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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 Cuba! 쿠바 만세! (1)

‘쿠바, 큐바 그리고 꾸바’
글쓴이 : 김치김 날짜 : 2015-07-28 (화) 13:29:59


Cuba Flag Door  1 - Copy.jpg

 

오늘은 올 여름 들어 최고로 더웠던 날이다. 일기예보에는 화씨 96도 라고 했지만 체감온도는 100도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 스케쥴이 잡힌 날이라 식물원의 텃밭에 가서 토마토 줄기를 묶고 잡초를 뽑는 일로 일을 반나절을 뙤약볕에서 일을 했더니만 얼굴로 화기(火氣)가 가득 올라와서 백주대낮에 술 걸친 양 불콰해져 보일 정도였다.

 

태양광선은 어찌나 강렬하던지 옷을 뚫고 피부에 꽂힌다 싶게 따갑기 그지 하였다. 땀은 닦고 또 닦아도 흘러내리는 모양새가 사우나 안의 '불가마' 속에라도 들어갔다 온 양 온통 땀 범벅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결코 익숙하지 않은 열기와 더위였음에도 이상하리만치 오래전 부터 길들여진듯 익숙하게 반응하였고 편안하기 까지 하였다. 이 불볕 더위 속에 무슨 당치않은 반응인가 따져보니 얼마전에 다녀온 쿠바의 날씨가 딱 이랬었음을 깨닫게 했다. 쿠바에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드니 반가움에 폭염(暴炎)을 즐기게 까지 되었다. 언제 갔다왔었나 싶어 날짜 계산을 해보니 뉴욕으로 돌아온 지 오늘로 만 3개월을 넘기고 있었다.

 

1월 맨해튼에서 뉴욕타임즈가 주최하는 '트래블 쇼' TravelShow'가 열렸는데 국제적인 규모답게 올 해 부상하는 핫(Hot)한 여행지는 어디인지 여행상품으로는 뭐가 나왔는지 두리번거리는 여행 및 관광업계 종사자들과 여행지를 찾아보기 위해 나온 뉴요커들로 행사장은 발디딜 틈 없이 북적대었다. 여느해와 다름없이 그저 그렇고 그런 쇼구나 하고 한바퀴를 돌아 나오려는 찰나 한 광고문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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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로 오세요!' 라는 문구가 크게 걸린 Cuba 여행 부스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셋 씩이나. ', 가자. 쿠바로!' 속으로 쾌재(快哉)를 불렀다. 하지만 그들 역시 언젠가 풀릴 것을 대비해서 홍보하러 나온 차원이었을뿐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가능한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도 거의 포기했다시피한 쿠바여행을 다시 세워볼 수 있겠구나 하는 계기는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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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하루 걸러가며 쿠바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2월 중순이 되면서는 쿠바에 대한 소식들이 조금씩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비자나 절차 등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수속이나 절차가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었으며 요구하는 서류가 너무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항공료 또한 일반 캐러비안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두배가 훨 넘는 1000 달러가 넘는 가격에 책정되어 있어서 갈등하게 되었지만 이런 기회가 늘 있는것도 아니고 이왕이면 역사적인 순간을 같이 하고 싶다는 욕구에 불문곡직 에 '감지덕지'하는 기분으로 그들이 요구하는 절차를 다 밟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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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 쇼로 부터 두달 반이 지난 3월 중순 드디어 항공권이 우편물로 배달되었고 JFK 공항에서 쿠바의 수도 아바나로 가는 직항편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쿠바까지는 불과 3시간 밖에 안 걸리는 짧은 비행거리였지만 그곳에 가겠다고 마음 먹은 싯점부터 도착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3년이라는 세월이 소요 되었다.

 

일반적인 대개의 미국인들이 그렇듯이 '쿠바는 위험한 공산주의 국가' 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인지 '다른나라는 다 가도 쿠바만큼은 반대한다' 라는 옆지기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야 했다. 적지않은 나라들을 누벼 본 입장에서 쿠바라는 나라는 내게 있어 '꼭 가봐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나라였지만 집안 분위기까지 경직(硬直)시켜가며 싸워서 갈 것은 아니어서 애시당초 오래전에 꿈을 접어야만 했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이미 공식적인 항로나 노선은 없었지만 미국과 쿠바는 비공식적으로 물 밑 작업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쿠바계 미국인들이 수시로 쿠바를 들락거렸고 컴퓨터, 방송, 음악 등 예술분야 종사자들 중에는 단체로 전세기를 띄워 오고 간지도 꽤 되었다. 단체를 통하지 못하는 미국인들은 개별적으로 다른 나라를 경유했으며 '오는 미국인 막지 않는다'는 방침하에 행여 불이익이 당하지 않도록 별도의 용지에 입국도장을 찍어주는 배려(?)까지 아끼지 않아서 미국인들이 사업상 혹은 여행으로 자유롭게 오고 간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지기는 어찌되었거나 '불법은 불법' 이라며 쿠바 행에 대해서 만큼은 탐탁치 않아했으니 더러 좋은 기회가 있었어도 번번이 성사되질 못하였다.

 

, 여지는 남겨 두었다. 친구가 있어 동행을 하거나, 어느 싯점에 미국과 수교가 되어 직항이 뜨게 되는 날이 오거든 그때는 두말없이 혼자라도 말리지 않겠다는 (성사되기 불가하다라고 여겨졌던 탓에) 조건을 내걸었을 때는 두말없이 의견에 동의했다.

 

진즉부터 쿠바에 가고 싶다고 목을 메던 친구 하나가 있었다. 힘든 조직생활로 해서 개인적인 여가를 쓸 수 없는 탓에 불만인 그 친구는 사표 내는 날, 뉴욕으로 날아와 같이 캐나다를 거쳐 쿠바로 가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러기를 10년 그러다가 몇 해 전 드디어 퇴직을 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가능성'이 보인 나는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퇴직 하자마자자 얼마 되지 않아 강원도의 심심산골에 땅을 사더니만 급기야 귀농을 선언하고 서울을 떠났으며 언젠가부터는 철철이 해야 하는 농사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가한 겨울조차 메주 쑤고 된장 담는 일로 토박이 농사꾼 버금갈 정도의 바쁜 일상에 빠져 들고 있었다. 언제 갈것인가 물으면 '바쁘니까 다음에 가자'고 했지만 부도수표(不渡手票) 남발이나 다름없었고 동행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어 버렸다.

 

이제 쿠바 갈 일은 영영 없겠구나 싶어 낙담이 되어버리니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스페인어 독학도 의미가 없어 접어버렸다. 작년 12월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회장이 만난 정상회담을 통해서 미국과 쿠바의 냉전 및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하겠다는 발표가 있기 전 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정상 회담 직후부터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만 넉달만에 뉴욕 JFK 공항에서 아바나로 가는 직항편이 드디어 생겼다. 1961년 단교 했으니 54년 만의 일이었다. 내가 타게 된 아바나(Havana) 직항편은 '선 컨츄리'라는 이름의 전세기로 140 여개 좌석을 보유한 보잉 737 기종으로 빈자리는 하나도 찾을 수 없는 만석(滿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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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출발 예정인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탑승 수속을 4시간 전에 마쳐야 한다는 항공권 판매를 독점한 쿠바 여행사의 주의사항에 따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짐을 챙기는 부산함을 떨어야 했고 공항에 도착해서는 세월아 네월아 해가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고도 긴 탑승 수속을 마냥 기다리다보니 비행기가 활주로를 빠져 나가기도 전에 이미 파김치가 되어 버렸다.

 

기내의 승객들은 대부분 쿠바계 미국인들로 나이는 50대에서 80대로 이륙하기 전까지는 긴장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였다. '정말 쿠바로 가는건가?'하는 눈빛들이 그들끼리 서로 교환되었고 이륙을 해서야 비로소 긴장을 푸는 듯 보였다. 하지만 쿠바를 떠난 뒤 처음 밟아볼 고향 땅에 흥분 때문인지 이륙부터 착륙까지 단 일초도 쉬지 않고 스페인어로 주야장천(晝夜長川) 떠들어대는 이들로 짜증이 났지만 밋밋할 수 있었던 내 첫 쿠바 방문은 짜릿하고 실감나게 ' 쿠바로 가는 비행기가 맞긴 맞구나'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 옆에 3줄 짜리 좌석에서 양 옆으로 쿠바인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앉게된 나는 바로 옆좌석의 70대의 쿠바 할머니로 해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손톱을 매만지고 승무원을 수시로 큰소리로 불러가며 물을 요청하는등 비행 내내 연신 몸을 가만있지 않았다. 전형적인 불안 초조 증상이 역력했다. 몇번씩이나 '우리가 정말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을까? 믿기지가 않아서 그래요' 라던 그 할머니는 전세기가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미끄러지듯이 착륙하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눈물범벅에 흥분과 감격을 가누지 못했다. 비행거리라고 해봤자 불과 3시간 반 남짓이었는데 54년의 세월을 거슬러서 멀리 멀리 돌아왔으니 50년 만에 밟아본 고향에 어찌 감격하지 않으랴 싶어 한참을 안고 등을 토닥거려야만 했다. 다른 쿠바인들 역시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치고 서로 부둥켜 안고서 이쪽 저쪽 볼 뽀뽀를 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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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륙 직전 고도를 낮출때 기내 창을 통해서 바라다 본 아바나의 풍경은 다분히 목가적(牧歌的)이었다. 야자수가 풍성했고 대지는 초록색이었으며 무엇보다 군데군데 붉은빛이 도는 황토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서해안 바닷가 쪽이나 전라남도 땅 어디서나 보이던 그 흙이구나 싶으니 사뭇 낯익고 정감가는 모습으로 편안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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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임시계단 몇개를 내려 쿠바 땅을 밟았다. 청사가 아닌 대지를 밟고보니 교황이 트랩에서 내려오자마자 방문국 땅에 입을 맞추는 의식을 치르듯이 나도 그러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후끈한 바람이 확 밀려왔다. 오리털 졈퍼에서 갑자기 민소매를 입는 캐러비안 날씨를 마주하고 보니 숨이 턱 막혔다. 사람들이 어울려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여느 공항처럼 '테러'운운하면서 사진 찍으면 큰일나는 식으로 주의를 주거나 하는 이는 없었다. 100여 미터를 걸어 청사로 들어갔다. 국제공항이라고 이름하기엔 초라할 수도 있고, 보기에 따라서는 소박하다고 느끼는 청사였는데 적어도 내겐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입국심사는 생각외로 간소했다. '쿠바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직원의 짧은 인사와 함께 2주 안에 아프리카를 여행한 적이 있는지 방역차원에서 묻는 의례적인 질문만 하고 이내 도장을 찍는 것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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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찾고 환전(換錢)을 한 다음 청사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대해서는 정말 할말이 많지만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것 같다.) 쿠바땅에 도착한 첫 신고식을 마치고 손을 씻고 밖으로 나오니 후덥지근한 바람과 함께 소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플래카드를 가지고 나온 이도 있었고 구경나온 이들 그리고 친척을 마중나온 이들로 웅성거렸으며 개중에는 승객을 붙잡으려는 기사들로 복잡했다.

 

청사 밖으로 나오는 이들을 향해 박수를 치는 소리, 성미 급한 이들이 기다리는 이들의 이름을 불러대는 소리, 환호성과 가족상봉을 할 때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들이 섞이고 있었다. 그럴때마다 묵직한 방송 장비를 어깨에 걸친 카메라 맨과 마이크를 쥔 기자 그리고 보조 카메라맨으로 조를 이룬 이들은 울음소리가 난 가족을 향해 부산하게 플래쉬를 빵빵 터뜨리면서 쿠바도착한 극적인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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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 만인데 좀 천천히들 하지. 한참 얼싸안고 울고난 다음에나 마이크를 들이밀더라도 밀것을. 뭐 저리 성급하게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콧잔등이 시큰해 왔다. 그 모습을 보려니 남의 나라 상황으로 오지 않았다. 언젠가 보았던 '이산가족 상봉'생중계를 쿠바에서 재방으로 해서 보는 느낌도 들었고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에서 평양의 순안공항에 도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잠깐이었지만 감정이입(感情移入)이 되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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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일도 없지만 서둘러서 노란색 택시를 잡아탔다. 가능하면 빨리 공항 밖으로 빠져 나가고 싶었다. 아바나 공항에 도착해서 택시요금 흥정을 시작하는것 부터가 여행의 시작이라고 어디선가 들었지만 그럴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을뿐더러 자칫하다간 드라마 같은 가족들의 재회장면을 계속 보다가는 내 울음보가 터질것 같아 바쁜척을 해댔는지도 모르겠다. '올라, 뽀르파보르.' 안녕하세요 여기로 가주세요 라며 행선지가 쓰인 주소를 기사에게 내밀고는 택시 뒷좌석에 느긋하게 몸을 묻었다. 아바나 시내로 향하는데 묘하게도 20년 전의 베트남 호치민 공항을 빠져 나갔때 같은 느낌이 나기도 했고 캄보디아의 프놈펜 공항 외곽 풍경같다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어찌되었거나 체 게베라 얼굴이 차창 밖으로 멀리 보이고서야 내가 비로소 쿠바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Cuba Flag Door  1.jpg

제목 Viva Cuba! 그림엽서에 물감. 2015. 아바나 비에하(올드 하바나) 한 주택가의 대문에 빛바랜 모습의 쿠바의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쓰여져 있던 문구 Viva Cuba! 페인트 칠이 벗겨지고 풍상을 겪었지만 오래된 멋과 맛이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한참을 서 있게 만들었다. 다음 다음날 그곳을 다시 지나게 되었을 때 엽서를 꺼내 간단하게 스케치로 남겨 보았다.

 

 

720일 날짜로 보내온 쿠바노의 편지가 보여 반갑게 열어 보았다. 'Viva Cuba'라는 제목으로 들어온 이메일에는 단교한지 54년 만에 드디어 양쪽 나라에서 대사관 업무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있던 오래전의 미국 대사관은 리모델링을 한 뒤 같은 자리 같은 건물에서 비자업무를 시작했으며 아침엔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미국에서 보내오는 생중계를 봤다고 했다. 미국의 수도에 쿠바의 국기가 게양되는 것을 감격스럽게 지켜 보고 있는 모습들을 보노라니 참 감회가 새로웠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내 쿠바(Mi Amigo)’로 시작되는 이메일에 '오늘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쿠바에 그리고 쿠바인들에게 멀리서나마 축배를 든다'는 짧은 답장을 서둘러 보냈다.

 

오늘따라 유별나게 햇빛도 불볕 더위가 절정을 이룬 것은 쿠바 역사에 굵은 한 획을 긋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오래도록 오늘을 잊지 말라고 한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로하여금 쿠바를 추억하게 하고 더위 때문에 진절머리를 내고 도망치고만 싶어했던 그곳을 다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을까.

 

54년 이라는 두 세대를 아우르는 길고도 고통스러웠던 미국의 긴 봉쇄정책을 잘 견디어 낸 내 친구를 비롯, 모든 쿠바 국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쿠바여 영원하라! 쿠바 만세!

 

Viva Cuba! 

kimchikimnyc@gmail.com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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