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들어서는 순간 ‘세상에나!(Oh, My Godness!)’ 라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나뿐만이 아니라 방문한 모든 이들이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고 할까. 짧게는 40 여년, 길게는 300 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퀼트(Quilt)’가 무려 651 점이 한자리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 3세기 레드 앤 화이트 퀼트 전시가 열리고 있는 파크 에브뉴 67가 소재한 아모리(Armory)빌딩 내부.
개인적인 관심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크게 열리는 퀼트 쇼나 전시 등을 찾아가보곤 했다. 퀼트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솜이 들어간 가벼운 홑이불이라 해도 되겠고 아니면 침대를 덮는 덮개로,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오랜 시간에 걸친 바느질 그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 퀼트엔 네모 반듯한것만 있지 않고 모서리나 끝 장식이 이렇게 된 것들도 많이 있다.
이곳저곳 열심히 쫒아서 본 경험으로 보건대 재활용 천들과 조각 천들을 활용해서 만든 것들로 색상만 따지자면 아주 현란하고 복잡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 노동은 가히 놀랍지만 색의 부조화(不調和)가 많아서 질린 적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흰색과 붉은 색 단 두가지로 조합된 퀼트의 전시는 절제된 통일감이 느껴져서 웅장하기까지 했다.
▲ 둥근 원탑 형태로 겹으로 걸어져 있어서 안쪽에서도 바깥쪽에서도 서로 다른 퀼트를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던지 그 넓은 공간에 이렇게 많은 인파로 채워지는 전시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 색을 단 두가지로 했을까?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것은 붉은 색과 흰색이라는 색의 대비 내지 구도가 가장 미국적이기 때문이다. 붉은 색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보니 1700 년대 서양 꼭두서니로 불리던 ‘매더 뿌리(Madder Root)’ 에서 채취해야만 얻을 수 있던 붉은 염료(染料)는 무척 귀한 재료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868년 ‘터키시 레드(Turkish Red)’ 라는 염료가 지중해를 거쳐 유럽을 지나 미국에 다다를 즈음 공장을 통해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된다. 이 무렵 붉은색이 일반인들에게 저렴하게 보급되는데 이를 기점으로 특히 레드 앤 화이트 퀼트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고 발달하게 되었다.
▲ 퀼트전 포스터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Infinite Variety)’ 이라는 큰 제목 아래 ‘3세기의 레드 앤드 화이트 퀼트’ 는 오랜 세월을 지니고 있음에도 훌륭한 보관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 모서리 형태가 독특한 퀼트는 겹치는 그림자들도 재미나다.
▲ 퀼트의 문양은 기하학적인 무늬, 이방 혹은 사방 연속무늬, 개인이나 각 지역의 역사, 성경 구절 등 참으로 다양하다.
또한, 작품에 걸맞게 작품을 뒷받침 해준 어퍼 이스트(Upper East) 파크 에브뉴에 위치한 유서깊은 아모리 빌딩 역시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천정의 꼭대기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높이, 사방으로 툭 트인 둥근 형태의 공간, 7개의 원탑처럼 둥글게 말아 올라간 기획 의도 역시 빼어나 보였다.
▲ 별은 퀼트에서 가장 많이 애용되는 상징 문양으로 미국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것 같다.
기하학적(幾何學的) 무늬들로 가득한 퀼트들을 보노라니 카드 게임을 하다 공중에 카드를 휘리릭~ 던져 흩뿌리는 모양같기도 하고, 텍사스의 광활한 대지에서 무섭게 말아 올라가던 토네이도를 연상시키기도 하여 시각적으로 통일된 구조를 보이고 있었다.
▲ 바닥에 누워서 퀼트를 감상하면 치마폭처럼 이런 모습으로도 보인다.
▲ 높이 걸린 퀼트들을 보려면 온 신경을 집중하고 봐야한다. 전시에 열중하는 관중들의 심각한 표정들.
더러는 여기저기 펄럭대는 퀼트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처럼 보여서 전시가 더욱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게다가 겹겹히 보여지는 퀼트는 마치 산의 능선마냥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이 시각적으로 무척 흥미로왔다.
▲ 퀼트와 퀼트가 서로 겹치면서 어우러지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다.
전시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주목받은 서비스도 있다. 관람객들이 감상하다가 자세한 정보를 원할 때 직접 전화를 걸어서 들을 수 있는 ‘자동 안내 시스템’이었다.
▲ 일명 메모리 퀼트라고 불리운다. 1800 년대 중반 만들어진 것으로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어려서 죽은 100 명의 아이들의 이름과 살다 간 시간이 적혀져 있다. 4개월 살다 간 루이스, 7개월 살다 간 파인이라는 아이의 이름이 적혀있다. 오래전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손들을 만졌을까? 유독 그곳이 때가 타 있었다. 퀼트를 통해서 지난 역사도 읽혀진다.
조앤나 로즈(Joanna Rose) 라는 미국 여성이 평생에 걸쳐 모은 수집품(蒐集品)으로만 이뤄진 이번 전시는 아메리칸 민속 박물관(American Folk Art Museum Presents) 에서 앞으로 기증 받을 ‘아메리칸 퀼트 1000 점’에 대해 감사하는 헌정 전시회로 마련되었다.
▲ 오랜 시간의 수고로움을 잘 알기에 퀼트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들 또한 모두가 진지했다.
▲ 10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퀼트가 빛을 받으면 홈질된 솜을 투과해서 그 뒷면조차도 조명등 마냥 은은한 빛을 띈다.
▲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나는 만큼 사진을 찍는 이들의 자세도 각양각색으로 진지하다.
맨해튼 한 복판에 살다보면 시도 때도 없는 사이렌 소리와 소음,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고층 건물 속에서 뒤집어쓰는 먼지, 높은 범죄 발생률, 콘크리트 숲속에서 느끼는 삭막함, 살인적인 임대료와 높은 생활 물가,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교통 정체 등에 지칠 때가 많다. 뉴욕 밖의 바깥 세상엔 영화처럼 아름답게 보일 것들이 실제로 사는 이들에겐 적쟎은 불편과 불만을 갖게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가 뉴욕을 사랑하는 이유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도 느낄 수 없는 것이 있어서이다. 방대한 규모의 다채롭고 다양한 쟝르의 문화 예술 행사들을 수준 높은 기획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한 쪽 벽에 평면 전시를 했다. 퀼트 하나가 홑이불 크기 정도 되므로 이 전시 공간의 규모를 대략 짐작 할 수 있다.
▲ 뉴저지에서 이 전시를 보러 3시간 운전하고 왔다는 두 사람은 한참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전시를 감상하는 내내 한 가지 주제로 일생을 투자한 수집가의 정열(情熱)을 느끼면서 한편으로 부러웠던 것이 있었다. 한 사람의 수집가가 투자를 떠나 공익을 위해 박물관에 흔쾌히 내어놓는 그 아름다운 기부정신,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박물관의 호의였다.
▲ 어떻게 이토록 섬세하게 만들었을까?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 어떻게 이만큼 모았을까? 놀라는 이유도 각각인것 같다. 어떤 이들은 전시에 압도 당해서 숨도 제대로 못쉬는것 같다.
▲ 이제껏 본 전시회 중에서 관람객이 가장 진지한 모습으로 보였던 유일한 전시로 기억될것 같다. 남녀노소를 떠나 모두에게 흥미로운 전시였음이 분명하다.
▲ 근래 들어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많이 몰린 전시가 없었다고 한다.
방문한 이들 모두가 표현하던대로 놀랍기 그지없는, ‘어메이징(Amazing!)’ 전시로 기쁨과 감동이 밀물같은 하루였다.
제목/ Figure Image 2009 종이에 붉은 색연필 설명/ 레드 앤 화이트'Red and White'는 미국이란 나라를 가장 잘 표현하는 전통적인 색이라고 할 수 있다. 크로키 할 때 붉은색을 잘 쓰지 않는 편이지만 흰색 바탕에 붉은 색으로 그린 이미지를 하나 찾아 보았다.
김치김 kimchikimny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