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서너개가 있었어도 부족했을 시월 중순 시도없이 눈만 뜨면 전화통에 매달려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시도하면서 말할 수 없이 애가 탔다. 서울 다녀온지 겨우 넉달밖에 안된 무렵이었음에도 서울에 다시 갔다 와야겠다는 다급함이 든 것은 통화 할 때마다 느껴지던 ‘엄마의 불안감’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눈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막내딸인 나만을 찾는다’는 식구들을 말을 듣고 보니 갓난아기가 엄마만을 찾는 심정처럼 다급한 무엇이 느껴지면서 더는 미룰수도 지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무렵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상황에다가 최소한 약속된 날짜에 이사는 마치고 나와야 해야 상황이라 짐도 풀지 못하고 박스를 쌓아둔 채 비행기에 올랐다. 깊게 누적된 피로가 엄습했지만 긴 비행 내내 잠은 오지 않았고 상념들로 가득했다. 근 몇 년 사이에 엄마를 만날 때 마다 마치 ‘독감 백신’을 놓는 심정으로 예방주사 놓듯이 ‘요양원 이나 요양병원’에 대해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꺼내곤 했었다.
반복학습을 시키듯이 치매로 해서 24시간 누군가 돌봐드려야 하는 상황에 접어들면 그 곳으로 모실 수 밖에 없을 제반 여건이나 환경을 말씀드렸다. 현대인 누구나 밟게 될 길이니 너무 서러월랑 원망일랑 하지 마십사 우스갯소리 하듯이 바람결에 넌즈시 흘리기도 여러번. 그런 경우가 오게 되면 직접 내가 찾아 드릴것이고 내 손을 잡고 같이 가야한다고 미리 이해와 용서를 구했다. 그럴때마다 ‘그래야지. 세상이 달라졌는데~’라며 당신 역시도 자식 누구 하나 희생하게 되길 원치 않는다고 되뇌이시곤 했다.
말은 정작 그렇게 했어도 가족들이 하나같이 ‘치매증상’이라고 못 박은 현실에 당면하고보니 ‘요양시설’ 이라는 단어가 건물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내창을 통해서 흘러가는 구름들에 시선을 뺏기면서 오래전 봤던 잊혀지지 않는 특집 드라마 한편이 떠올랐다.
중산층 가정의 가족이야기로 치매를 앓는 노모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해프닝들을 담담하게 어느 한편으로 치우침 없이 그려낸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치매환자 역할을 극인지 아닌지 조차 구별 할 수 없을 정도로 실감나게 연기를 하던 정애란씨 라는 배우도 생각이 났다. 한진희, 김창숙 씨 등 이름있는 배우들이 아들과 며느리 역할을 맡았고 외국에 사는 큰 딸(박혜숙 분)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맞닥뜨리는 현실을 서로 다른 시각과 입장 그리고 갈등과 고통을 풀어내려고 고심했던 흔적이 보인 그 당시 보기드물게 긴 여운(餘韻)을 남기는 드라마 였었다.
이후로도 ‘치매’를 소재로 다뤘던 드라마가 심심치 않게 선보였지만 유독 그 내용이 깊게 자리했던 이유는 치매에 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막연했지만 표정연기를 통해서 내 집 이야기처럼 공감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결말에 이른 부분이 당시엔 충격적으로 왔었다. 그 까닭은 쉽사리 부모를 시설로 모시고 나간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할 때라 시설로 모셔야 하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정황(情況)과 심리묘사가 세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노인이 되어 간다는 것, 사회적인 체면, 자식으로서 갖는 죄책감, 가족 구성원의 역할과 책임, 인간의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 끝은 어디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들었고 돌아보게 만든 치매가 비단 한 개인이나 가정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될 수 있음을 조용히 경고했던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가장 큰 공감을 이끌어낸것은 치매를 앓는 환자일지라도 잠시잠깐이나마 맑은 정신이 돌아올때는 엄마로서 자식들에게 갖는 애틋함과 미안함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었으며 피폐해져 가는 가족관계를 엿보면서 치매가 얼마나 깊고 큰 상처를 남기는 병인지 환자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얼마나 극복하기 힘든 병인지 실감나게 그려주었다.
엄마를 보러 가는 길 내내 드는 생각은 정말 몇 달 사이에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정말 그랬다. 앞뒤 안맞는 엉뚱한 이야기의 연속에다가 환청(幻聽), 환시(幻視)를 동반한 증상은 누가 보기에도 치매와 같았다. 정말 치매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덜 다치면서 교통정리를 해야 할런지 생각하니 잠은 멀리 달아났고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나지 않았으며 두렵기조차 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되어 있다고 했던가? 어쩌면 그렇게나 많은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이라는 라는 간판들이 있던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심의 각 지역마다 크고 작은 곳들이 보였고 위치와 규모에 따라서 엄청나게 큰 시설도 있었으며 불과 몇 명 안되는 정도의 작은 시설까지 천차만별(千差萬別)일 정도로 세분화 되고 전문화 되고 있음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마음이 가 닿는 마음 놓을 곳은 없어 보였다.
간판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효자, 소망, 손길, 천사, 사랑, 감사, 한마음, 희망, 축복.....’ 등 이름들은 하나같이 따뜻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적이다 못해 추상적이었으며 모순되게 느껴오기까지 했다. 대비가 너무 심해서였을까 심한 부조화라고 느껴지면서도 달리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름이라도 붙여 씀으로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입장과 처지를 위로하고, 위로 해주려는 고심의 흔적은 아니었을까 여겨지니 이해가 안될 것도 아니었다.
넉달만에 만난 엄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심신이 쇠약해진 노인만 있었다. 초라하고 수척한 모습이었다. 체중이 빠져서 그랬겠지만 키는 더 작아진듯 싶고, 허리는 더욱 굽어졌으며, 얼굴은 형편없이 쪼글거렸다. 무엇보다도 오랜 입원으로 다리 근육이 풀어져 버렸는지 지팡이 하나만 의지해서는 걷기 힘들 정도로 후들거리는 모습이었다. 염색도 파마도 더는 하지 않은 엄마 모습은 평생을 곱슬거리는 파마로 있어서 그랬는지 낯설고 생경(生硬)스럽기까지 했다.
그리움이 깊으면 원망도 깊었으려나. ‘왜, 인제사 왔냐. 뭐하러 왔냐’ 며 토라져서 돌아앉으시기까지 했다. ‘먼 길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냐? 피곤하지’라고 챙겨주던 어른의 모습이 아닌 투정부리는 아이의 모습이 비쳐졌다. 그래도 눈이 짓무르게 기다리던 자식을 만난 안도감 때문인지 곧 환해졌으며 벙긋벙긋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벌린 입을 통해서 윗 앞니 좌우로 대칭으로 2개씩이나 휑 하니 빠지 치아를 보려니 넉달의 변화가 얼마나 컸는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리 엄마가 이젠 귀여운 토끼를 닮아가네’라며 맘에도 없는 너스레를 떠는 내 속을 헤아리지 못하는 엄마는 ‘야, 야. 엄마를 그렇게 놀리면 재미있냐? 그럼 못써’라며 등짝을 가볍게 후려치기까지 했다.
서울에 머무는 내내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먹고 자는것을 챙겼다. 형편없이 약해진 방광(膀胱)때문에 하루에도 열두번도 넘게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마다 지난번처럼 문턱에 걸려서 넘어져서 깁스하는 불상사가 생길까 싶어 잠시도 맘을 놓지 못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아기를 다루는 그런 심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와 같이 지냈다기보담 엄밀하게 따지면 관찰을 해야 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유심히 보았다. 말, 표정, 행동, 지각, 인지, 판단력 등등 하나씩 체크해 가면서 평상시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았다. 얼추 한달 반. 관찰로 시작했지만 추억을 만드는 일을 더 많이 했다. 입맛에 맞는 음식을 당신의 평소 조리법을 물어가며 하나씩 좋은 추억을 더듬어내고 짚어 내었다. 거북이처럼 정말 천천히 움직였지만 행여 서두르는 기색이 들킬세라 항상 한 발짝 뒤에 서 있었다.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유독 많이 붓는 왼쪽 발은 늘 족욕(足浴)을 해드렸고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만 했다. 못 부르는 노래도 음정 박자 틀려가면서 불러 드렸고 노랫말에 대한 바닥을 드러낼 때는음악을 틀어 드렸다. 하루는 루이 암스트롱의 ‘아름다운 세상(Wonderful World)’이란 노래를 틀었더니만 ‘그 가수 이름이 뭐냐? '현철'은 아닌것 같은데 신인이냐?’ 물어서 나를 포복절도(抱腹絶倒) 하게도 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된 것이 귀가 어두어지고 있는 엄마는 노래를 듣고 있었던것이 아닌 분위기를 즐기고 계셨더라는 것......
특히, 추억을 찾아 드리는 일을 열심히 했다. 자식과 함께 살면서 정리했던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기증된 박물관도 찾아가서 당신 눈에 익은 물건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드리면서 지난 세월을 짚어드리기도 했다. 때로는 정신건강상 좋을 것 같아 마음의 매듭을 풀어드리자는 목적으로 입이 아프도록 평생 우리와 함께 살면서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시킨 손윗 시누이들이던 두 고모와 아버지의 지난 흉허물까지도 건드려가면서 수다를 입이 아프도록 떨기도 했다.
잦은 입퇴원으로 결석이 빈번했던 탓에 데이케어센터에서 조차 퇴출당했다. 늘 혼자여서 그랬는지 수다에 지칠줄 몰랐다. 말을 많이 한 덕분에 휘어지게 많이 웃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보고싶던 자식에 대한 갈급(渴急)이 풀려서 엔돌핀이 많이 생성 되어서일까? 나와 더불어 지내는 동안 입맛도 회복했고 놀라울 정도로 활력과 생기를 찾았으며 얼굴에 근심 걱정이 사라진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시간 장소에 상관없이 종달새 마냥 끊임없는 재잘거림으로 얻은 수확내지는 믿음도 하나 생겼다.
반짝이는 살아 있는 눈빛을 확인했다는 것. 촛점도 살아났으며 어떤 욕구나 의욕도 느껴졌다. 자연의 순리대로 몸은 더욱 힘들어진 반면 오히려 어떤 면에서 눈은 더 천진(天眞)해지고 정화(淨化)된 그런 무엇까지도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스갯 소리도 곧잘 하셨고 내가 당신을 관찰하는 것을 느낄 때엔 여지없이 ‘엄마를 테스트하냐? 바보취급 하지마라. 너도 늙으면 그때 다 이해할거다’라며 뼈있는 멘트도 날릴 정도로 유머감각도 살아있음이 확인되었다.
짐작대로 치매가 아니었다. 입원 하면서부터 그리고 입원 후 내 드러난 여러 증상들은 뇌세포가 죽어서 생긴 치매가 아닌 일종의 뇌기능 장애로 일시적인 환청, 환시, 섬망증상들을 대동했던 것으로 체력이 뒷받침되고 신체기능들이 제자리잡아 가면서 구름걷히듯 그렇게 사라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저혈당으로 인해 힘든 고비를 몇번 넘기면서 영양면이나 체력면에서 균형이 깨졌던 것이고 그로 인해 일시에 병원에서 받은 많은 치료와 약물로 뇌가 혼란을 일으킨 영구적이 아닌 일시적인 장애로 판별이 났다.
컨디션이 좋아지고 영양이 갖춰지면서 뇌의 기능들이 제 역할을 하면서 그간의 갑작스러웠던 이상행동과 말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오히려 전보다 더 맑은 상태로 돌아간 더 총기(聰氣)있는 모습을 보였다. 거짓말 같았다. 마치 허구의 소설을 읽은것처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아졌다. 엄마의 모노드라마는 이렇게 끝났다. 혼자서 대본쓰고, 주연을 맡고, 감독까지 한 그런 드라마 한편 다름과 아니었다. 비록, 공중파를 타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시청하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시청율은 고작 가족 몇명에 그쳤지만 한편의 드라마처럼 극중에 반전(反轉)이 넘친 정말이지 땀을 쥐게 만들고 우리 모두를 바짝 긴장하게 만든 감동을 준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결말이 났다.
몇십년 엄마의 상태를 봐 온 주치의도 아니라고 하고 심지어 정신과 의사조차 치매는 아니다라고 했음에도 가족 모두는 치매라고 단정하고 더는 방법이 없다 라는 식으로 현실을 직면하자고까지 한 말이나 행동들에 자식의 한명으로서 송구하고 못내 죄스럽기 그지 없었다.
엄마에게서 작은 불씨가 다시 지펴지는 것을 확인하고 확신하는 상황에 이르자 엄마를 기쁘게 할 ‘깜짝 쇼’ 하나를 기획하였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 있는 자식들 모두 모여 당신의 건재하심을 축하해드리고 힘을 실어드리자는 취지로 그리고 모노드라마를 성공적으로 후유증 없이 잘 끝낸 기념으로 자축하는 의미의 1박 2일을 제안하였다.
기쁘게도 큰 고비를 무사히 넘게 해준 식구들에게 그 공을 돌리고 싶다시며 모임에 드는 모든 제반 경비는 당신이 모두 책임져 주시겠다고까지 하였다. 훌륭한 기억력, 높은 인지력, 지각과 판단력, 계산능력, 어눌하지 않은 언어구사와 경우있는 행동으로 보건대 엄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촬영도 나쁘지 않겠다고 확신했다.
이제 남은것은 대식구가 지낼 1박 2일 촬영(!)할 장소를 어디서 구할 것인지와 어떻게 재미나고 의미있게 차질없이 치룰 것인지만 남았다. 기내에서 ‘잊혀지지 않던 드라마 한 편’으로 내 무겁고 힘들게만 느껴지던 상황이 슬프지 않은 주제로 바꿔타면서 ‘잊지 못할 드라마’로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니 절로 환호성이 터졌다.
가자! 1박 2일!
Go!
▲ 제목/A Woman Figure Croquis 2013년 종이에 콩물. 설명/ 단골로 맡는 할머니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주연배우의 이름을 시작점으로 검색해 들어가보니 1995년 11월에 방송사의 창사 특집극이었다. 제목은 ‘인생’으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드라마 한편으로 그렇게 남아있다. 모델의 앉은 자세에서 극중에 나왔던 맏딸 옥자(김해숙 분)의 심정을 같이 오버랩 시켜 본다.
<下편 계속>
kimchikimnyc@gmail.com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53:15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