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하는 공항 혹은, 기내에서 심심치 않게 목도(目睹)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여럿이서 떠나는 이의 머리나 어깨위에 손을 올리고 있기도 하고, 어딘가를 향해 일어나 앉았다 머리를 땅에 조아리기도 하고, 양 팔을 들어 올려 기운이나 계시를 받는 듯도 하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혼잣말로 뭔가를 반복적으로 읊조리는 모습들도 있다.
라마교 의식대로 ‘마니차’라는 기구를 열심히 돌리는 이도 보았으며 깜깜한 기내안에서도 묵주나 염주알을 조용히 굴리는 소리도 있다. 작은 불을 켜놓고 코란을 읽고 있는 이들도 봤고 헤드폰을 끼고 목회자의 이야기를 줄곧 듣고 있는 이들도 보았다. 취하는 행동과 그들 각각의 종교는 다 달랐지만 한결같이 염원을 하거나 기도를 하는 모습들이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대부분 안전 비행을 염원하는 것이리라.
엊그제 인천을 출발하여 뉴욕에 도착했다. 14시간 여의 비행에다가 이착륙하는데 걸린 시간까지 더하니 꼬박 16시간 정도를 기내에 앉아 있었다. 수백명이 타는 점보 비행기지만 입추(立錐)의 여지없이 만석이고보니 콩나물 시루를 방불케 했다.
6시간 이상되는 장거리 비행을 나설 때마다 기도까지는 아니어도 바램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적지 않은 비행 관록이 쌓이면서 경험상 만들어진 이유있는 바램이라고나 할까.
▲ 비상구 좌석은 넓어서 많은 이들이 선호한다. 하지만 화장실 바로 옆이라 늘 빈번하고 복잡한 단점도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비행기가 연착되는 공항에서 승객들 대여섯명이 모여 잡담하다가 장거리 국제선을 탈 때 꼭 피하고 싶은 승객들을 유형별로 나눠본 적이 있다. 대부분이 이코노미석을 타는 사람들이어서 비슷한 불만과 바램들이었다.
좌석을 위협받을 정도의 넘치는 체구의 승객, 쉴 새 없이 끄렁크렁 소리를 내는 천식(喘息)이나 기침이 심한 승객, 신발을 벗은 채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승객, 큰소리로 끊임없이 떠드는 승객, 지저분하거나 기괴한 복장을 한 승객, 기내가 체육관이라도 되는지 통로나 비상구 앞에서 과격한 맨손체조나 운동을 하는 승객, 안방으로 착각하고 런닝셔츠만 입고 돌아 다니는 승객, 군기반장처럼 앞으로 나가 노려보듯 승객들 면면을 빤히 훓어내리는 승객, 도착할때 까지 울어대는 어린아이와 이를 방치하는 어른 승객 등등.
소수의견이지만 골이 띵할 정도로 온몸에 뿌린 향수나 화장범벅을 한 이 역시도 장거리에서 피하고 싶은 승객이라고 했다. 내 경험으로는 시청각적인 불편은 눈을 감거나 헤드폰을 써서 어느 정도 통제가 된다고 보지만 너무 심한 체취나 구취를 가진 이와 이웃해서 앉았을 때는 도망칠 수도 없어 괴롭다고 토로했다. 모두가 경험을 통해서 나온 이유있는 불만이어서 공감하며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은 나름 퍽 순조로왔다. 안방으로 착각하고 돌아다니는 이도 없었고 시끄럽게 떠드는 이도 별로 없었다. 주기적으로 뽀시락 거리며 비닐봉지 소음(騷音)을 일으킨 이도 없었고, 울어대던 신생아도 있었지만 사이사이 울어서 그럭저럭 잠도 몇시간 잤다. 나아가 책을 읽거나 ‘주구장창’ 잠만 자주는 승객들로 포진된(!) 덕분에 나름 9시간여 동안 조용히 평화롭게 올 수 있었다.
얼마만에 만끽해본 여유있는 비행이었는지…. 욕심도 조금 내어 이왕이면 다음 비행엔 유머감각 있는 근사한 사람들이 옆자리에 앉아서 지루하지 않게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같은 바램도 갖게 했다.
▲ 2인 1조로 통로를 오가며 식사를 준비하는 승무원들의 모습.
장거리 비행이 늘 그렇듯 타자마자 바로 나온 식사로 배도 적당히 불렀고 취침중이나마 과자나 음료서비스도 심심챦게 나왔다. 착륙을 3시간 여 앞두고 기내에 불이 켜지면서 따뜻한 수건과 식사가 나왔다.
우리 국적기여서 아침으로 흰죽도 나왔다. 여기저기서 숟가락이며 포크들을 놀리는 소리들로 부산했다.
모처럼 대하는 흰 죽을 보면서 어려서 아프거나 했을 때 먹었던 맑은 미음과 집에서 ‘도톳하게’ 끓여 나오던 흰죽을 떠올렸다. 미음이 먹고 싶어서 아프고 싶었던 유치한 기억도 오버랩 되었다. 그 감흥(感興)을 떠올리며 천천히 죽을 떠먹기 시작했다.
두어번 숟가락을 놀렸을까? 그때였다. 묘한 ‘불협화음(不協和音)’ 들렸다.
'웁~ 우으읍~'
고개를 돌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미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앉아 내리 잠만 자던 승객이 고개를 통로쪽으로 꺾더니만 카펫이 깔린 바닥에 허연 빛의 구토를 해대고 있었다.
“얘좀 봐! 왜 거기다 해. 여기다 하라고 했쟎아.” 40대 초반의 어미로 보이는 이가 딸의 주루룩 흐르는 토사물을 보며 아침식사로 나온 식반을 얼굴 아래로 들이밀었다.
다음 상황과 승객들의 얼굴 표정은 상상에 맡기겠다. 사람의 생리현상 중에서 재채기, 기침, 구토, 설사라는 것들이 조절이나 통제가 불가할 때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경우와 상황에 따라서 조절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 승객과 화장실과의 거리는 다섯 발자국도 안되는 거리로 의지만 있으면 손수건이든 손이든 틀어막고 뛰어들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게 불가한 응급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앞 쪽 주머니에 있는 위생봉투를 쓸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 좌석 등받이에는 안전비행 지침서와 비행기 멀미를 대비한 위생봉투가 들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카펫이 깔린 통로에, 그것도 모두가 밥을 먹는 그 상황에 토사물을 쏟아낼 수 있었을까? 식반과 통로의 카펫 위를 어지럽힌 것도 치울 생각을 안하는 바람에 뒷감당은 고스란히 새내기 스튜어디스의 몫이 되어 버렸다.
승객이나 스튜어디스에게 미안해하는 표정대신 스무살은 됨직한 딸을 마치 어린애 다루듯 감싸는 엄마의 행동을 보려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주변 승객 모두가 아침을 망쳐 버렸다. 아침을 망친 것만이 아니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도 망쳤을 것이다. 인천 뉴욕 구간의 장거리 비행은 한마디로, 죽을 쒔다. 앞으로 기내에서 죽을 먹을 일은 영영 없을 것 같다.
▲ 좁은 좌석, 좁은 테이블, 운신하기가 편치 않다. 그런만큼 장거리 비행에서의 예절은 필수항목이 아닐까.
사람들은 장거리 노선의 긴 비행이 사람들을 지치고 힘들게 한다고들 믿지만 비좁은 공간에서의 긴 착석(着席)은 단지 신체적인 피로감만을 줄 뿐이다. 정작 짜증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은 지각없는 행동이다. 수백명이 탄 비좁고 불편한 좌석에서 상대를 배려(配慮)하지는 못할 망정 최소한의 상식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존에프케네디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이전과는 다른 바램, 아니 기도 한대목이 생겼다. 앞으로는 몰지각한 승객들과 이웃해서 앉게 되는 일이 없기를…, 제발 없기를!
▲ 제목 figure croquis. 색종이에 싸인펜/ 2008. ‘Oh, no! My small traveling wish didn't come true.’ 기내에서의 내 작은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