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오전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전철을 타고 한 시간 거리인 코니 아일랜드 역에 내렸다. 1916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98년 째 이어지는 ‘핫도그 빨리 먹기 대회’ 장소인 네이슨스 핫도그(Nathan's Hot Dog Eating Contest 2014) 광장 주변은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수많은 인파들과 이를 제지하는 경찰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몇 해 전 대회 구경왔다가 거대한 인파에 떠밀려 기함을 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던터라 다시는 가볼 엄두조차 못냈는데 운이 좋게도 대회 주최자 가족과 친구들에게 발급되는 특별 입장권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덕분에 수월하게 경기를 앞자리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어 거리는 좀 있었지만 2층의 정면에서 대회의 진행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볼 수 있었다.
소강(小康) 상태를 보이던 빗줄기가 본격적으로 내리자 대회진행을 맡은 이들은 행여 접시마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핫도그가 젖을까봐 노심초사하며 서둘러 비닐을 덮어 씌우는 등 분주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어떤이들은 이렇게 비가 세게 내리는 날씨에 어떻게 야외에서 경기를 하냐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한편 젖은 핫도그들을 먹어치울 모습을 모처럼 볼 것이 더욱 흥미진진하지 않겠느냐는 엇갈린 반응들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빗속에 치뤄지는 핫도그 빨리먹기 대회는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대회 시작 30분 전 쯤 음악에 맞춰 거대한 핫도그 캐릭터 복장 인형들이 나와서 춤을 추면서 흥을 돋구는가 싶더니 줄무늬 복장의 수십명의 심사관들이 대회가 치뤄지는 바로 앞 자리들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먹는 숫자를 보여줄 피킷을 든 미녀들이 순위권에 든 선수들 뒤로 한명씩 들어섰다.
▲ 10분 동안에 핫도그 69개를 먹어치워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는 지난해 우승자 조이 체스넛이 우승의 결의를 다지면서 등장하고 있다. (왼쪽)
곧이어 진행자가 선수들 이름과 나이, 출신지역과 체중 그리고 각자 보유한 ‘희귀한 먹어치우기 기록들과 타이틀’을 소리높여 소개할 때 마다 웃음소리와 함성은 높아가고 분위기는 한껏 달아 올랐다.
“여러분! 주목해주십시요. 나이 30세, 체중 220 파운드인 이 사람이 세운 기록 좀 보십시요. 8분 동안 삶은 달걀 141개. 8분안에 해치운 새우완자가 381개로 세계기록 보유자이며 핫도그 빨리먹기 대회에서 2013년 69개의 핫도그를 단 10분안에 먹어치운 희대의 조이 체스넛(Joey Chestnut)을 소개합니다.”
▲ 해마다 핫도그 대회를 맡아서 진행하는 아나운서 죠지 쉐아 씨. 빗속에서도 그의 열정적인 목소리와 입담은 참가자들에게는 자극이 되고 관람객과 TV 시청자들에게는 보는 재미와 관심을 유발시키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조이 죠스(Joey Jaws)’ 혹은 ‘죠스’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죠스는 아다시피 턱, 입, 구강을 뜻하지만 익히 들어왔던 영화의 제목처럼 ‘아가리’라는 표현에 가깝게 여겨졌다. 잡식성으로 무지막지하게 모든것을 삽시간에 먹어치우는 상어 아가리 같은 뉘앙스가 짙게 깔린만큼 게걸스런 잡식성을 상징하기엔 이만한 별명도 없어 보였다.
“와우! 그렇지! 잘한다!! 올 해엔 70개 먹어봐라! 100개는 어때? 기록을 깨라!” 여기저기 빗속의 관중들에게서 터져나오는 외마디 소리들은 묘하게도 프로 레슬링 경기장에서 본 흥분된 관객들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레슬러들에게는 싸울 대상이 있다는 것이고 빨리먹기 대회에선 혼자와의 싸움이자 기록 경기라는 것이 다르다고나 할 수 있으려나.
각자 약간의 몸풀기 시간이 주어진 후 종이 울렸다. TV 생중계가 시작되면서 앞줄에 선 심사원들은 맡은 선수들이 기준에 맞게 먹고 있는지 감시를 하고, 뒤에 늘어선 늘씬한 아가씨들은 숫자판을 열심히 넘기고 있고, 관중들은 숫자가 올라갈때마다 함성을 지르고, 기자들은 미친듯이 셔터들을 눌러대고, 진행자는 현재 누가 몇개를 먹었고, 몇 분이 남았으며 이런 추세라면 누가 누구를 보기좋게 앞지를것 같다는 등 추임새도 넣고 약도 올리면서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었다. 한마디로, 쇼맨쉽을 최대한 발휘해가며 진행의 재미와 관전(觀戰)의 흥미를 마구 부추기고 있었다.
▲ 대회가 열리는 전광판에는 2013년 남 녀 각각 우승자의 얼굴과 먹은 핫도그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남자 세계기록은 10분 사이에 69개를 먹은 조이 체스넛, 여자는 45개의 세계 기록을 보유한 한국계 미국인 ‘블랙 위도우’ 소냐 토마스이다.
오래전에 ‘카놀리’ 빨리먹기 대회라는것을 본 적이 있다. 이탈리아의 후식(後食)으로 높은 열량에 맛이 달기 그지없는 것으로 일반인은 한 개 먹기도 힘든 느끼한 맛인데 그것을 10분안에 몇십개씩 먹어치우다니 황당했다. 어렸을때 짜장면 많이 먹을 욕심으로 동생에게 누가 빨리 먹나 시합을 하자고 했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짓이 음식 빨리 먹기 시합하는 것”이라며 어른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흘리고, 뱉고, 그자리에서 돌아서기도 전에 토해내기까지 하는 역한 모습을 봐야 했을때 “왜 이런 미련한 대회를 할까. 먹을게 없어 굶어 죽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참가자들은 시작하자마자 미친듯이 삽시간에 수북하게 쌓인 핫도그를 기세좋게 먹어치웠다. 어떤이는 핫도그를 물에 적셨다가 먹기도 하고, 소세지를 빵과 분리해서 밀어넣기도 하고, 어떤 참가자는 토마토 케첩을 발라가면서 줄줄 흘리며 먹는 탓에 입주변과 옷이 벌겋게 물이 들어 보기에도 흉한 모양새가 연출되기도 하였다. 경기가 중반으로 접어들던 5분대에는 핫도그가 잘 들어가도록 몸을 비틀기도 하고, 폴짝폴짝 뛰기도 하는 등 안간힘 쓰는 모습이 가관(可觀)이었다. 후반부인 9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핫도그 반 개조차 삼키는 일이 안쓰러울만큼 얼굴들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기까지 했다.
▲ 남자는 30세의 조이 체스넛이 61개로 우승했고 여성은 28세의 미키 수도가 34개로 우승했다.
그렇게 10분의 시간이 지났고 관중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조이 체스넛은 보기좋게 1등을 했다. 비록, 지난해 기록인 69개에는 턱없이 못미친 61개로 그쳤지만 연속 8년 우승이라는 기염을 토했으며 2만불이라는 부상도 받았다. 곧바로 TV 인터뷰와 주최측과 사진 촬영들을 마친 그의 모습에선 100미터 달리기를 주파한 선수에게서나 보일법한 극도의 피로감과 기진맥진함을 느낄 수 있었다.
▲ 조이 체스넛의 사인을 받았다. 대회 주최측의 가족들에게 나눠준 패스에는 작년도 우승자인 남녀 사진이 들어있다. 45kg의 작은 체구의 한국계 여성 소냐 토마스가 보유한 세계 최고기록은 쉽게 깨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래전 작은 동네에서 상품의 홍보와 재미를 겸해서 시작된 먹기대회들이 지금와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가 쉽게 접하고 있으며 하나의 재미난 볼거리로 유행처럼 번지는 추세(趨勢)이다. 게다가 맘껏 먹고 큰 돈을 버는 직업쯤으로 날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도 들었다. 그러나, 사람의 위(胃)를 생각하면 소화기관의 역할과 한계가 있는만큼 이를 직업적으로 계속했을때 건강상 심각한 문제는 오지 않을지 의문스럽기 그지 없었다.
경기가 끝난후 연신 배를 쓸어내리던 그가 숨이 찬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경기 시작 하기 바로 전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대회 우승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지요. 이보다도 값진 청혼 선물은 없을테니 기필코 이겨야만 했어요. 하하! 저는 앞으로도 이 도전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제 목표는 10분안에 70개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는 것이거든요.”
대회가 끝난 후 비가 그치면서 많은 인파(人波)들이 삼삼오오 해변가로 그리고 전철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성조기가 형상화된 다양한 형태의 패션들을 통해서 그리고 코니 아일랜드에 모인 시민들이 양 손에 쥐고 볼이 미어지게 핫도그를 먹던 모습들을 통해서 7월4일 독립기념일의 멋과 맛을 유감없이 만나고 돌아온 묘한 포만감(飽滿感)을 만끽(滿喫)했다.
▲ 네이슨스 핫도그. 평균적으로 성인이 2개 먹으면 배가 부른편으로 적어도 5분이 걸린다. 말이 그렇지 10분 안에 평균적으로 8초에 한개씩 60여개를 밀어넣는다는 것은 프로들에게조차 고문이고 일반인들에겐 살인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핫도그 빨리 먹기대회를 다녀오면서 제대로 배운게 있다면 모름지기 음식이란 각자의 양에 알맞게 먹어야하고 재미로라도 절대 8초에 한개씩 먹어치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 어찌되었거나 핫도그는 겨자도 케찹도 뿌려가며 천천히 맛있게 그리고 음미하면서 먹을 일이다.
▲ 제목/ ‘Oh no, too much!’ Figure Croquis. 2006. 재활용 종이에 잉크. 설명/독립기념일 미국인들이 즐겨먹는 핫도그는 독일에서 유래했다. 독일식 표기는 ‘A Frankfurter’로 고기를 갈아넣고 길쭉하게 만든 소시지 형태였으며 1860년 대 미국인들이 다리가 유독 짧고 몸이 긴 갈색의 견종인 ‘Dachshund’와 닮았다 하여 닥스훈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당시 야구경기장에서 길죽한 빵 사이에 따뜻하게 데운 소시지를 얹어 먹는 것을 보고 한 만화가가 삽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뜨거운 닥스훈트’라는 스펠링 대신 짧게 줄여서 ‘Hot Dog’ 라고 표기되었다고 전해진다. 크로키 한 귀퉁이에 적힌 임혜지 라는 이름은 내가 좋아하는 독일에 사는 지인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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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12-02 09:53:15 뉴스로.com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