭킹멤버(간사역할)를 놓고 캘리포니아 출신의 ‘에드 로이스(Ed Royce)'와 치열하게 경쟁했다. 에드 로이스 의원은 캘리포니아 한인밀집지역을 지역구로 하는 9선의 연방하원이고 그가 외교위원회에 있는 이유는 한반도(한인유권자)를 의식해서다.

전국의 쿠바계의 지원(Fundrasing)을 받은 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은 마침내 외교위원회의 랭킹멤버(간사)가 되었다. 에드 로이스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한인커뮤니티의 모금실력과 쿠바계의 그것과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 그녀가 외교위원회의 랭킹멤버가 되었기때문에 지난 만 4년 동안 외교문제 관련해서 그녀의 이름이 공중파 미디어에 단골로 오르내리게 되었다.

외교위의 랭킹 서열을 놓고서 그녀와 경쟁한 에드 로이스 의원의 지역구가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이기때문에 그녀가 에드 로이스와 경쟁할 때에 한인들이 에드 로이스 의원을 밀고 있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그녀로부터 뉴욕의 한인유권자센타에 문의를 받기도 했다.

오바마가 의식하는 거물 의원

2008년, 오바마의 돌풍은 플로리다에도 예외없이 거세게 불어 닥쳤다. 20년 이상 공화당 텃밭인 일리에나 로스-넷트넨의 지역구도 대통령선거에선 민주당의 오바마에게 빼앗기고 말았지만 하원선거에선 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이 거의 20% 이상의 압도적으로 차이로 이겼다. 쿠바인들의 정치적인 결집력(結集力)이 그와 같은 기록을 만들어 냈다.

 

2008년 대선직후 오바마 당선자는 자신이 이긴 지역에서 오히려 더 큰 차이로 민주당을 압도한 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에게 주목했다. 더구나 그녀는 외교정책에선 대통령의 파트너다.

오바마 당선자는 당선자 신분으로 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에서 “오바마입니다”란 말에 그녀는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장난하는 전화로 알고 “장난치지 말라!”고 하면서 그냥 끊고 말았다.

오바마 당선자는 비서실장인 ‘램 이매뉴엘’을 통해서 통화를 시도했지만 백악관이란 말에 그녀는 또 전화를 끊고 말았다. 이매뉴엘 비서실장은 민주당 외교위원장인 ‘하워드 버맨’을 통해서 오바마 당선자와 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을 겨우 연결시켰다. 그 당시 세계적인 이야기 거리가 되기도 했다.

20여년 이상, 그녀의 연방의회 의정활동 기록(Voting Record)을 보면 사회문화 가치 이슈에 있어서는 중도적(공화당내 리버럴)인 입장을, 외교 경제 안보 이슈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1994년, 공화당이 40년 만에 하원을 접수한 깅리치의 대 힛트 작품인 ‘미국과의 계약(The Contract with America)’에 그녀는 서명을 하지 않았다. 사회이슈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란 이유에서다.

그녀는 소신파(所信派)다. 2007년 미국내 한인들이 풀뿌리 운동으로 상정시켜 통과시킨 일본군위안부결의안 에 대해서도 그녀는 의지를 갖고서 지지해 주었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일본의 아베 총리실의 협조 요청에 근거해서 공화당 지도부에 결의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그래서 공화당 지도부는 전반적으로 결의안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은 인권문제를 앞서는 어떠한 당론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적극적으로 동의해 주었다. 덕분에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여론을 넘어설 수가 있었다.

더구나 그녀는 외교위원회의 랭킹멤버였기 때문에 결의안에 대해선 최고의 공로자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녀는 쿠바의 혁명정부를 탈출한 사람답게 철저한 반공주의자다. 의회내에서 가장 강경한 반중국 노선을 주장한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이 북경에서 후진타오를 만나고 있는 중에 그녀는 하원외교위원회에서 ’대(對)대만 무기판매허용촉구법안‘을 다룰 정도로 중국관련 강경한 입장이다.

특별히 공산국가내 인권문제에 민감하다. 북한 인권문제 관련해서는 상원의 샘 브라운백, 하원의 일리에나 로스-넷트넨이 거의 상징적으로 이름이 나 있을 정도다. 지난 3월에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 때에도 가장 민감하게 나서서 북한을 지목해서 성토(聲討)한 인물이다.

그녀는 지금 북한을 테러리스트 지원국가 리스트에 재지정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구고 있다. 지난 5월 이재오 권익위원장이 의회를 방문하여 그녀를 만난자리에서도 그녀는 오히려 이재오위원장에게 북에 관한 경각심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연방하원 외교위원장은 미국외교의 중심

지난 11월2일 중간선거전에서 민주당후보의 도전을 70% 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리고 12선(24년)의원이 되었다. 연방의회 묵직한 거물이 되었다. 연방의회가 철저하게 상임위 중심으로 운영이 되고 공화당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여성 상임위원장 후보다.

공화당 지도부의 목표가 한, 두명의 여성위원장을 낸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녀는 일찌감치 차기 외교위원장임엔 이견이 없다. 더구나 일리에나 로스-넷트넨‘의원은 ‘존 뵈이너’ 원내대표와 막역한 사이이고 원내대표가 요청한 금액의 정치자금을 공화당 지도부에 납부 완료한 상태이다.

외교위원장은 미국 외교의 중심이다. 2009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직후, 국무부 대변인의 브리핑을 모 한국 특파원이 잘못 해석해서 뉴스에 올린 적이 있었다. “국무부(미국)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전제(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을 확인하느라 필자는 하워드 버맨 외교위원장을 접촉했다. 위원장의 한 마디가 ‘위원장이 모르는 미국의 외교정책은 없다’란 대답이었다. 이것이 미국의 대외정책 관련한 연방하원 외교위원장 자리다.

필자는 지난 만5년 동안 워싱턴 정치를 경험하면서 외교위원장의 역할이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절감(切感)했다. 동시에 하원 외교위원장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한지에 대해서도 반복해서 경험했다.

신사참배를 이유로 고이즈미 총리가 워싱턴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려는 것을 막아낸 것도 외교위원장이었고 아프카니스탄의 샘물교회 선교사들을 그만한 정도에서 구출할 수 있는 것도 외교위원장의 권한이었다. 2007년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통과 시키는 과정에서도 백악관의 입김을 막아낸 것이 연방하원 외교위원장 자리였다.


외교위원장과 한인들과의 인연

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과의 직접적인 인연은 2007년 1월부터였다. 뉴욕의 한인유권자센타는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하원에서 통과 시키려고 결심을 하고 외교위내 공화당 랭킹 멤버인 일리에나 의원과 접촉을 시도했다.

접근이 쉽지 않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그녀가 가는 행사장마다 찾아다니며 집요하게 접근해서 안면을 익혔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끄집어내는 일에 공화당측은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당시 ‘조지 부시’ 권력이 수행하는 이라크전쟁에 일본의 기여도(其餘度)가 큰 이유에서였다. 공화당 의원을 설득해서 결의안에 동의를 받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일리에나 의원이 인권문제와 여성이슈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공화당측의 작업이 수월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처음엔 들어 주었고, 다음엔 대화의 상대로 여겨주었다. 그리고는 동의는 하지만 소극적이었고, 결국엔 공화당측 의원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설득해 주었다. 나아가서는 당시 외교위원장인 유태계의 영웅인 고 ‘탐 랜토스(Tom Lantos)’의원과 결의안 통과를 위해서 긴밀하게 협력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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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과의 이같은 인연과 친분은 정말로 행운이다. 인권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한인들에 대한 그녀의 인식이 달라졌고 평가가 높아졌다. 지난 7월26일 뉴욕의 한인들은 일본군위안부결의안 3년을 기념해서 그동안 일본이 아무런 변화나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의원들에게 직접 묻고 따지는 활동을 벌였다.

학생들을 직접 만난 의원들이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하는 어린 학생들의 갸륵한 정성에 감동을 받았다. 특별히 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은 한인학생들의 의사당 앞의 기자회견장에 직접 참가해 주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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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에나 의원은 지역구에서 돌아오는 공항에서 기자회견에 대한 소식을 알고서는 다른 두가지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기자회견장으로 달려온 것이다. 그녀로부터 받은 한인학생들의 감동은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다. 외교문제 관련 가장 몸값이 비싼 의원이 직접 회견장에 나타난 것이란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제서야 의회내 언론들이 달려 나왔다. 그러한 여파로 ‘애니 팔레오바마엥가(Eni Faleomabaega)'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원장은 외교위원회의 이름으로 특별성명을 전체회의를 통해서 발표하기로 약속을 해 주었다.

일리에나 로스-넷트넨 의원과 뉴욕한인들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2008년 독도명칭문제가 의회 도서관에서 발생했다. 곧 이어서 미국지리위원회에서도 독도란 명칭을 바꾸겠다는 입장이 나왔다.

긴급한 상황에서 뉴욕의 한인들은 일리에나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는 대통령(당시는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그리고 국무부의 라이스 장관에게 연락을 취해 주었다. 독도란 명칭을 지금 변경하면 한국과 일본간 분쟁이 발생하고, 우방국끼리의 분쟁은 지금 미국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그것을 철회(撤回)하도록 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해 주었다.

 

그해 9월 뉴욕의 한인동포사회는 일리에나 의원을 뉴욕으로 초청해서 감사하는 음악회를 열었고 한인이 운영하는 사우나로, 네일살롱으로 안내하면서 한인커뮤니티의 건강한 모습을 직접 소개하고 알렸다. 그녀와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 졌다.

그 후로 그녀는 워싱턴서 일이 있을 때 마다 뉴욕의 한인들을 초청해 주었다. 워싱턴 의사당 뒤편의 그녀의 타운하우스를 방문해 보면 ‘장비파’라는 한국의 판화작가의 작품, ‘한국시골풍경’이 응접실 한가운데에 걸려있다. 그녀가 한국인들과 가깝다는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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